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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셀셔스 Apr 24. 2023

결혼 시장과 골드미스 급행열차

결혼은 어떡하고 유학을 가? (1)

미국으로 떠나기 전, 주변에  미국 유학 간다고 하면 축하 인사보다 이 말을 더 많이 들었다.


"그럼 결혼은?"


한국 사회에서 나이는 특히 여자에게 크리티컬 한 것이다.  '여자는 공부 잘할 필요 없다. 예쁘게 태어난 게 고시 삼관왕', '여자는 크리스마스'라는 가스라이팅(?)이 보편화되어 있다.


나 역시 서른 살 무렵 초조해지기 시작했다. 청첩장이 하나둘씩 들어오고, 29에서 30으로 앞자리가 바뀌는 것이 사람을 쫓기는 기분이 들게 만든다. 이 시기를 놓치기 전에, 괜찮은 남자들이 결혼 시장에서 사라지기 전에, 그리고 내 가치가 결혼시장에서 추락하기 전에, 얼른 짝을 찾아봐야겠다고 생각을 했다. 거금을 주고 결혼 정보 업체에 가입하고, 동시에 ‘스카이‘ 출신만 소개해 준다거나, ‘금수저’만 소개해 준다는 소개팅 앱도 시작했다.


나는 집안은 형편은 안 좋았지만, 키도 크고 얼굴도 나쁘지 않고 공부도 잘한 편이라 좋은 조건의 남자를 만나보는 것이 크게 어렵지가 않았다. 의사, 변호사, 건물주 아들... 외모와 재력을 갖춘, 결혼정보업체에서 소위 말하는 1등 신랑감들을 만났다. 이 분들은 객관적으로 보면 나에게 과분한 사람들이었다.


그들이 나에게 했던 말 몇 가지를 모으자면,


"저는 파트너 변호사가 되기 위해 매일 야근하고 일해야 합니다. 연애할 시간이 없고 바로 결혼하고 싶습니다"

"우리 집은 평생 일을 안 해도 먹고살 수 있습니다. 제 자녀가 키 크고 똑똑하면 좋겠어서 셀셔스씨를 만나고 싶어요"

"내 삶의 목표는 한강에 집 사는 거예요. 셀셔스씨랑 저랑 둘이 쌍끌이 하면 가능하겠죠? “


이 사람들은 나의 조건을 보고 좋아했다. 물론 나도 그들의 조건을 보고 호감을 가졌다. 그런데 그들은 나라는 사람이 커리어에 대해 어떤 꿈을 갖고 있는지, 내 삶의 비전이 어떻게 되는지에 대해 큰 관심이 없었다. 나는 삶에서 의미 있는 일을 찾고자 했는데, 그들은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좋은 레스토랑에 가고 좋은 차를 타고 좋은 집에 살고 싶어 했다. 그들을 비난할 생각은 전혀 없다. 그저 나와 가치관이 달랐을 뿐이다.


이런 만남을 계속하면서 조건이 좋은 사람과 결혼하면 크게 돈 걱정 안 하고 살 수 있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내 마음속에는 늘 해외에서, 더 넓은 세상에서 공부하고 싶다는 생각이 가슴 한편에 있었다. 여자가 대학원을 가서 가방끈이 점점 길어지면 상대방은 부담을 느끼는 경우가 많다. 심지어 유학을 갔다 온 여자는 문란하다는 편견이 여전히 존재한다. 해외에서 공부를 마치고 한국에 돌아오면 30대 후반, 늦으면 40대 초반이 되니, 흔히 말하는 골드 미스로 가는 급행열차를 타는 것이다.


결혼 vs 유학

이렇게 일 년간 결혼 시장을 떠돌다가 그 해가 끝나가던 크리스마스 무렵에 결론을 내렸다. 30대 초반 그 갈림길에서 나는 결혼을 포기하고 유학을 선택했다.


결혼으로 인해 꿈을 포기하게 되면, 혹시라도 배우자와 사이가 안 좋아지거나 싸우기라도 하면, 상대방을 원망하지 않을 자신이 없었다. (사실 상대방은 잘못한 것이 없고 내 선택일 텐데....) 유학을 가서 운이 좋게도 짝을 만나게 되면 그건 내 운명이고, 짝을 못 만나면 그것도 역시 내 운명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소개팅 앱을 다 지우고, 결혼 정보 업체에는 휴면신청을 했다. 결혼 정보 업체의 베테랑 매니저에게 공부를 더 해야 해서 휴면해야겠다고 말하니 매니저가 걱정어린 목소리로 말했다.


"선생님.... 진심으로 걱정해서 드리는 말씀이에요. 공부는 나중에 하셔도 되지만, 결혼은 지금이 아니면 안 돼요!"


20년 넘게 수많은 커플을 매칭시켰다는 그녀의 말은 현실임에 틀림이 없다. 그러나 나의 결심을 바꿀 순 없었다. 짝을 만나는 것은 운명에 맡긴 채, 나는 강남의 유학 학원에 등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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