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은 어떡하고 유학을 가?(2)
미국 대학원 입학시험인 GRE는 한국어 초보자가 수능 국어 영역 시험을 친다고 생각하면 될 정도로 토종 한국인에게는 상당히 어려운 시험이다. 그래서 많은 유학 준비생들이 학원에 다니게 된다. 학원은 시험을 고득점을 받을 수 있는 스킬을 알려준다. 그렇다고 해서 공부를 열심히 안 해도 된다는 뜻은 아니다. 나는 칼퇴근을 하고 주 3회 저녁에 수업을 들었다. 수업이 없는 날에는 새벽 한두 시까지 단어를 외우고 학원 숙제를 해야 했다. 이게 보통 의지로 할 수 있는 게 아니라, 학원에서는 스터디 조를 짜준다. 스터디 멤버는 대부분 서로 다 처음 보는 사이다.
이 스터디에서 나보다 훨씬 영어를 잘하던 한 명문대 대학원생을 만났다. 학원이 10시에 끝나고 바로 앞 강남역 뒷골목 KFC에서 출출하다는 핑계로 만나 함께 비스켓과 딸기잼을 먹었다. KFC에서 시작한 첫 데이트는 곧 그 유명한 ‘영어 스터디에서 연애하기'가 되었다. 둘이 같은 공부를 했지만, 나는 영어를 잘 못했고, 남자친구는 영어를 잘했기 때문에 그가 내 공부를 많이 도와줬다. 데이트는 주로 학원과 도서관에서 했다. 토요일 오후에는 함께 다른 멤버들과 스터디를 했다. 식사는 가장 가까운 식당에서 빠르게 해결했다.
그 사람 자체가 매력적이기도 했지만, 유학을 준비하는 사람이니 삶에 대한 가치관이 비슷했다. 그래서 동질감을 느꼈다. 결혼 정보 업체에서 만난 사람들과는 달리, 함께 미국에 갈 수 있는 것도 엄청난 매력으로 다가왔다. 내 머릿속에는 유학과 결혼을 동시에 할 수 있다는 상상의 뭉게구름이 펼쳐졌다.
폭풍 같던 수험 기간이 끝나고 둘 다 합격 발표를 기다렸다. 나는 미국의 원하던 학교에 붙었다. 하지만 그는 미국에 있는 학교에는 하나도 합격하지 못했다. 다행히도 유럽 쪽 학교에서는 좋은 소식을 들었다.
대서양을 건너는 연애를 할 수 있을 정도로 우리가 사랑하는가?
나는 그 정도까지 그를 사랑하지 않았다. 아마 그도 마찬가지였던 것 같다. 그렇게 우리는 헤어졌다.
유학과 결혼에 대한 고민은 나만 겪고 있는 것이 아니다. 배우자나 연인이 있어도 문제, 없어도 문제다.
일단, 유학을 결심하면 그의 배우자는 보통 본인의 커리어를 포기하고 따라가게 된다. 그런데 유학생의 배우자 비자로는 일을 하거나 공부를 할 수가 없고, 언어 문제도 감내해야 하며, 해외에 친구나 가족이 없는 경우가 대다수이다. 그래서 지루해하거나, 심한 경우 우울증을 겪기도 한다. 만약 배우자나 연인이 따라갈 수 없을 경우에는 졸지에 이산가족이 된다. 유학이 끝날 때까지 롱디를 해야 한다. 이는 상호 간의 큰 사랑과 신뢰가 필요한 일일 것이다.
배우자가 없는 경우, 보통 박사 과정 유학을 하면 박사 끝날 무렵과 포닥 무렵에는 (특히 여성의 경우) 결혼 적령기가 다가온다. 한국인을 꼭 만나길 원하는 경우 미국의 좁은 한인 커뮤니티에서 사람을 만나야 한다. 한국에서 5천만 명 중에도 내 반쪽을 찾기 힘든데 기껏해야 내 주변 수십, 수백 명 중에 내 짝을 찾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며 운이 좀 필요한 일인 것 같다.
다행히(?) 나는 연애에 있어 인종과 국적에 제한을 두지 않았다. 그리고 미국에 도착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내 휴대폰의 바탕화면에는 데이팅 앱들이 자리하게 되었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