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은 어떡하고 유학을 가?(3)
가을 학기가 2달 정도 지났을 무렵 핼러윈이 다가왔다. 기숙사 복도 건너편에 사는 미국인 오드리는 핼러윈을 대비한다고 한 달 전부터 마녀 옷을 사고 난리가 났다. 나는 방구석에서 하루 종일 말할 기회도 없이 컴퓨터 화면만 쳐다보고 공부만 하고 있었다. 인스타그램을 보니 마녀 옷을 입은 오드리가 마녀 성지로 유명한 Salem(세일럼)에 놀러 갔는데, 이 사진은 나를 더 우울하게 만들었다.
한국에 같이 운동이나 댄스 같은 소셜 액티비티를 할 수 있는 ‘소모임’ 앱이 있다면, 미국에는 ’밋업(Meet Up)‘앱이 있다. 원래는 영어 공부를 하려고 밋업을 깔아보았는데, 미국 젊은이들의 최대 명절(?)인 핼러윈이니, 뭔가 이벤트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이 앱을 뒤적뒤적해보니, 보스턴 다운타운의 한 호텔에서 핼러윈 파티가 있었다. 영어 회화도 여전히 안되고 겁도 났지만, 미국에 처음 오기도 했으니 미국의 핼러윈 파티를 구경하며 딱 2시간만 리프레쉬하는 시간을 갖기로 하고 용기를 내서 파티에 등록을 했다.
파티에 가보니, 막상 우리나라 홍대 클럽과 별 다를 바가 없었다. 다만, 사람들이 진심을 다해 핼러윈 복장으로 꾸미고 나타났다는 점이 약간 달랐다. (우리나라도 요즘은 핼러윈에 진심인 사람들이 많지만...) 그냥 서성이고 있으니, 몇몇 사람들이 나에게 말을 걸기 시작했다. 이성에게 관심 있으면 전화번호를 달라고 하는 것도 한국이랑 똑같았다. 나는 학교 밖 미국 사람과 이야기를 하는 게 거의 처음이라 1/5만 알아듣고 나머지는 못 알아 들었다.
파티 장소에 두 시간 정도 머물다가 집에 가려고 나왔는데, 전화번호를 줬던 A라는 남자가 어디냐고 전화가 왔다. 나는 이미 호텔을 나왔고 피곤해서 집에 가려고 한다니까, 잠깐만 기다리라고 한다. 고민하다가 인사만 하고 가야겠다고 생각하고 기다리고 있는데 A와 친구 B가 함께 나타났다. 나더러 다른 곳에서 한잔 더 하자고 한다. 피곤하기도 하고 무섭기도 해서 고민하고 있는데, 갑자기 길거리에서 여자 두 명이 여기서 술집이 어디냐고 묻는다. 자기들은 오레곤 주 포틀랜드에서 핼러윈을 즐기기 위해 왔다고 한다. A가 우리도 한잔 할 건데 같이 가자고 해서 순식간에 일행이 5명으로 불어났다. 나는 미국에서 술집을 한 번도 가본 적이 없고 학교 밖 미국 사람들하고 대화할 기회가 많이 없기에, 미국 문화 체험을 하고 싶어 같이 가기로 했다.
주변이 시끄러워서 그들이 하는 대화는 잘 못 알아들었지만, 학교 밖을 구경하고 학교 밖 사람들을 보니 확실하게 기분 전환이 되었고 내가 진짜 미국에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 A와 포틀랜드에서 온 여자 중 한 명, 이렇게 둘이 사라졌다. 그들이 사라지고 나서 B가 나에게 관심이 있음을 계속 표현한다. 그러면서 자기가 데이팅 중인 사람 이야기를 한다.
나 "그 여자랑 어떻게 만났어?"
B "데이팅 앱으로 만났어"
나 "데이팅 앱 무섭지 않아?"
B "요즘 데이팅 앱이 아니면, 내가 원하는 사람을 어떻게 만나?"
이렇게 말하니 말문이 막혔다. 한국에서도 소개팅 앱을 많이 사용하긴 하지만 안 좋은 인식이 많기 때문에 이 정도로 당당하진 않은데, 문화 충격을 받았다. 이 대화 이후로 B의 적극적인 호감 표현이 있었지만, 거절을 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미국에 여러 데이팅 앱이 있는데, 아마 가장 유명한 앱은 데이팅 앱의 시초 틴더(Tinder) 일 것이다. 틴더를 깔아보니, 우리 기숙사에 사는 얼굴이 낯이 익은 학교 친구들이 나타났다. 이탈리아에서 온 친구, 노르웨이에서 온 친구,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온 친구..... 우리 기숙사에 사는 싱글인 모든 사람들이 틴더에 있는 것 같았다.
그들을 틴더에서 발견한 게 너무 웃겨서, 캐나다 친구 I에게 이 얘기를 하니 '나랑 내 남자친구도 틴더로 만났어!'라는 것이다. 그들은 7년간 연애를 하고, 결혼을 목전에 두고 있다. 기혼 미국인 L에게도 이 얘기를 하니 '나도 코넬대 다닐 때 지금 남편을 틴더로 만났어'라는 것이다. 뉴욕에 사는 한국인 친구 Y도 힌지(Hinge)라는 데이팅 앱으로 남자친구를 만나 3년째 연애하고 있다며 나에게 힌지를 강력 추천했다.
적어도 미국에서는 (이 단어를 쓰고 싶진 않지만) "MZ 세대"에게 데이팅 앱은 연애를 위한 필수 요소가 된 것 같다. 앱스토어에서 검색을 해보면, 틴더(Tinder), 힌지(Hinge), 범블(Bumble), 커피미츠베이글(Coffee Meets Bagle)이 가장 인기가 많은 데이팅 앱들이다. 데이팅 앱에 들어가면 자신의 성적 취향 (이성을 찾는지 동성을 찾는지)과 관심이 있는 인종을 고를 수가 있다.
뿐만 아니라 성적 소수자 (LGBTQ+)를 위한 데이팅 앱, 흑인을 위한 데이팅 앱처럼 특정 인종이나 특정 성적 취향을 가진 이들을 위한 앱도 있다. 태국에서 온 게이친구가 있었는데 게이 전용 데이팅 앱을 쓰고 있다고 했다.
심지어 페이스북에서도 지역과 관심사를 기반으로 매칭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또, 데이팅 상대 사진을 공유하며 이 사람이 위험한지 아닌지 서로 알고 있는 정보가 있는지 공유해 주는 페이스북 그룹이 있기도 하다.
혼자 하루종일 공부하는 일상이 외롭고 힘들었기에, 나도 휴대폰에 틴더, 힌지, 범블, 커피미츠베이글을 설치하고 틈날 때마다 들여다보기 시작했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