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이트 상대가 하버드생이라는 것 빼곤.
결혼은 어떡하고 유학을 가?(4)
미국 데이팅 앱을 좀 들여다보니, 데이팅 앱에서 실제 만남으로 이어지는 과정은 한국이나 미국이나 별 차이 없다는 것을 곧 알게 되었다.
사진과 프로필을 올린다. 미국은 날 것의 셀카가 많고, 한국은 정성들여 사진을 찍은 셀기꾼(셀카+사기꾼)이 많다는 차이가 있다.
내가 좋아요를 하고 상대도 좋아요를 하면 매칭이 된다.
매칭이 되면 앱 내에서 대화를 시작한다. 보통 이 단계에서 흐지부지 되는 경우가 부지기수이다.
만나보고 싶으면, 연락처를 교환한다. 한국은 주로 카톡 아이디를 교환하는데 미국은 문자를 한다.
첫 데이트 약속을 잡는다.
첫 데이트를 한다.
서로 맘에 들면 (주로 남자가) 애프터를 한다.
보스턴은 하버드, MIT, 보스턴 대학교, 터프츠, 노스이스턴 등 수많은 대학교가 있고, 하버드 병원, 모더나, 머크, 노바티스와 같은 제약회사 등이 위치한 바이오, 의료 산업의 중심지이다. 그래서 고학력의 젊은 사람들이 많다. 아무래도 내 대학원 생활을 이해해 주는 사람과 더 잘 통하기도 해서 나는 주로 대학원생에게 끌렸다. 이렇게 데이팅 앱에서 총 4명의 남자를 만나보게 되었다. 하버드 대학원생 2명, MIT 대학원생 1명, 그리고 지금의 남자친구이다.
첫 번째 데이트 상대는 뉴욕주 출신 하버드 박사과정 학생이었다. 당시 나와 그 둘 다 너무 바빠서 첫 만남을 도서관에서 가졌다. 도서관 1층 로비에 나란히 앉아 서로 자기 소개를 했다. 그는 박사과정을 하며, 기숙사 대표도 하고, 미국 양궁 국가대표(?) 트레이닝, 봉사활동도 하고 있는 다재다능한 사람이었다. 이 친구는 조금 숙맥이었지만 착해서 내 서툰 영어를 참고 이해해 주었다. 두 번째 만남은 학교 카페테리아에서 감자튀김을 먹으며 이야기를 나눴다. 친구들이 내가 그와 단 둘이 이야기하는 걸 흘낏흘낏 훔쳐보고 나서 놀려댔다. 그는 약간 좀 특이한 구석이 있긴 했지만, 나는 더 만나볼 의향이 있었다. 그런데 이 친구가 너무 바빠서 자꾸 타이밍이 어긋났다.
두 번째 데이트 상대는 MIT 박사과정 학생이었다. 이 사람을 만나는 날 처음으로 MIT에 가보았다. 유전자 가위 크리스퍼를 연구하는 매우 똑똑한 학생이었는데, 남미의 국가에서 왔는데도 영어를 매우 잘했다. 애프터가 왔지만, 나는 잘 안 맞는다고 느껴서 거절을 했다.
세 번째 데이트 상대는 캘리포니아에서 온 하버드 박사과정 학생이었다. 면역학을 공부하는 사람이었는데, 나는 그의 외모도 성격도 모두 맘에 들었다. 역시 둘 다 너무나 바빠서 하버드 의대 교정을 한 바퀴 걷고 조금 이야기를 하고 헤어졌다. 그러고 나서 그에게서 더 만나보고 싶다고 문자가 왔는데, 그 후로 언제 보자는 연락이 없었다. 한국에서 경험상 보통 이런 경우 내가 그렇게까지 맘에 들지 않은 것이었는데, 미국도 마찬가지였다.
마지막으로 만난 사람이 지금의 남자친구 제이(J)이다. 제이와는 문자로 열흘을 넘게 이야기하다가 가을에서 초겨울로 넘어가는 서늘한 토요일 오후, 하버드 의대 기숙사 앞 버스 정류장에서 처음 만났다.
당시 내가 살던 곳은 하버드 의대가 있는 롱우드(Longwood) 지역이고, 제이는 하버드 본 캠퍼스가 있는 캠브릿지(Cambridge)에 살고 있었다. 하버드 캠브릿지 캠퍼스에서 롱우드 캠퍼스로 셔틀버스를 운행하는데, 셔틀버스의 종착점이 하버드 의대 기숙사인 밴더빌트 홀(Vanderbilt Hall)이다.
나는 이른바 꾸안꾸, 즉 너무 꾸민 티를 내지 않으려고 노력하지만 정성을 들여 꾸몄다. 진한 청색 스키니진에 체크무니 코트를 입고 장미색 틴트를 발랐다. 버스정류장에서 긴장을 하며 그를 기다렸다. 곧, M2라는 이름을 가진 남색 버스가 도착하고, 남색 패딩을 입은 창백한 얼굴에 푸른 눈을 가진 백인 남자가 긴장이 가득한 얼굴로 버스에서 내렸다. 나는 그를 한눈에 알아보았다. 그도 나를 곧 눈으로 찾았다. 어색한 순간이 흘렀다.
나도 그도 긴장해서 아무 말이나 지껄이며, 같이 가기로 했던 자메이카 폰드(Jameica pond)라는 호수로 한참을 걸어갔다. 제이는 하버드 병원 레지던트 1년 차로, 나보다 조금 이른 시기에 보스턴으로 왔다고 했다. 뉴잉글랜드라고 불리는 미국 북동부 지역에서 나고 자랐다고 한다. 같이 큰 호숫가를 한 바퀴 도니 어느새 해가 저물었다.
제이가 나에게 뭘 먹고 싶냐고 물어봐서 나는 한식을 먹자고 했다. 나는 불고기를 먹고 제이는 비빔밥을 먹었다. 비빔밥에 고추장을 넣고 잘 비벼서 숟가락으로 먹어야 하는데, 제이가 제대로 비비지도 않고 젓가락으로 깨작거리길래 내가 비벼줬다. 내가 한국에서 왔다고 하니 김치와 스타크래프트를 좋아한다고 한다. 미국인이 발음하기 어려운 내 한국 이름을 계속 물어보고 10번을 연습한다. 그리고 우리가 다음에 언제 볼 수 있냐고 나에게 물어봤다. 내가 소위 말하는 그린 라이트를 알아차리는 데는 국경도 언어도 방해가 되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