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렘이 줄고 대신 일상이 되었다
일본 워킹홀리데이를 오기 전에 한국에서 적어 둔 ‘일본에서 하고 싶은 목록‘이 있다.
1. 일본 온천 가기
2. 입욕제 사서 집에서 목욕하기
3. 하겐다즈 종류별로 먹어보기
4. 일본 미용실에서 머리 해보기
5. 일본 영화관에서 좋아하는 배우가 나오는 영화 보기
6. 산책하기 좋은 나만의 장소 찾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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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소한 것들 중 가운데 여러 가지 가운데 꼭 사고 싶은 것은 일본 불꽃놀이, 일본 하나비(花火)를 보는 것이었다. 일본은 큰 축제가 아니더라도 동네별로 하나비를 진행한다. 메인은 여름날의 하나비이지만, 빨리 시작하는 건 5월부터 늦으면 가을까지 끊임없이 진행된다.
바람대로 일본 생활 중 여러 하나비를 봤었다. 감동받았던 하나비도, 비로 인해 취소가 된 하나비도, 생각만큼 즐겁지 않아서 중간에 집에 간 하나비도 있었다. 그러던 중 집 근처에서 하나비 축제가 열렸다. 자주 가는 마트에는 축제에 오는 사람들을 위한 도시락, 간식, 음료 판촉 행사가 진행 중이었고, 주변 주차장은 축제용 주차장인지 아닌지를 공지하는 팻말이 이곳저곳 붙어져 있었다. 특별할 게 없는 우리 동네에 특별한 이벤트를 더했더니 꽤 많은 인파가 몰렸다. 이전과 다르게 집 근처 행사라 하나비가 시작하기 직전 마음 편하게 집을 나섰다. 축제 장소로 가던 중, 하늘이 예뻐 올라간 다리 위에 자리를 잡은 사람들을 보았다. 주민들의 명당 느낌이 강하게 들어서 나도 빈 곳에 자리를 잡아 앉았다.
하나비가 시작하기 전, 반대쪽 하늘로 고개를 돌려봤다. 손톱보다 작은 반달 근처에 일몰의 빛보다 조금 더 분홍빛이 맴도는 옅은 구름, 그 색이 하늘의 색과 상반되어 눈에 띄게 퍼져있었다. 구름은 얇게 한두 겹 씩 퍼져있어 언뜻언뜻 하늘색이 보였다. 강가를 가로지르는 다리라서 바람은 습기가 있었지만 기분 나쁜 정도는 아니었다. 아침까지 비가 왔었는데 이 정도면 양호하지.
앉은자리에서 이곳저곳 구경하다 보니 하나비의 첫 번째 불꽃이 발사되었다. 해가 길어져 살짝 밝은 상태로 시작했지만, 역시나 내가 좋아하는 게 시작하는 그 순간은 기분이라 좋아졌다. 몸도 마음도 가볍게 와서 그런지, 끝나고 집에 가는 길에 대한 걱정이 없어서 그런지 전보다 힘을 빼고 편안하게 구경할 수 있었다. 하나비를 보다 보니 같이 구경하고 있는 주변 사람들에게도 눈이 갔다. 가족과, 연인과, 친구와 함께 밥도 먹고, 얘기도 하고, 사진도 찍고. 혼자 보러 간 나는 하나비가 목적이었지만, 대부분은 하나비가 목적이 아닌 듯했다. 그들은 하나비라는 핑계로 소중한 사람들을 만나 예쁜 모습으로 순간을 보낼 수 있었다. 마치 생일과 같은 이벤트 중 하나였다. 그들은 굳이 불꽃놀이의 모든 장면을 전부 기억할 필요가 없었다. 훗날 오늘의 하나비를 이야기할 때, 그들은 '그 하나비 마지막에 엄청 예뻤지?'보다 '그때 먹었던 도시락 맛있었지 기억나?', ' 아침에 비가 와서 진짜 걱정이었잖아.'와 같은 함께 공유한 과정들에 대해 더 많은 이야기를 할 것이다. 누군가와 약속을 잡을 수 있는, 다른 추억을 만들 수 있는 매개체였던 것이다, 하나비란.
내 일본에서의 첫 하나비는 5월 말에 시작한 오다이바 하나비였다. 처음이다 보니 설렘으로 가득했다. 비가 와서 우산을 쓰면서 봤지만, 지나치게 시끄러운 사람들로 집중이 깨진 순간도 있었지만,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 힘들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시 가라고 하면 또 가고 싶을 정도로 좋았다. 폭죽이 터지던 매 순간 마음이 울렁이는 게 꼭 사랑에 빠진 느낌이었다. 그때 가졌던 설렘의 유통기한이 몇 달이 지난 지금까지 온전히 남아있을 리 없다. 오다이바에서는 한 장면도 놓치고 싶지 않아 망부석마냥 한 자리를 고수했지만, 이번 하나비는 중간부터 동네 이곳저곳을 걸어 다니면서 봤다. 볼 만큼 다 봤다는 생각이 들어서 집으로 가는 길 골목, 세상 예쁜 불꽃들을 보았다. 가로등이 별로 없어서 무서워했던 거리였는데, 하나비가 내 시야 속에서 빈틈없이 빛을 내고 있었다. 그 순간이 나에게 클라이맥스였다. 이보다 만족스러울 수는 없을 것이다.
집으로 돌아와 점심에 사두었던 맥주를 꺼내 마셨다. 아까 봤던 사람들이 옹기종기 모여 ‘간빠이-’하는 모습이 부러웠는데, 집에서 폭죽 터지는 소리를 들으며 마시니 이것대로 좋았다. 작년에 ‘하고 싶은 것’으로 적었던 것이 이제는 익숙해졌다. 오히려 마음이 편해졌다. 설렘은 줄어드니 열망과 부러움이 더 빠른 속도로 사라졌다. 연애도 설렘보다 편안함을 추구하는 나에게 하나비라도 뭐가 다를까. 다른 것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호기심은 이미 아는 것이 되었다. 그래서 설렘이 일상이 되었다. 하지만 지금의 일상이 아닌 다른 일상으로 가게 된다면, 지금의 일상은 그리움이 될 것이다. 그러니 조금 익숙해도 이 일상을 놓치지 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