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지 생활이 힘들다고 느끼는 가장 큰 이유

그럼에도 불구하고..?

by 루비나

무연고지라도 독립 자체는 내게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대학생 때부터 자취를 하면서 해 먹는 걸 좋아했던지라, 외식을 하지 않고 집에서 해 먹는 것도 무리가 없었다. 가끔 귀찮긴 하지만 다른 집안일도 나에겐 큰 임무는 아니었다. 본가보다 작은 원룸에 살고 있다 보니 오히려 청소는 훨씬 쉽고 빠르게 끝낼 수 있었다. 가족과 떨어져 있어도, 친구가 없어도, 오며 가며 인사하는 이웃이 없어도 잘 살아가고 있었다. 그게 가장 큰 착각이었다.


7월의 초여름날 아침. 예고 없이 출근 지하철이 운행을 정지했다. 지연도 아니고 아예 정지 상태였다. 버스를 타고 갈까 했지만, 배차간격은 거의 30분, 버스 대기 줄이 이미 늘어질 대로 늘어진 터라 다음 버스를 탈 수 있다는 보장도 없었다. 길게 생각할 틈도 없이 출근해야 하는 카페에 전화해 상황을 설명하고, 다른 호선을 타기 위해 전철로 2 정거장분 되는 거리를 걸어가기 시작했다. 양산을 쓰면서 갔지만 도쿄의 7월은 꽤나 더운 달이었다. 아침 7시부터 장장 3.5km를 걸어갔다. 다행히 원래 걷는 걸 좋아하는 편이기도 하고, 몇 번 운동삼아 걸어 다녔던 길이라 헤매지 않고 곧장 갈 수 있었다. 그때의 내 감정은? 덥다는 사실 하나만 제외하면 의외로 괜찮았다. 사람이 모여있는 거리에서는 갓 뿌리고 나온 듯한 사람들의 향수 냄새, 그중 레몬향과 꽃향이 은은하게 섞여 여름날 사람을 기분 좋게 만드는 향이 되어 나를 환기시켜 주었고, 사람보다 풀이 많은 곳에서는 만개한 치자꽃 향이 달큰하게 퍼지며 힘듦을 잊게 해 주었다. 물론 최대한 빨리 가기 위해서 뛰다 걷다를 반복했었기에 하나도 힘들지 않았다면 거짓말이겠지만, 가는 중에도 ‘생각보다 재미있는 이야기가 만들어지겠는데?‘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괜찮았다.


버스를 탔으면 원래 출근 시간보다 30분 정도 지각이었겠지만, 열심히 걸어간 덕에 3분 지각으로 마무리되었다. 그런데 오늘의 이벤트는 이렇게 끝나지 않았다. 출근한 지 한 시간도 채 되지 않아 손님이 물밀듯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원래 평일 오전은 그렇게 바쁘지 않아서 오전 근무 인원이 홀&주방 합쳐서 나까지 4명뿐이었다. 근데 오늘은 무슨 일인지 단체손님도 아닌데 한꺼번에 들어오는 손님들, 그 속도에 맞추어 몰리는 주문전표. 근무자 4명 모두 200% 이상의 역량을 끌어올려도 음식 조리와 서빙 속도가 한계에 다다르자, 주문과 더불어 컴플레인과 취소요청까지 처리하게 되었다. 그렇게 폭풍우 같은 시간이 지나고 나서 숨을 돌리는데 점심 타임 직원분들 출근하시기 시작했다. 어느 정도 정리가 끝나니 그분들과 얘기할 시간이 생겼다. 문제는 여기서 발생했다. 하고 싶은 말과 리액션은 많았지만 언어 장벽으로 인하여, 사실 전달만 짧게 하고 이야기는 끝이 났다. 오늘의 일을 공유할 수 있는 기회를 놓친 것이다. 어떤 사건이 있어도 그것을 공유하지 못했다는 게 이렇게나 큰 공허함으로 다가올 줄은 몰랐다. 힘들고 바쁜 순간에는 그 일들을 처리하느라 못 느꼈는데, 오히려 여유가 생기니 그 여유 속에 공유가 없다면 난 자리가 된다는 걸 알게 되었다. 그 순간 ‘나는 아직 혼자 잘 사는 사람이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혼자서 잘 생활하는 것과 혼자서 잘 살아가는 것은 엄연히 다른 문제였다.

생활(生活)
: 사람이나 동물이 일정한 환경에서 활동하며 살아감. / 생계나 살림을 꾸려 나감.

즉, 나를 억압하는 존재가 없이 생활할 수 있는 공간이 보장되어 있다면 생활 자체는 가능하다. 그리고 생존 본능만 있다면 사람은 어떻게든 생활하게 되어있으며, 본인의 기준이 그리 높지 않다는 가정하에 꽤나 만족스러운 생활도 가능할 것이다. 하지만 살아가는 것은 다른 문제다. ”‘나’로 살아간다 “는 건 혼자서 살아간다는 의미가 아니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라는 말이 괜히 나온 게 아니었다. 나라는 존재를 인식하는 건 본인이지만, 그 윤곽은 타인을 통해서 모습을 보인다. ‘나도 그런 적 있었어!’와 같이 내가 느꼈던 감정이 틀리지 않았다는 것을 확인하는 것만으로도 존재감의 형태가 나타난다. 감정은 안갯속의 강물과 같아서 이야기를 통해 안개가 점차 걷어지면 강의 모양과 깊이가 점점 뚜렷하게 보이기 시작하기 때문이다. 오늘의 나는 그 안개를 제대로 거두지 못했다. 그게 속상했다.


사투리를 사용하던 사람이 표준어만 사용할 때도, 본인의 감정을 잘 담은 단어를 찾기 힘들다던데, 하물며 언어가 다르면 얼마나 더 찾기 힘들까? 그래도 이 일이 내 일본어 실력을 키우는 데에 하나의 동기가 된다면 그렇게까지 나쁜 일은 아니지 않을까?라는 나름의 긍정회로를 돌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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