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에서 처음 만난 진상 손님
카페 알바를 시작한 지 두 달이 되어가고 있을 무렵, 말로만 듣던 진상을 만났다. 동서를 막론하고 어딜 가나 진상은 존재하겠지만 오늘은 내가 나라는 이유로 무시당했다.
내가 일하는 코메다(KOMEDA)라는 카페는 오전에 모닝세트라는 것이 있다. 오전 11시 전에 음료를 주문하면 빵, 버터나 쨈, 토핑을 무료로 골라 먹을 수 있는 것으로 내가 처음 코메다를 가게 된 이유기도 하다. 일주일의 시작인 월요일 아침부터 만난 진상은 시작부터 심상치 않았다. 주문을 할 때부터 모든 말에 날이 서있었다. 모닝 세트 주문을 받는데 빵과 토핑만 선택하셨길래 빵에 바를 버터와 쨈 중에 어느 것으로 하시겠냐고 물어보니 ‘필요 없어!’라는 답변을 받았다. 왜 짜증이지?라는 생각도 들었지만 카페에 오기 전 뭔가 기분이 안 좋은 일이 있었었을 수도 있고, 원래 그런 사람일 수도 있으니까 라는 생각으로 넘겼다. 무엇보다 빵에 아무것도 안 바르는 손님들도 많기 때문에 주문을 받는 것에는 이상이 없으니 그냥 넘어갔다. 주방에서 준비가 다 되어 방금 주문받은 테이블에도 내가 서빙하고 왔다. 이미 서빙을 할 때부터 그 자리에 있는 손님은 팔짱을 끼고, 다리를 꼬고, 나를 째려보며 ‘너 같은 건 믿지 못해‘ 라는 분위기를 한껏 풍기고 있었다. 그것도 그래… 하고 넘어가려고 노력했다. 문제는 그다음에 터졌다.
방금 서빙한 테이블의 벨이 눌려 가봤더니 손님이 빵을 ‘왜 빵에 아무것도 안 발라져 있어? 토스트면 당연히 버터가 발라져 있어야 하는 거 아니야?’라고 하셨다. 조금 당황했지만 아까 버터와 쨈 중에 둘 다 안 드신다고 하셔서 굽기만 한 빵이 나왔다고 말씀드리니 바로 드라마에서만 듣던 말을 들었다.
너 외국인이지?
어차피 일본어 못 알아듣잖아
다른 사람 불러!
얼른 부르라고!
아니 그동안 나와한 대화는 일본어가 아니었었나..?
여기서 내가 할 수 있는 대응은 없다고 판단한 뒤, 같이 일하는 일본인 직원인 ‘무라야마’상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무라야마상은 버터를 원하던 손님을 응대하고 와서 조용히 화를 내셨다. 저 손님은 왜 저렇게 화가 많은지 모르겠다고. 그리고 나를 다독여주셨다. 저 사람이 이상한 거니까 신경 쓰지 말라고. 처음 그 말을 들었을 때는 눈물이 막 차올랐다. 출근한 지 30분도 안되었는데 오늘의 업무를 망칠 수는 없지.라는 마음으로 내 감정을 최대한 표정에 드러나게 하지 않기 위해 평소보다 더 웃으면서 일했다. 그게 무라야마상 눈에는 더 걱정이 되었나 보다. 퇴근하시기 전까지 계속 나를 살펴주고 가셨다. 일본인에게 다친 마음을 다른 일본인에게 위로받아서 일하는 동안은 그래도 괜찮았다. 근데 집에 돌아가 혼자 있으니 마음이 점점 무거워졌다. 금방 괜찮아질 줄 알았는데, 하루가 지나서 월요일이 화요일 되었다. 월요일의 일은 화요일의 나에게까지 꽤나 영향을 미쳤다. 인생은 기분 관리라고 하는데, 생각보다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렇게 더 시간이 지나 수요일, 출근하는 날이 되었다. 이 날은 평소보다 늦게 출근하는 날이라 내가 일하는 곳이 아닌 집 근처 코메다를 갈 수 있었다. 희한하게 나는 마음이 불편한 일이 있으면 자꾸 팥이 땡긴다. 집 근처 코메다에서 모닝 세트로 빵과 버터, 단팥 토핑을 주문해 먹고, 걱정을 다스리는 내용의 책을 읽다가 출근했다. 한 시간 가까이 걱정을 다스리는 법을 읽었어도 내 마음은 아직 걱정투성이었다. ‘제발 월요일의 진상을 다시 만나지 않게 해 주세요.’ 출근하는 길 내내 속으로 빌고 또 빌었다. 다행히 월요일의 ‘그’ 손님은 오지 않았다. 수요일뿐만 아니라 그 이후로도 단 한 번도 마주친 적이 없다. 바쁘게 일을 하다 보니 무거웠던 마음이 서서히 녹아내리고 손님들에게 웃으며 응대하는 내 모습이 점점 자연스러워지는 게 느껴졌다. 그렇게 하루의 일을 끝내고 집으로 돌아왔다.
사실 마음이 괜찮아진 이유는 잘 모르겠다. 아침 독서, 모닝 세트의 팥앙금, 바쁘게 일한 하루, 좋은 손님들과의 만남, 진상 손님을 마주치지 않은 것 등 여러 가지가 있었을 수 있겠지만 정확하게 하나를 콕 찝기는 어려웠다. 확실한 건 내가 일하는 곳이 진상으로 인해 가기 싫었을 뿐이지, 그 자체로 가기 싫은 곳이 아니라는 점이다. 그래서 괜찮았다. 안 좋은 일이 생기면 그 발원지를 가기 싫어지는데 내 마음이 장소의 문제라는 것이 아닌 걸 알게 되니 한결 나아졌다. 안 좋은 마음은 어쩌면 원인이 있는 곳에서 풀릴 수도 있었나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