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에 오고 집도 어느 정도 마무리가 되고 나서 일을 구하기 시작했다. 어플을 통해 아르바이트를 공고를 보고 지원하기를 반복하다가, 지원한 곳 들 중에 사전 답사 할 곳을 정해서 시모키타자와를 다녀왔다. 지원하고 싶은 곳이 어떤 곳인지 보고 그 주변을 둘러보던 중, 비건&글루텐프리 빵집을 발견했다. 빵을 좋아하기도 하지만 건강에도 관심이 많은지라 일단 들어가 봤다. 막상 들어가니 빵에 대한 관심보다 분위기와 빵을 만드는 공간이 더 눈에 들어왔다. 그곳이 마음에 들었는지 나도 모르게 계산하면서 아르바이트를 구하시냐고 물어보았다. 계산해 주시던 직원분은 알고 보니 부사장님이셨고, 지점은 시모키타자와 말고도 몇 군데 더 있을 정도로 큰 곳이었다. 관심 있으면 인스타그램으로 연락을 달라는 말과 함께 가게에서 나왔다.
나오기 전에 지원 자격을 간단하게 설명해 주셨는데, 일본 회화는 물론 읽는 것도 잘해야 하고, 비건 카페라 외국인 손님이 많아서 영어도 필수 요건이라고 하셨다. 일본어를 시작하면서 영어는 거의 잊어버렸는데, 오늘의 대화로 나의 일본어 실력도 처참한 상태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렇게 구매한 빵을 맛도 제대로 느끼지 못한 채 입 안으로 욱여넣었다. 여러 생각이 머릿속에 쌓이기 시작했는데, 소위 루저가 되는 느낌이 이런 건가? 싶은 마음이 들었다
우울한 마음으로 집으로 가는데 공원에 벚꽃이 만개해 있었다. 맑은 하늘에 만개한 벚꽃, 바람으로 살랑이는 꽃비. 이 조화로움이 지금의 나와 상반되어 나는 더 짙은 그림자가 되어가는 기분이었다. 꽃길과 함께 있는 사람들을 보며 ‘나도 지금 저기 서있으면, 저 사람들처럼 행복해 보일 수 있을까?’라는 생각에 잠깐 고민을 해봤다. 그래, 만끽해 봐야지. 일본에서의 첫 봄인데, 첫 사쿠라인데.
가까이서보니 벚꽃뿐만 아니라 튤립과 같이 화단에 심어놓은 꽃들도 보였고, 꽃길을 걷는 사람뿐만 아니라 돗자리를 피고 피크닉을 즐기는 사람들도 보였다. 그냥 주변을 돌아보며 걷고 나니 어깨의 긴장도 풀리고, 시야가 조금이 선명해지면서 나도 모르게 내가 웃고 있었다. 잠깐의 산책으로 모든 생각이 멈추지는 않더라도 걷는 것 자체가 나에겐 너무나 큰 도움이 되었다. 하지만 집에 오자마자 다시 불안감은 쌓이기 시작했다.
‘너무 현실성 없이 꿈만 좇는 건가? 일단 아무 데나 한 군데에서 일을 시작하는 게 나을까?’
부정적인 생각은 다른 생각들보다 더 선명하고 자세한 꼬리 질문을 만들어낸다. 생각의 멈춤 버튼 따윈 보이지 않았다. 그러다 저녁을 먹고 아빠랑 통화를 하는데, 수화기 너머의 진심으로 조용히 눈물이 터졌다.
조급해하지 마. 외국까지 나갔는데 조급해하면 정신병자 돼.
무슨 일에 전문가로 간 것도 아닌데 일 찾기가 당연히 어렵지.
사람은 다 때가 있는 거야. 두 달이든, 석 달이든 그 이상이든 너도 너의 때가 있는 거야.
넌 너가 사는 방식을 찾으면 돼. 그냥 오늘을 살아. 내일은 걱정하지 마.
아빤 그랬어.
이 말들과 함께 더 많은 말이 있었다. 다 책에서 읽고, 인터넷에서도 본 말들인데 아빠가 해주니까 더 크게 다가왔다. 험한 세상에서 살아남는 법만 알려주던 엄한 아빠가, 30년 가까이 안 해주던 말을 내가 가장 필요로 하는 순간에 전해줬다. 오늘을 위해 그동안 안 해주셨나 보다. 그 말들 덕분에 산책으로도 없어지지 않았던 조급함이 녹아내렸다. 조급함이 녹아내린 자리에는 의지가 남아있었다. 아빠가 그랬다. 일본이든 어디든 해외에 꿈을 찾으러 가는 사람이 많지만, 끝까지 버티지 못하는 사람이 대다수라고. 그래서 내 의지는 포기하지 않고 죽이 되든 밥이 되는 끝까지 버티는 것이다.
‘그래도 내가 호강시켜 드려야지~’
우울한 마음을 들키고 싶지 않아서 장난스럽게 한 말에
‘에이! 그런 거는 신경 쓰지도 말어~’
라는 나와 같은 억양의 말로 돌아왔다.
어쩌면 다 알겠지. 내 아빤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