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하늘에 먹구름이 있어서 다행이다

by 루비나

일본에 워킹홀리데이를 온 지 한 달이 넘어가고, 집 안에 가구가 하나씩 자리를 잡으며 사람 사는 느낌이 들 때쯤. 그때부터 일을 찾기 시작했다.

2주 넘게 이력서를 넣고, 떨어지고, 겨우 잡은 면접을 보고, 또 떨어지고... 하루는 면접을 망치고 집에 가는 길이 먹구름이 잔뜩 껴있었다. 하늘이 신기하도록 내 마음과 같았다. 면접을 보러 가는 길은 마음에 자신감과 희망이 가득했고, 하늘도 깨끗한 파란색에 구름도 별로 없었다. 살짝살짝 보이는 구름도 작고 하얘서 먹구름이 생길 거라고는 상상도 못 한 날이었다.


그날의 면접은 내 기준에 못 미쳤던 수준이 아니라 정말 미련조차 남지 않을 만큼 시원하게 말아먹었다. 누가 귀를 막은 것처럼 아는 단어도 안 들렸고, 알아듣고 대답을 하려고 해도 한국말로도 할 말이 생각나지 않았다. 머릿속에 안개가 낀 것처럼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면접이 끝나고 나니 머릿속에 있던 뿌연 안개가 시커멓고 무거운 먹구름이 되어 가슴으로 내려왔다. 집에 가는 길, 하늘을 보니 면접을 보러 갈 때의 하늘은 온데간데없고 먹구름만 가득했다. 그래서 오히려 편했다. 내 마음에 있는 것과 내 눈에 보이는 게 같아서 오히려 안정적이었다. 맑은 하늘을 보면 기분이 좋을 때도 있지만, 그 맑음이 항상 힘을 주지는 않나 보다. 마음에 빛이 없는 날의 하늘이 고채도의 파란색이었다면, 나는 그 색에 깔려 지하 저 깊숙한 곳으로 떨어졌을지도 모른다.


이 날 처음 알았다.
먹구름이 나를 위로해 줄 수도 있구나.


그렇다고 하루가 끝날 때까지 먹구름은 아니었다.

갑자기 그런 생각이 들었다. 시간과 돈, 내 인생을 걸어서 하려고 했던 게 망한 것도 아닌데 이렇게까지 우울할 필요가 있을까? 물론 사람이니까, 태생이 강한 사람이 아니니까 마음속 깊은 곳엔 불안이 작게 숨어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이 정도로 불안을 크게 느끼면 나는 그 정도의 그릇이 아닐까? 지금은 작은 실패들을 모아서 내 그릇을 키우는 과정이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그 마음을 가지고 저녁을 먹고 난 후, 갑자기 창으로 강한 빛이 들어왔다. 해가 지면서 들어온 노을빛이었는데, 순간 내가 조명을 켰었나?라는 생각이 들며 당황할 정도로 강한 빛이 들어왔다. 창을 열어 밖을 보니 아직 먹구름이 가득한 하늘이었지만, 구름이 조금씩 움직이며 생긴 틈으로 햇빛이 삐져나온 거였다. 그저 새어 나온 빛인데 이렇게 밝은 빛이 들어온다고? 그 빛을 보니 생각보다 괜찮아졌다. 이유는 모르겠다.

일단 오늘은 괜찮아졌으니 그걸로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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