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물여섯 살 때 다녔던 직장은 사무실에 여직원이 나를 포함해 서너 명이 고작이었던 작은 곳이었다. 이십 대의 나는 특별한 곳 없는 평범한 아가씨였지만 누구나 그렇듯 그때의 젊음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알지 못했다. 다만 나보다 열 살 많은 선배의 패션을 보며 '저 언니는 저게 최선일까'하는 생각은 자주 했었던 것 같다. 옷을 자주 사기는 하는데 어딘가 중년의 느낌이 스멀스멀 풍기던 그 언니. 나이 드는 게 남의 일인 양 이상하게 그때는 나이 들어간다는 게 크게 와닿지 않았다.
그런데 이제 내 나이 마흔둘. 중년의 패션을 자랑하던 그 언니의 나이를 진작에 넘어섰다. 나도 이제 누군가에겐 중년의 아줌마로 보이겠지 생각하니 참 씁쓸하다.
그러나 그러한 자각은 씁쓸한 축에도 못 낀다는 걸 깨닫기까지 오래 걸리지도 않았다. 결혼 전 다녔던 회사에서 지겹게 견뎌야 했던 인간관계에서 오는 스트레스를 다시 겪기 싫어서 결혼 후 육아를 하면서 인간관계 자체를 거의 단절하다시피 살았다. 중요한 몇 명의 사람들, 익숙한 친구들 외에는 내 삶에서 제외시켜 놓고 십 년을 살았다. 그래서 참 편했다. 낯가리는 내 성격상 단순한 일상은 지루하기보다는 편안함을 느끼게 해 주었고 아이들에게 집중할 수 있는 시간들이었다. 그 사이에 나는 '아줌마'라는 소리에 익숙해지는 나이가 됐고 사회생활과는 멀어져 가고 있었다. 청춘일 땐 그게 청춘인지도 모르듯이 나이가 들어가는 것 역시 서서히 스며드는 것이었던 모양인지 나는 내가 그렇게 나이 들어가는 줄 모르고 살았다. 아이들과 집이라는 안전한 곳에서 나는 늘 부족함이 없었다.
그러나 삶은 예견할 수 없는 것.
작년 가을 다시 시작된 나의 사회생활.
출근 첫날 나는 악몽을 꾸었다. 내가 일하는 곳은 같은 사무실을 쓰는 여자만 열일곱 명, 총인원은 백칠십여 명에 가까운 규모가 작지 않은 곳이다. 무기도 없이 전쟁터에 던져진 것 같았다. 모든 게 낯설고 모든 게 어려웠다. 내가 살면서 맞이했던 일 중에 이렇게 어려웠던 적이 있던가. 아무리 생각해 봐도 기억나지 않는다. 소수의 인원에게 맞춰진 나의 눈과 생각과 몸짓은 낯선 장소, 낯선 업무에 적응하느라 오후가 되면 방전되기 일쑤였다. 어렵고, 느리고, 어색한 하루하루가 모여 시간은 가고 어느덧 봄은 왔다. 그 몇 개월 동안 쓰디쓰게 인정해야 하는 것은 '나는 예전만 같지 못하다'와 '나는 늙어가고 있다'였다. 죽어도 인정하기 싫었지만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내가 숨어 살았던 십여 년 동안의 시간 동안 모르고 살았을 뿐이었다. 세상은 그렇게 흐르고 있었고 나는 고작 마흔둘의 나이에 이유 모를 패배감에 젖어 결국 고개를 수그리고 만 것이다. 이제 겨우 스물여섯 살인 같은 사무실의 직장 동료가, 나는 다섯 번 만에 간신히 손에 익힌 프로그램을 단 한 번만에 해내는 것을 보며 또는 이미 알고 있던 업무지식을 매번 뒤늦게 깨닫는 나를 보며 이제 이십 대의 나는 사라지고 없다는 걸 인정해 가는 하루를 보내는 요즘. 희망이라고는 '조금 느릴 뿐 틀린 건 아니니 언젠가는 잘 해내겠지.' 하는 막연한 믿음뿐이다. 내가 이렇게 형편없는 사람이었나 하는 고통스러운 사실은 바뀌지 않으니 이제 내가 해야 할 일은 조금이라도 나은 사람이 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것뿐이다. 몸과 마음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다시 정해야 한다는 뜻이다. 한 끼만 굶으면 체중이 줄던 그 시절의 나는 없고 나날이 조금씩 늘어나는 뱃살을 걱정해야만 하는 나만 남았다.
쓰다 보니 명확해진다.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 거창하진 않지만 중요한 일임은 분명하다.
서둘러 길을 정해야 한다.
늙음을 한탄할 것인가 아니면 곱게 늙어갈 방법을 찾아 나설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