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에게 웃어주기

익숙함 속에서 새로움 찾기

by 아름다운 그레이

사회에 발을 내딛은 지 이제 겨우 두 달이 되어간다. 어색해서라도 웃고, 성격 좋은 사람으로 보이고 싶어 웃고, 별 재미도 없는 시답지 않은 이야기에도 나는 당신의 이야기에 아주 흥미가 있다는 걸 가장해서 웃어주고 여러 가지 이유로 하루에 수십 번 웃음을 꾸며대고 있다. 이 와중에도 등신같이 웃는 웃음과 밝은 사람으로 보이는 웃음을 구분하려 애쓰고 있는데 그날은 이상했다. 유난히 내 자신이 위선적으로 보이는 시작한 것이다. 일이 일찍 끝나는 날이어서 그랬을까. 기분이 좋기는 했지만 그날따라 아직은 관계가 서먹한 동료가 가볍게 던지는 농담에도 나는 함박웃음을 지어주고 있는 것이다. 마치 웃겨 죽겠다는 것처럼. 게다가 입사 이후 지금까지도 지나가다 복도에서 마주치는 수많은 직장동료들에게도 마스크 너머 눈웃음을 던지며 일일이 목례를 하는데 그래서인지 눈가 주름이 요즘따라 늘어난 것만 같은 느낌이다. 괜한 나의 기분 탓일까.

우러나지도 않은 웃음을 여기저기 남발하고 다니니 어쩐지 퇴근하는 뒷길이 허탈하고 기운이 빠진다. 그렇게 상냥하게 웃어준대도 누구 하나 나에게 특별히 더 친절하게 굴지도 않는데 나의 이 허망한 웃음은 목적지가 어디인가. 나를 위한 일인가, 다른 사람을 위한 일인가. 화를 내는 데에도 에너지가 필요하지만 꾸며낸 상냥함에도 꽤 많은 에너지가 소비된다는 것을 몸소 느낀 그날이 지나고 다음날 출근길이 되었다.

나보다 5분 먼저 집을 나선 남편이 지하주차장에서 올라오는 길. 같은 출근길이기에 마주치게 되었다.


"잘 가. 운전 조심해."


이게 다였다. 지금 생각해보면 웃기는커녕 너무나도 단조로운 말투.

심지어 손도 흔들어주지 않았다.

남편은 그렇게 가던 길을 가고 나도 출근하기 위해 차에 올라 시동을 켰다. 오늘은 어떤 일이 기다리고 있나 생각을 정리하고 특별히 더 신경 써서 인사해야 하는 사람을 생각하고 나니 문득 방금 지나간 남편이 생각났다.

내가 방금 뭐라고 인사했었지?

기억이 안 났다.

남편 얼굴을 마주 보기는 했었나?

그것도 기억이 안 났다.


평소 내가 그렇게 욕을 해댔던 '다른 사람들에겐 친절하고 가족에겐 소홀한 사람'이 바로 내가 아닌가?

그 생각이 드니 나 자신이 가증스러워 견딜 수 없었다. 사회생활을 무탈하게 해내려면 어느 정도의 가면은 필요할지도 모른다. 실제의 나는 너무나 경망스러워서 얌전한 척, 조신한 척해야 그나마 매끄러운 인간관계를 맺는데 그래서인지 집이라는 안전한 공간에서는 경망스럽고 잔정 없는 나의 모습이 순식간에 드러나고 만다. 그러니 남편에게 따스하게 아침인사를 했을 리가 없다.

밖에서 짓는 웃음 절반이라도 남편에게 해보자 다짐했고 기특하게도 그날 저녁부터 실천하고 있다. 출퇴근길의 남편에게 조금이라도 따뜻하게 인사하고 있는 것이다. 어딘지 모르게 죄책감이 씻기는 기분이 드는 건 어쩔 수 없다.

매일 보는 얼굴이라 익숙함에 젖어 무뎌지는 게 이렇게 무서운 거라는 걸 또 한 번 깨달았다. 내 옆에 있는 사람에게 웃어주는 게 쉽지 않겠지만 일상이 무료해질 때쯤 다시 한번 깊이 생각해봐야 한다. 우리는 익숙함에 젖어 놓치고 사는 게 꽤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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