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04.16-2021.04.22
펀과 밥은 광활한 자연에 스며든 채 묻어뒀던 아픔을 공유한다. 아니 어쩌면 자연이 이들을 자신의 일부로 품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이 순간 이들의 고백은 마냥 허구로만, 그러니까 각본에 적힌 대사 몇 마디로만 느껴지지 않는다. 노매드들은 가면을 내려놓고 위선과 거짓을 벗어던진 듯 그 어느 때보다도 진솔해질 수 있는 시공간 어딘가에서 움직이고 머물기를 반복한다. 밥이 주선하는 노매드들의 힐링 모임을 보며 문득 <파이트 클럽>의 치료 모임이 생각나기도 했다. 자연과 도시라는 공간성의 차이에서 비롯된 여러 갈래의 생각들이 머리를 맴돈다.
펀을 연기한 프란시스 맥도먼드는 비전문 배우들(대다수의 실제 노매드들)과 호흡을 맞추는데, 난 영화를 보다가 어느새 맥도먼드가 배우라는 사실을 잊어버렸다. 사실 이 영화에서 관찰 다큐멘터리이자 극영화의 성격이 모두 느껴지는 이유가 물론 맥도먼드의 뛰어난 연기에만 있는 건 아니다. 자연광을 활용하고 구도와 사이즈에 대비를 주는 섬세한 카메라의 시선들(흔히들 테렌스 맬릭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고 하는), 탄탄한 원작 논픽션과 그걸 훌륭하게 각색한 클로이 자오의 능력, 소수의 전문 배우와 다수의 노매드들이 만들어 내는 리듬 등의 요소들이 단단하게 맞물려 간다. 이 영화는 현실과 허구의 경계를 지워가면서 그 해체된 시공간 어딘가로 관객을 이끈다.
영화 속 노매드의 삶에는 정착과 방랑이 끊임없이 공존한다. 차마 한곳에 머무를 수 없어 떠도는 삶을 선택한 이들은 커다란 트럭이나 밴을 집 삼아서 움직인다. 도대체 어디까지가 정착이고 어디까지가 방랑인가. 대형 밴을 집이라고 한다면 그 공간도 나름의 정착지가 될 수 있지 않은가. 목적지를 정할 수 없다. 아니 정하지 않는 거라고 보는 편이 맞는 걸까. 순환의 움직임이 반복되다 보면 약간의 균열이 피어나기도 한다. 스침, 조우, 정지(도착이 아니다) 등의 순간이다. 영원한 이별도, 영원한 만남도 없기에 순환과 회귀 어딘가에서 쉴 새 없이 오가는 떨림의 순간들만이 있을 뿐이다. 사실 이 영화에 관해 하고픈 말은 많다. 못다 한 이야기는 장문으로 풀어내지 않을까.
직관적으로 드러내고 솔직하게 표출하는 영화다. 고민한 흔적은 거의 느껴지지 않고, 익숙한 문법과 연출로부터 나오는 전형적인 효과들이 극을 지탱한다. 카메라는 주변 배경을 넓게 잡으면서 피사체를 쓸쓸하게 덩그러니 남겨둔다. 껍데기만 남은 듯한 태구와 재연의 내면은 인물의 공허한 표정을 통해서 얕게나마 환기된다. 어쩌면 이미지로 모든 걸 해결하려 하는 영화가 아닐까 싶다. 극의 활력이 배우들의 연기를 통해서 생성되는 순간이 많은데, 이러한 순간들을 묶어둔 채 극의 깊이를 더하는 장치들이 상대적으로 부족하다는 점이 아쉽다. 자연스레 영화의 구성에 있어 휘발성이 강하다고 느낄 수밖에 없다.
영화는 아리스토텔레스가 남긴 말을 화면에 띄우며 시작한다. 인간은 세 종류로 나뉜다: 산 자, 죽은 자, 바다로 나간 자. 바다로 나간 자에겐 삶과 죽음이 모두 공존하는 심해의 어딘가, 미지의 공간만이 허락되는 것인가. 어쩌면 잠수함은 존재를 식별하기 힘든 분리 그 자체를 만들어내는 장소라는 점에서 더욱 생사의 경계를 흐리는 공간처럼 보이기도 한다. 바다로 나간 자들은 딜레마에 봉착한다. 감각이 제한되는 공간에서 인간은 위험에 처하고, 선택을 강요받으며, 언쟁하고, 소리에 집중하며, 고뇌하고, 생각한다. 일종의 윤리 게임처럼 보이기도 하는 이 영화의 민감한 소재는 감상에 매몰되지 않고 현실감을 추구하면서도 차곡차곡 쌓아올린 서스펜스의 쾌감 또한 보장하고 있다. 음향을 활용하는 방식 또한 제법 흥미로운 구석이 많다.
이 영화는 주인공으로 보이는 인물을 내세우고 있지만, 묘하게 군상극의 양상으로 변화하면서 후반으로 갈수록 다성적 서사 전개를 보여주는데, 이는 전형성을 비껴가는 느낌을 준다. 한편 잠수함들이 대립하는 긴박한 상황 묘사에서는 리얼리즘의 질감이 묻어나지만, 서사 전개의 동력은 굉장히 우연적인 장치들에 의존하기 때문에 묘한 이질감이 생겨난다는 점이 아쉽다. 이 지점이 호불호가 갈리는 원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 게다가 다소 의아한 점이 있다면 파울라 베어가 연기한 서점 주인의 제한적인 활용법인데, 어쩐지 그 배역은 주인공을 묘사하기 위한 도구처럼만 소비된다.
떠나야 하는 자와 남을 수밖에 없는 자들 사이의 균열과 긴장, 그 틈을 파고드는 낭만을 포착하는 시선이 인상깊다. 소재를 다루는 방식 자체가 정치적 함의를 전제한 채 프로파간다로 매몰될 수 있는 위험을 안고 있음에도, 클로즈업된 보가트나 버그만의 얼굴이 뿜어내는 특유의 고전미 따위의 요소들이 영화를 매혹적으로 가꿔낸다. 정치를 논하는 영화가 반갑지는 않지만, 이 영화는 그러한 정치성을 장르적 인장과 고혹적인 클리셰들로 가린다. 사랑과 만남, 우정 등의 테마가 자연스레 부각된다. 도저히 거부할 수 없는 낭만적인 요소들로 가득한 영화다. 한편 경유지와 난민들, 나치와 전쟁이 얽힌 배경 때문에 난민의 실존적 고뇌와 유령성을 독특하게 매만졌던 펫졸드의 <트랜짓>(2018)이 자꾸만 떠오르기도 했다.
이미지 출처: 네이버 영화, IMD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