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06.11-2021.06.17
이 영화는 제목에서부터 플롯을 연결해가는 주요 소재를 대놓고 환기한다. 길거리 장물아비의 현란한 언변으로 포문을 여는 <록 스탁..>은 두 정의 총을 집으려는 순간을 프레임에 가둬버리고 끝낸다. 종잡을 수 없는 규칙, 어디서 뭐가 나올지 예측할 수 없는 편집이 인상 깊다. 이 영화를 즐길 수 있는 법은 그 거칠고 생생한 작법을 음미하는 데서 출발한다. 빠른 템포로 교차되는 플롯을 촘촘하게 쌓아가는 방식은 중심 소재인 마약, 돈, 총 두 정을 두고 벌이는 인물들의 이해관계를 절묘하게 파고든다. 중심 소재들의 행방에 따라 인물들의 목표와 동선이 시시각각 달라지면서 예기치 못한 변수가 생성된다. 집요하게 플롯을 엮어내는 가이 리치는 시공간을 접합하는 특유의 편집을 통해 자칫 생겨날 만한 지루함을 사전에 차단한다. 다소 무리하게 연출된 듯한 분할된 화면이라든가 빨리 감는 구간들조차도 능글맞은 가이 리치의 자신감 때문에 매력적으로 보인다. 한없이 꼬여가는 것처럼 보여도 정신을 차려보니 스르륵 풀려버리는 영화다. 알다가도 모르는 게 인생 그 자체가 아니겠는가. 인생사 새옹지마라더니, <록 스탁...>의 인물들이 겪는 일들을 응시하고 있자니 유쾌한 무드보다도 씁쓸한 여운이 오래 남는다.
'마약, 돈뭉치, 총'이라는 전작의 매우 직관적인 타이틀에서 다양한 의미를 품은 'Snatch'라는 단어로 타이틀이 전환되었다는 게 어쩐지 눈에 밟힌다. <록 스탁...>에 자본 몇 스푼을 첨가한 변주 버전과도 같은 이 영화는 전작과 마찬가지로 재기 발랄한 실루엣을 뽐내지만, 은유하는 바는 훨씬 다양해진 인상을 준다. 그러니까 앞서 말한 타이틀의 변화가 나름 의미심장하다. 이 영화의 제목이 '다이아몬드, 도그, 갬블 앤 트레일러'가 아니기 때문에, 물건을 매개로 플롯을 음미할 수 있었던 전작과 살짝 다르게, 인물들의 행위 등에 조금 더 다층적인 의미를 부여하고 싶어지기도 한다. 큰 판돈이 오가는 불법 스포츠 도박이라는 조작된(혹은 정교한) 확률 게임보다도 치밀하게 계획된 집시의 음모가 인상 깊다. 욕망에 속박된 인간은 시야가 좁아지고 냉철한 판단력을 상실한다. 그들에겐 역시나 등잔 밑이 어두운 법이다. 많은 이들이 허망하게 죽고, 또 다른 많은 이들이 질긴 명줄을 유지하기도 한다. 그렇게나 매달리던 다이아몬드는 우연찮게 전혀 다른 사람에게로 가닿으려다가도 끝내 어디로 가는지 모를 기묘한 이해관계를 만들어낸다. 모든 걸 지배할 수 있어 보이는 강력한 권위마저도 한낱 휴지 쪼가리에 불과하다.
P.S. 브래드 피트의 집시 연기가 인상적이다.
원점으로 회귀하거나 수렴하는 군상극이 아니라 수렁으로 빠져드는, 기나긴 절망의 늪으로 침잠하는 자들의 처절한 몸부림에 가까운 영화다. 영화를 지탱하는 음악과 편집은 그 자체로 존재감을 쉴 새 없이 발산한다. 감독은 영화에서 기교와 과시만을 위한 기법이 아니라 전적으로 표현하고자 하는 바를 위한 영화 기법을 매우 영리하게 활용한다. 타임 랩스나 분할 화면 등 역시 무리한 시도보다는 탁월한 센스처럼 보인다. 영화를 보는 내내 특유의 스타일이 바람직하게 적용되었다는 인상을 받았는데, 어쩐지 이런 의문도 생겼다. 그러니까 이런 장면에서 이 기법이 최선이었을까? 싶은 장면들도 종종 있었다. 그런데 그 의문이 거부감이나 안타까운 마음에서 나온 의문이 아니라, 감독이 구상한 상황 자체를 어떻게 형상화할지에 관해 같이 머리를 굴려보고 싶은 호기심에서 출발한 의문이다. 다시 말해 관객의 수용도를 굉장히 능동적으로 가꿔주는 영화다.
유독 디즈니 애니메이션 가운데 <라푼젤>은 내게 좋은 인상으로 남아 있다. 이 영화를 여러 번 돌려보았던 때가 있다. 한창 무언가를 바라고 꿈꿨을 때였다. <라라랜드>와 <퍼스트맨>, <라푼젤>은 꿈을 열망하던 내가 단골처럼 드나들던 세계였다. <라푼젤>은 간결하다. 이 영화는 꿈꾸는 자들의 이야기이다. 평생을 탑에 갇혀 살았던 라푼젤은 자신의 생일마다 하늘로 떠오르는 수많은 연등을 가까이서 보고 싶어 한다. 그러니까 이 영화는 꿈꾸는 자가 바라던 것을 성취하고 목도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과정에만 집중한다. 라푼젤을 향해 이런 질문을 던질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그거 보고 나면 그다음엔 뭔데?". 이 질문은 잘못된 질문이다. 꿈꾸는 자들에게 꿈에 가닿는 순간을 만끽하는 것만큼 중요한 건 없다. 그 이후는 고려 대상이 아니다. 뭐 현실이라면 조금 얘기가 다르겠지만.
영화는 꿈을 꾸거나, 꿈을 꾼 적이 있거나 강하게 무언가를 열망했거나, 바라던 것을 잠시 포기했거나, 욕망을 저버리지 못하는 자들로 빼곡히 채워져 있다. 주점에서 벌어지는 인상적인 'I've Got A Dream' 시퀀스를 떠올려 보자. 도적 떼들은 모두 저마다 간직하던 속내를 털어놓는다. 유일하게 플린만이 나는 꿈같은 거 모른다고 하는 모습도 떠오른다. 결국 플린의 꿈은 라푼젤과 함께하는 삶이었다. 뭐가 어찌 됐건, 꿈의 경중이나 중요도는 따질 수 없다. 저마다의 소중한 꿈을 간직하고, 꿈과 가까워지기 위해 노력하고, 꿈꾸던 순간을 음미하는 것 자체만으로 의미 있는 건 아닐까. 사실 현실에선 꿈이 뭔가요, 라는 질문에 대답하기 힘들어하는 사람이 많다. 나도 그랬다. 그럼에도 우리는 크든 작든 꿈을 꾸며 살아간다. 사실 원대한 꿈이 아니더라도 무언가를 바란다는 일은 참 좋다. 그러한 열망에 사로잡히는 것이 바로 삶을 추동하는 수많은 이유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이미지 출처: 네이버 영화, IMD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