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 영화

2021.06.18-2021.06.24

by 드플레

<비디오드롬(Videodrome)> (데이비드 크로넨버그, 1983)


<비디오드롬>은 매체성과 물질성에 관해 많은 담론을 만들어 낼 수 있다. 영화가 감독이 천착하는 테마를 전달하는 도구처럼 설계되느라 그 작품 자체가 뿜어내는 생명력은 덜 한 듯 보이나, 감독이 물고 늘어지는 소재 자체가 기막힌 통찰력과 기괴한 상상력으로 둘러싸여 있다는 점이 이 영화를 흥미롭게 만든다. 현실과 환각이 구분되지 않는 광경이 많이 펼쳐진다. 티비 화면 속 이미지와 현실의 경계가 무너지고, 육체의 말단부 혹은 육체의 표면이 열리거나 절개되어 그 경계 또한 무화되어 세상과 상호작용한다. <비디오드롬>은 육체, 경계, 폭력, 욕망, 매체를 경유하는 메타포의 축제와도 같다. 동시에 크로넨버그는 익살스럽게 경고한다. 80년대에 크로넨버그가 던졌던 화두가 2020년대에도 여전히 유효하다. 더 나아가 앞으로도 유효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 영화는 다양한 사회학/매체 이론과도 소통할 수 있고, 육체에 몰두한 메를로 퐁티와도 만날 수 있으리라 생각하지만, 내 식견이 거기까지 미치지는 못하기에, 나중을 기약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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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디오드롬(Videodrome)>



<루카(Luca)> (에린코 카사로사, 2021)


인간 세계와 바다 생물의 세계의 경계를 넘나드는 루카의 존재론적 고민은 이탈리아의 매혹적인 풍광과 동심 가득한 환상 속에서 굉장히 가볍고 경쾌하게 묘사된다. 너무 무게감이 부족한 건 아닌가 싶다가도, 가만히 곱씹어 봤더니 나쁘지 않은 선택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사실 <루카>의 마을 사람들이 순식간에 바다 괴물들을 수용하는 광경은 출신 성분과 생김새 등을 들먹이며 배타적인 자세를 취하는 상당수의 현대인들에게 분명 낯설어 보일 것이다. 차별과 혐오를 둘러싼 작금의 담론과 <루카>의 판타지는 거리가 있어 보인다.


그래서 오히려 <루카>는 말하고자 하는 바를 역설하는 과정에서 관객 내면 어딘가에 자리한 순수한 무언가를 자극한다. 이탈리아 항구 도시의 서정적인 분위기와 아이들의 깨끗한 마음, 그리고 비에 씻겨내려가는 혐오와 배제의 배타적 집단의식이 어우러진다.


한편 영화는 루카가 기차를 타고 또 다른 경계성을 지워내기 위해 새로운 세상으로 나아가는 모습을 잡으며 끝난다. 과연 루카가 다른 지역에서 무사히 적응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모두가 어우러지는 이상적인 세상을 여전히 확신할 수 없기 때문에 루카가 세계에 녹아드는 모습을 표현할 수 없던 건 아닐까 싶기도 하다. 마냥 판타지스럽지만은 않은 씁쓸한 여운도 희미하게 생겨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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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카(Luca)>



<블랙 스완(Black Swan)> (대런 아로노프스키, 2010)


니나가 자신을 파멸(혹은 완성)로 이끄는 동안 도식화된 인물들이 쉴 새 없이 그녀와 상호작용한다. 처음엔 이 작위적인 대립항의 설정들이 진부하게 느껴졌는데, 보란 듯이 감독은 현실과 환각을 넘나드는 특유의 센스 넘치는 연출로 이를 매력적으로 가공하고 변주해낸다. 단장은 니나의 심연을 자극하여 흑조로 탈바꿈시키기 위한 역할과 동시에 니나 자체를 타락시키는 듯한 인상을 풍기기도 하는 다변화된 속성을 지녔다. 니나의 엄마는 니나를 억제하는 인물이면서 동시에 니나가 극복해야 할 거대한 산과도 같은 존재로 기능한다. 감독은 릴리와 베스가 니나와 관계를 맺어가는 과정 또한 전형적인 틀에서 변주하는 활용법을 보여준다. 소품 배치 등의 자잘한 디테일 요소부터 거시적인 색감, 화면 구도, 핸드헬드 촬영 등에 이르기까지 전반적인 미장센이 참 매혹적이다. 어두운 영역과 검은색을 잘 활용한 영화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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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랙 스완(Black Swan)>



<네이키드 런치(Naked Lunch)> (데이비드 크로넨버그, 1991)


윌리엄 리는 현실과 환상의 경계를 넘나든다. 사실 분간이 가지 않는다. 어디까지가 리의 환상이고, 어디까지가 현실인지 말이다. 이쯤 되면 그가 살충 구제원인지 작가인지 약쟁이인지 비밀 요원인지는 사실 중요하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 윌리엄 리가 그 어떤 존재로 기능하든, 각종 상징과 메타포들을 입맛대로 경유한다면 이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것들과 관련해서 다층적인 접근이 가능하다. 굳이 내게 와닿는 주인공의 자아라면, 아마도 작가 혹은 텍스트의 생산자로서의 윌리엄 리가 아닐까 싶다. 세계 내 존재가 몸담는 여정, 개체의 본능적인 선택들로 점철된 여행길을 이토록 기괴하고 익살스럽게 추적하는 영화가 어디에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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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이키드 런치(Naked Lunch)>



이미지 출처: 네이버 영화, IM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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