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 영화

2021.06.04-2021.06.10

by 드플레

<옐라(Yella)> (크리스티안 펫졸드, 2007)


적어도 내가 접한 펫졸드의 2010년대 이후의 영화는 언제나 기이하고 모호한 기운에 둘러싸여 있다. 게다가 영화 곳곳에는 구멍이 숭숭 뚫려 있는 듯 보이나, 나는 종종 그런 틈을 응시할 때 사유의 단초를 포착할 수 있었다. 특히나 마음에 드는 포인트는 펫졸드가 시공간을 다루는 방식인데, 그는 시간성을 해체할 때도 많고, 공간의 성격을 은근슬쩍 변형할 때도 있다. 관객의 지각 체계를 뒤흔드는 시공간의 압축과 변형, 중첩은 그의 영화에 생명력을 불어넣는다(<바바라>는 그러한 색채가 옅은 영화였지만). 펫졸드의 영화적 시공간을 탐색하는 작업은 그의 영화를 더욱 특별한 텍스트로 가공할지도 모른다.


2007년의 <옐라>는 그의 최근작들에서 포착됐던 여러 모티브들의 원형이 담긴 영화처럼 보인다. 불가해한 공포와 고통의 잔상이 옐라를 괴롭힌다. 물에서 빠져나온 옐라가 겪는 일들은 어딘가 미심쩍어 보인다. 옐라는 혼란에 빠진다. 출처를 알 수 없는 괴이한 소리, 불쑥 찾아오는 소름이 끼치는 경험들은 마치 <운디네>(2020)에서 운디네가 겪었던 불가해한 일들과 비슷해 보인다. 옐라가 겪는 일들은 그녀가 자체적으로 생산해낸 환상인가 트라우마의 발현인가, 그것도 아니라면 정말 비현실의 영역이 현실로 스며들어 형상화된 것인가. 그 어떤 것도 명확하진 않아도 옐라의 실존적 지위가 무너지고 있다는 징후는 뚜렷하다. 영화 내내 제법 친절하게 세팅된 설정들 때문에, 옐라는 자본의 논리에 종속된 도구적 인간을 은유하는 존재처럼 보인다. 인상적인 엔딩이 형성하는 담론이 있어야 한다면, 그건 옐라의 삶이 철저하게 기만당했다는 데 있다. 그녀가 삶을 부정당했어야만 하는 특별한 이유라도 있었는가. 펫졸드는 특징적인 표지를 통해 옐라의 심리를 시청각적으로 형상화할 뿐, 그녀의 삶을 향한 가치 판단을 드러내지 않는다. 펫졸드가 집중하는 작업은 사회에 잠재한 균열을 끄집어 내어 개인의 삶을 통해 불안을 표출하는 일이다.


P.S. 영화 곳곳에서 포착되는 '빨강'이 참 매력적이다. 왜 그랬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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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옐라(Yella)>



<굿바이 레닌(Good Bye Lenin!)> (볼프강 벡커, 2003)


이데올로기가 충돌하던 혼란스러운 시대상의 부피감에 휘둘리지 않으면서, 사회 구조 아래 놓인 개인의 사소한 사연들을 깊이 있게 담아낸다. 이 균형감을 유지하면서 서사를 풀어나가는 작업은 상당히 어려운 일인데, 그 작업을 해낸다는 점이 가장 인상 깊다. 알렉스에게, 라라에게, 알렉스의 엄마에게, 알렉스의 아빠에게, 알렉스의 누나에게 각자 조금씩 다르게 다가오는 장벽 붕괴 이후의 삶이다. 알렉스가 끝내 어머니의 세계를 지켜주는 데 성공했다는 사실이 주는 여운보다도, 그런 노력과 시도로 점철된 과정 가운데 여러 이해관계에 신음하는 인물들의 다성적 서사를 음미할 때 더욱 풍부한 감상이 가능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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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굿바이 레닌(Good Bye Lenin!)>



<캐시트럭(Wrath of Man)> (가이 리치, 2021)


'Wrath'는 분노, 진노, 노여움 등의 다양한 의미를 품은 단어다. 살짝 아쉬운 점이 있다면 이 'wrath'와 묘하게 이질감이 드는 주연 배우의 연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제이슨 스타뎀의 시니컬하고 절제된 감정 묘사는 'wrath'를 형상화하기엔 역부족이었다고 느꼈다. 응축된 감정의 덩어리들을 살얼음판을 걷듯 긴장감을 곁들이면서 들끓어 오르게 하는 방향으로 연기를 했어야 더욱 영화의 매력이 살아났지 않았을까. 한편 교차된 플롯의 순서, 프레임 내 피사체를 영리하게 활용하는 구도, 재치 있는 편집점 등 역시 소소하게 영화에 탄력을 부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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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시트럭(Wrath of Man)>



<시> (이창동, 2010)


<시>는 이창동이 천착하는 테마인 '타자성'을 드러내면서도 타자가 윤리적 주체로 전환되는 과정을 그려낸다. 타자와 대면하는 타자가 죄책감을 무엇으로 승화하는가. 구조적으로 흥미로운 점이 있다면, '미자가 시 쓰기 강좌를 수강하면서 계속해서 시를 쓰는 과정'이라는 플롯과 '가해자인 손주로 인한 죄책감을 해소하기 위해 타자의 고통을 마주하려는 자가 매달리는 내면의 여정'이라는 플롯이 뒤섞인다는 점이다. <밀양>이 윤리적 담론을 형성하는 데 있어 질문을 던지는 듯한 영화였다면 <시>는 질문에 대한 답변을 찾아가려는 영화처럼 보인다. 사실 <시>를 몇 달 전 감상한 뒤 이번에 다시 보았다. 다시 본 <시>는 내게 있어 이창동의 최고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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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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