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 영화

2021.07.16-2021.07.22

by 드플레

<크로스 더 라인(No matarás)> (다비드 빅토리, 2020)


이런 영화가 내겐 왜 매력적으로 다가올까. 스콜세지의 <특근>(1985)과 사프디 형제의 <굿타임>(2017)을 적절히 버무려 놓은 듯한 <크로스 더 라인>은 하룻밤 사이 수렁으로 빠져드는 인물을 집요하게 추적한다. 주인공 다니를 둘러싼 상황은 나아질 기미가 없이 계속 꼬여만 간다. 허나 이러한 난장판을 야기한 원인들을 찬찬히 되짚어 보면, 생각보다 자신의 선택에서 비롯된 순간들이 많다는 걸 주인공이 깨달을지는 모르겠다. 다니는 네온 조명으로 치장한 낯선 세계를 탐하다가 호되게 당한다. 마치 <특근>의 주인공이 권태를 떨쳐내기 위해 일탈을 추구한 것처럼 말이다. 이 영화는 뉴욕 소호를 무대로 현대 도시인들을 절묘하게 겨냥한 은유의 파편들을 머금은 <특근>이나, 뉴욕이라는 '인종의 용광로' 속에서 뒤섞이는 위계질서와 형제간의 우애를 버무려 한바탕의 촌극을 펼쳐놓았던 <굿타임>을 음미할 때처럼 다층적인 접근을 허용하지는 않는다. 그래도 개인의 욕망을 매개로 하는 서사를 최대한 간결하게 구성한 뒤 타이트한 클로즈업과 핸드헬드로 인물의 심리를 몰아붙이는 전략을 잘 수행한다는 점에서, 깊은 인상을 남긴다.


stillcut_1_220210609163501.jpg
stillcut_1_320210609163501.jpg
stillcut_1_120210609163501.jpg
<크로스 더 라인(No matarás)>



<천장지구(天若有情)> (진목승, 1990)


상처를 안은 채 매일을 위태롭게 버텨내는 남자는 자신을 보듬어 주려는 여자를 만나고, 둘은 미래가 보장되지 않은 위험한 사랑에 빠진다. 다소 진부한 사랑 서사에도 불구하고, 유덕화와 오천련의 거부할 수 없는 매력이 영화를 지탱한다는 점은 역시 부정하기 힘들다. 유덕화는 왕가위의 <열혈남아>에서도 지리멸렬한 상태에 놓인 매우 유사한 인물을 연기했는데, <열혈남아>가 감독 특유의 인장으로 인물들을 가공했다면, 아무래도 <천장지구> 쪽은 배우가 뿜어내는 존재감을 적극 살려 더욱 감성을 건드리는 이미지를 생성해낸다. 마치 <탑건>의 톰 크루즈가 매력을 발산했던 경우와 비슷하다.


MV5BMjBmNTkzMjctNmQ0Ni00MGU3LWE3NmQtZjllZDc0OGI4YzRkXkEyXkFqcGdeQXVyMjQwMjk0NjI@._V1_.jpg
MV5BOGE1YmViMTQtY2EzNC00MTJmLTg0YTYtZWI2NzUxN2RhMGY2XkEyXkFqcGdeQXVyMjQwMjk0NjI@._V1_.jpg
MV5BYzNkNGJjZjktMzMzMC00NzY2LTgzZTUtNmY2MmE3ODg1MzNjXkEyXkFqcGdeQXVyMjQwMjk0NjI@._V1_.jpg
<천장지구(天若有情)>



<밀레니엄: 여자를 증오한 남자들(The Girl with the Dragon Tattoo)> (데이빗 핀처, 2011)


인물의 감정선이 툭 끊기기도 하고, 서사 흐름에서도 다소 비약이 감지된다. 리스베트와 미카엘의 서사가 병치되는 가운데 두 서사가 표상하는 바가 각각 느껴지지만, 미스터리 해결 과정을 묘사하는 장르성 또한 치밀하게 구축하기 때문에, 어쩐지 영화의 논조가 흐릿하게 다가오기도 한다. 그럼에도 이 영화를 매혹적으로 만드는 요소는 풍부하다. 쇼트들을 잇는 리듬은 아주 매끄럽게 재단되었고, 검은 계열의 톤이 지배하는 세련된 색감, 몰입감을 높여주는 음악 및 음향 효과까지. 핀처의 총괄 아래 제작된 영화는 아주 매끈한 자태를 자랑한다. 물론 루니 마라의 압도적인 존재감이 극 전체를 관통하는 점 또한 영화를 한층 매력적으로 가공한다.


mil2.jpg
mi3.jpg
mil1.jpg
<밀레니엄: 여자를 증오한 남자들(The Girl with the Dragon Tattoo)>



<갈매기> (김미조, 2020)


자신이 겪은 불합리한 일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는 자를 따라가는 <갈매기>는 시종 냉정하게 응시한다. 클로즈업으로 인물의 내면을 환기하는 상황이 종종 등장하지만, 많은 장면에서 현실감을 한껏 부각하여 영화가 감상적으로 매몰될 가능성을 줄여나간다. <갈매기>는 인물의 고통을 묘사하는 방식에 있어 매우 섬세한 접근을 보여준다. 어떤 면을 소거하고 어떤 면을 부각해야 하는지 알고 있는 영화다. 그런 일관성은 영화의 진정성을 뒷받침한다. 사실 <갈매기>는 언뜻 보면 소외된 타자를 다루는 다르덴 형제의 영화를 떠올리게 하는 작법을 취하고 있으나(실제로 극 중 <내일을 위한 시간>(2014)을 연상시키는 구간이 있다), 엔딩 쇼트의 인상적인 화법을 통해 다르덴의 흔적을 단숨에 지워낸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gull1.jpg
gull3.jpg
gull2.jpg
<갈매기>



<잃어버린 도시 Z(The Lost City of Z)> (제임스 그레이, 2016)


과연 포셋은 Z에 무사히 도착했을까? 포셋을 평생 시달리게 한 Z의 존재는 과연 정확히 무엇일까. 탐험가 포셋에게 Z는 잡힐 듯 잡히지 않는 그 무언가의 영역이다. 어쩌면 Z를 찾아 나설 때 만큼은, 세상을 지배하는 논리에서 벗어날 수 있고, 일상에서 벗어나는 일탈을 머금을 수 있다. 이때 포셋은 모든 걸 내려놓고 원시의 자연으로 향하는 본능적인 끌림을 음미할 수 있다. 하지만 Z의 형상은 어쩌면, 아버지 포셋에겐 좌절감만을 안겨주는 무언가가 아닐까. 아내의 곁을 지켜주지 못하고, 자식들을 훈육하거나 놀아주지도 못하고, 가장으로서 가정을 지키지 못한 포셋에게 다른 Z가 있다면, 그건 정확히 포셋이 성취하지 못한 것들이 집약된 삶의 형태이다. 결국 영화에선 도달 여부가 모호하게 처리되므로, Z를 어떻게 수용할지는 관객의 마음에 달렸다. 이때 영화는 주변 사람들의 Z를 놓치지 않고 담아내는데, 포셋의 설득에 대한 코스틴의 의견 표출, 포셋의 아내가 주장하는 내용들과 엔딩 쇼트 등이 그런 지점을 잘 표상한다.


z2.jpg
z1.jpg
z3.jpg
<잃어버린 도시 Z(The Lost City of Z)>



<펄프 픽션(Pulp Fiction)> (쿠엔틴 타란티노, 1994)


기묘하다. 영화가 꿈틀댄다. 조심스레 운을 떼자면, <펄프 픽션>은 탈중심, 탈위계와 같은 '탈'의 성질을 머금으려고 한다. 그렇다면 <펄프 픽션>은 무엇에서 벗어나려고 하는가. 확고한 무언가들, 정형화로 둘러싸인 기존의 담론에 대한 몸부림이 아닐까. 어딘가에서 벗어나려는 성질은 곧 유동성과도 맞닿아 있어 보인다. <펄프 픽션>은 고착화를 거부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스스로가 고상함을 피해 저속하고 자극적인 영역을 솔직히 내세우는 <펄프 픽션>은 그 자체로 기존의 무언가를 계속하여 부정하고 탈피하려고 하는 영화다. 곳곳에 들러붙은 대중문화의 코드들, 영화광인 감독에 의해 배치된 수많은 오마주들로 점철된 이 영화는 결국 순수한 창작과 멀찍이 떨어진 듯 보이나, 조금만 파고들면 고유한 무언가로 재정의되는 기묘한 자태를 뽐내고 있다.


타란티노는 <펄프 픽션>에서 별거 없는 갱단과 권투 선수의 에피소드를 재구성하는데, 이 영화가 뛰어난 이유는 단순히 비선형적 플롯을 구축했다는 사실 자체에 있지는 않다. 영화에 배열된 플롯 가운데 줄스가 중심이 되는 구간을 고정한 채, 다른 에피소드의 순서를 임의로 재구성하는 경우를 떠올려 보자. 문제가 딱히 없다. 그러니까 <펄프 픽션>의 꼬인 플롯은 그 자체로, 언제든 재구성될 수 있는 유동성을 바탕으로 하고 있기 때문에, 영화 자체가 형식적인 면에서의 고착화를 피할 수 있게 된다는 점에서 독특한 존재감을 드러낸다. 영화는 인물을 다루는 방식에서도 이러한 정형화된 틀을 거부한다. 줄스와 빈센트의 서사적 대비(구원과 파멸)로 테마를 강화하는 듯한 <펄프 픽션>이 빈센트를 처리하는 방식이 그렇다. 부치와 마르셀러스의 서사, 빈센트와 미아의 서사를 마무리하는 방식 또한 그렇다. 또한 빈센트와 줄스 그리고 링고와 욜란다로 인해 영화의 명시적인 테마가 구체화되는데, 링고와 욜란다는 등장 시간이 매우 짧은데도, 극을 관통하는 지점에서 줄스 및 빈센트와 공명하며 서사적으로 중요한 지위를 부여받는다. 이 경우는 두 사람보다 훨씬 자주 등장한 부치, 마르셀러스, 미아 등의 인물과 비교해볼 수 있다. 이쯤에서 줄이고 싶다. 어쩌면 내가 <펄프 픽션>에 대해 말하면 말할수록, 영화가 품은 다채로운 빛깔이 점점 희미해지는 건 아닐까 걱정되기 때문이다.


MV5BMjM3NDUxNzQ3NV5BMl5BanBnXkFtZTgwNDAwMzg5MTE@._V1_.jpg
MV5BMTM0NzI1NDgzM15BMl5BanBnXkFtZTcwMzgxMjIyNw@@._V1_.jpg
MV5BNzcyNTQyNzg3OF5BMl5BanBnXkFtZTgwMTAwMzg5MTE@._V1_.jpg
<펄프 픽션(Pulp Fiction)>



<재키 브라운(Jackie Brown)> (쿠엔틴 타란티노, 1997)


<재키 브라운>은 타란티노의 연출이 매우 세밀한 측면까지 반영된 영화처럼 느껴진다. 내겐 <재키 브라운>이 다른 타란티노 영화와 크게 달라 보이지 않는다. 역시 온갖 장르적 질감으로 덧칠된 영화인 <재키 브라운>은 매 장면 관객을 섬세하게 다루면서 몰입감을 확보한다. 중년의 사랑, <록 스탁 앤 투 스모킹 배럴즈>와 비슷해 보이는 교차 편집이라든가, 폭력적인 장면들, 누아르나 스릴러 등의 장르 문법들처럼 온갖 요소들이 타란티노의 센스에 따라 배치되어 있다. 후반부 재키가 쇼핑몰에서 정장을 입고 이동하는 장면이 생각난다. 이때 카메라는 인물을 정면으로 찍으며 재키를 따라가는데, 관객은 이때 정보를 크게 제한받는다. 이로 인해 관객은 재키의 표정에 크게 의지한 채로, 보이지 않는 것들에 관한 긴장감을 강요받으면서 영화에 사로잡힐 수 있다. 마주 보는 재키와 맥스를 클로즈업으로 잡는 구간 또한 기억에 남는다.


MV5BMTMzOTYzMDU5MF5BMl5BanBnXkFtZTcwMjEwMzU0NQ@@._V1_.jpg
MV5BMTMyNzU2NjM1N15BMl5BanBnXkFtZTcwMzI2NzEyNw@@._V1_.jpg
MV5BMjI1ODE0MDg5Nl5BMl5BanBnXkFtZTcwNTQ0OTAyNg@@._V1_.jpg
<재키 브라운(Jackie Brown)>



이미지 출처: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네이버 영화, IMDb

작가의 이전글주간 영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