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 영화

2021.08.06-2021.08.12

by 드플레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할리우드(Once Upon a Time... in Hollywood)> (쿠엔틴 타란티노, 2019)


타란티노가 어째서 이런 영화를 만들고자 했는지 가늠은 간다. 어떤 점을 강조하고 싶었는지도 알겠다. 어떻게 보면, 매우 솔직한 영화처럼 느껴진다. 즉, 여전히 타란티노는 자신만의 영화를 만든다. 60년대 할리우드에 바치는 헌사이자 현실을 비튼 평행 세계인 <... 인 할리우드>는 영화를 둘러싼 납득 가능한 외연에도 불구하고, 내적으로 삐걱대는 순간들이 존재한다. 영화 업계 종사자들의 이야기, 영화에 관한 영화라는 기획만으로는 이 영화의 불균일한 밀도를 온전히 변호할 수 없다.


<저수지의 개들>(1992)의 오프닝을 떠올려 보자. 극중 인물들의 잡담 소재는 80년대 중후반 발매된 마돈나의 노래들인데, 타란티노가 각본을 쓰고 영화를 찍던 시기를 대충 가늠해보면, 이런 자질구레한 대사들은 충분히 관객들이 융통성 있게 수용할 수 있다. 이를테면 2021년의 한국인이 지인과 씨스타나 트와이스의 명곡들에 관해 잡담을 나누는 경우를 예로 들 수 있겠다. 당대 사회문화적인 분위기를 반영한 잡담처럼 여길 수 있다는 말이다. 게다가 <저수지의 개들>은 시대극이 아니라는 점에서, 영화의 시공간을 굳이 저 먼 어느 시점으로 보내버릴 필요가 없기 때문에, 이런 맥락으로 보아도 큰 무리가 없다.


하지만 <... 인 할리우드>는 엄연히 구체적인 시공간적 표지를 삽입하여 사실성을 키우려 든다. 이는 영화광인 감독의 지적 수준과 관심사에 따라 재편된 요소들과 맞물려 관객들을 난감함에 빠지게 할 수 있다. 이런 불친절함은 관객들로 하여금, 이 영화가 기존의 타란티노 영화와는 다르다고 느낄 법하게 여기는 주원인으로 작동한다. 하지만 타란티노는 늘 그래왔듯 레퍼런스를 활용하고, 오마주를 열심히 배치하는 작법으로 일관한다. 그러니 타란티노가 늘 만들던 영화를 똑같이 만든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다만 이 영화는 관객(할리우드의 역사에 무지한 다수의 관객들)과의 소통이 아닌, 창작자 개인의 고집을 얼마나 근사하게 투영하는가에 매달린다는 점에서 역설적으로 지극히 타란티노스러운 영화가 된다는 점이 기묘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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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스 어폰 어 타임... 인 할리우드(Once Upon a Time... in Hollywood)>



<킹 아서: 제왕의 검(King Arthur: Legend of the Sword)> (가이 리치, 2017)


중세 전설을 풀어낼 때조차도 본인만의 리듬을 잃지 않겠다는 가이 리치의 굳건한 고집이 느껴진다. 진중한 판타지와 그의 재기발랄함이 어우러질지 걱정이 됐는데, 의외로 어색하지 않았다. 나는 어쩌면 어떤 시대극을 찍든 다짜고짜 밀어붙이는 그의 뚝심에 길들여진 걸지도 모른다. 어찌 됐든 <셜록 홈즈> 때보다는 훨씬 매력적인 게 확실하다. 왜 매력적이냐면, 그 이유는 아마 이 영화의 편집 기법에 있지 않을까. 리치는 이 진부한 영웅 탄생 서사를 '볼 만한 영화'로 바꿔놓는 데 성공한다.


영화에서 교차 편집이 제시되는 구간이 상당히 많다. 빠르게 커트되는 시공간의 접합은 거의 모든 시퀀스에서 동원된다. 이 닳고 닳은 아서 왕 전설을 굳이 다시 소환하는 영화를 살려낸 건, 음악도 CG도 아닌 바로 이 교차 편집술이다. 보티건을 없애기 위해 전략 회의를 하는 장면에선, 아서가 미래에 벌어질 일을 예측하면서 미래가 곧 현재화된다. 미래의 시공간에서 발화하는 아서와 베디비어의 모습이 제시되며, 영화는 굳이 이 시공간의 뒤틀림을 보정하지 않은 채 서사를 진행한다. 이는 곧 일차적인 재미, 즉 지루하지 않게 하는 전략으로써 탁월하다. 게다가 서사를 압축적으로 재편해서 극의 리듬감을 조절하는 전략으로 보아도 재치 있는 시도다. 더군다나 진부한 아서 왕 서사라면 이런 비틀기가 몰입에 도움을 줄 수도 있다. 검을 다스리는 법을 익히기 위해 아서가 다크 랜드(역경의 공간)로 향하는 순간 또한 유사한 전략, 이후 제시되는 많은 교차 편집 시퀀스도 같은 맥락에 놓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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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킹 아서: 제왕의 검(King Arthur: Legend of the Sword)>



<미스 페레그린과 이상한 아이들의 집(Miss Peregrine's Home for Peculiar Children)> (팀 버튼, 2016)


페레그린은 아이들을 지키기 위해 루프를 만든다. 파국 직전의 유예된 하루만을 살아가는 별종들은 대다수의 사람들과 철저하게 시공간적으로 유리된 채 살아간다. 자본과 탐욕이 불러온 전쟁으로 인해, 세상과 격리되는 별종들의 이야기. 하지만 영화는 역사적 성찰 대신 소외된 자들이 세상과 만나는 지점을 담아낸다. 이는 제이크를 통해 전개된다. 제이크 역시 세상에서 튕겨져 나와 이 세계로 향한다. 어쩌면 필연과도 같은 이 운명, 제이크는 그 집에서 자신의 존재를 자각한다. 별종들은 유예된 시간을 깨부수고 나와 실존적 의미를 찾아갈 수 있게 된다. 이들의 움직임은 도피하던 제이크가 길을 개척하는 방법을 깨달을 수 있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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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스 페레그린과 이상한 아이들의 집(Miss Peregrine's Home for Peculiar Children)>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The Curious Case of Benjamin Button)> (데이빗 핀처, 2008)


벤자민은 자신이 원하든 원하지 않았든 겉모습과 내적 자아의 괴리를 견뎌내야만 한다. 벤자민의 삶에 끼어드는 수많은 존재들이 있다. 그와 만나고 사랑하고 같이 대화하고 울고 웃고 떠드는 사람들 말이다. 벤자민은 종종 의도하지 않은 깨달음을 얻는다. 겉과 속이 일치하지 않는 그는 매번 낯선 상황에 직면한다. 벤자민이 자라면서 배우고 경험하는 것들은 언제나 불쑥 그를 찾아온다. 아직은 젊은 벤자민이 중년 여인과 한밤중의 밀회를 즐기면서 느끼는 것들, 아버지의 노릇을 할 수 없을 거라는 고민들 따위 말이다. 그럼에도 벤자민은 남들과 다를 바 없이(조금은 특별하지만) 삶을 버텨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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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The Curious Case of Benjamin Button)>



<팜 스프링스(Palm Springs)> (맥스 바바코우, 2020)


타임 루프에 갇힌 인물들은 어디로 향할 수 있는가. 루프를 탈출하거나, 하지 못하거나. 선택지는 두 개뿐이다. 루프에 속박된 세 인물(나일스, 세라, 로이)을 응시하는 영화 <팜 스프링스>(2020)는 남녀의 로맨스에 집중하지만, 우리는 로이라는 제3의 인물이 나일스와 호응하는 지점 또한 놓쳐서는 안 된다. 로이는 나일스로 인해 세라보다 먼저 타임 루프에 갇힌 인물이다. <팜 스프링스>는 루프에 빠진 인물을 셋이나 등장시킨다. 세 사람 모두 루프에서의 삶을 다르게 받아들인다. 그렇다면 영화는 충분히 실존적 고뇌를 다층적으로 다룰 수 있다. 하지만 <팜 스프링스>는 진중함 대신 장르의 질감을 덧대는 경쾌한 무드를 선택한다.


허무맹랑해 보여도 사람과 사람 사이를 감싸는 감정선 자체를 부각하겠다는 영화의 태도는, 배우들의 퍼포먼스가 만들어내는 시너지로 전이되어 관객을 설득할 수 있다. 어쩌면 루프에서의 삶이든 루프를 벗어난 삶이든 큰 차이가 없을지도 모른다. 나일스와 세라는 여전히 반복해온 루틴대로 함께 시간을 보내는 듯 보인다. 삶을 감각한다는 건, 어쩌면 고독이 아닌 상생에서 시작된다. 로이는 세라로 인해 그만의 안식처를 찾았다. 나일스와 세라 또한 서로를 들여다보고, 삶을 지속할 힘을 얻는다. 따라서 함께하는 순간을 지속해서 담아내려는 <팜 스프링스>의 유쾌한 화법은 여러 장르의 결합과 변주 속에서도 빛을 발하는 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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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팜 스프링스(Palm Springs)>



이미지 출처: 네이버 영화, IM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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