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11.26-2021.12.02
비록 살면서 읽어 본 남미 소설은 《백년의 고독》 뿐이지만, <엔칸토>를 보고 있자니 남미 작가들 소설 속의 '마술적 리얼리즘'스러운 설정들이 슬쩍 반영된 게 아닌가 싶었다. 움직이는 집이라든가, 양초를 통해 받는 능력 따위의 것들 말이다. 그렇지만 영혼과 마법이 아무렇지도 않게 현실 세계에 침범해 있는 소설 속 그것과는 다르게 아무래도 애니메이션은 그 자체로 가상의 세계를 다루다 보니 환상성 자체에 방점이 찍힌다는 인상을 지울 수가 없었으므로, 영화 속에서 의도한 대로의 '마술적 리얼리즘'적인 모먼트가 작동했는지는 모르겠다. 그래도 흥미로운 건 이 영화가 마법 요소를 개입시키는데도 불구하고 서사 내 갈등을 해결하는 과정에선 그 장치들을 배제하고 있다는 점이다. 갈등의 봉합은 극적 요소가 가득한 비일상의 개입보다는 지극히 일상적인 방식(묵혀뒀던 감정을 어렵게 끄집어내면서 화해하는 가족들)이 적용되면서 성사된다. 결과적으로 예지 능력은 갈등을 해결하는 데 도움을 준 게 아닌 셈이고, 서로에 관한 마음이 교차하고 충돌하는 지점에서 얽혀버린 실타래를 풀어야 하는 문제인 것이다. 극의 무대가 콜롬비아 어느 깊은 산속이라는 신비한 설정을 빼면, 하나부터 열까지 디즈니스러운 애니메이션이었지만, 군데군데 새로운 감각을 반영하려고 노력한 점은 부정할 수 없겠다. 한때 유행했던 라틴 팝 스타일의 넘버들도 제법 귀에 쏙쏙 박히는 느낌이었다. 의도된 듯한 디즈니의 다인종·다문화 지향 주의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는 아직도 잘 모르겠다.
뜨악하는 심정으로 보게 되는 초반부의 인물 관계나 각종 설정과 대사들, 호러/슬래셔/후더닛 한스푼 등 수많은 장르 요소들이 그다지 매끈하게 접합되지 않는다는 점까지. 다소 아쉬운 구간이 많다고 느꼈다. 그런데 왜 만들었을지는 십분 이해 가는 영화라는 점에서, 완성도에 관해 왈가왈부하고 싶지 않은 마음이 드는 것 또한 사실이다. 우리는 현실과 환상을 넘나드는(시공간까지) 두 여자의 사연을 통해 성공이라는 부푼 꿈을 안고 대도시로 몰려드는 청년들의 간절한 마음을 본다. 이상만을 좇기에는 현실은 시궁창이라, 각종 고난과 역경에 좌절하기도 하고, 때로는 포기하고 싶기도 하다. 그렇게 관객은 공포감과 숨 막히는 느낌들을 엘리와 샌디의 사연을 통해서 간접적으로나마 체험한다. 어쩌면 현란하고 정신없어 보이는 이 영화가 그들에 대한 진중한 위로를 건네는 건 아닐지 모르겠다고 느낀다. 샌디는 엘리를 통해, 엘리는 샌디를 통해 서로의 고충을 엿보거나 감각할 수 있다. 그래서일까, 인물들이 역경을 딛고 성공해야만 한다는 강박적인 영화의 태도는 비록 상투적일 수 있어도 반드시 그래야만 하는 어떤 귀결점처럼 보인다. 에드가 라이트는 누군가의 사연을 통해서, 세상에서 잊혀간 수많은 샌디와 엘리에게 영화만이 해줄 수 있는 형태로 토닥여주는 건 아닐까.
사실 나는 에드 우드처럼 살고 싶지만 살고 싶지 않다. 이 양가적인 감정은 분명 모순이지만, 어쩌겠는가. 인간은 원래 모순 덩어리다. 나는 에드 우드처럼 시종 꿋꿋하고 싶은데, 그처럼 매번 실패할 자신은 없다. 에드 우드처럼 매 순간 열정을 불사르고 싶지만, 내겐 그처럼 당돌하게 부딪혀보려는 자신감은 없다. 에드 우드는 매 순간 어떻게 더 나은 상황을 만들어낼지 몰두하는 사람처럼 보인다. 결과를 신경 쓰는 듯하면서도 한편으론 앞뒤 사정 재지 않고 냅다 실행에 옮기는 즉흥적인 인물이기도 하다. 영화에 관해 적으려고 했지만, 어쩔 수 없이 내겐 에드 우드라는 사람이 자꾸만 뇌리에 맴돈다. 게다가 재밌게도 조니 뎁의 영화를 꽤나 많이 봐왔다고 생각했는데, 여기선 잭 스패로우나 가위손이 전혀 떠오르지 않았다. 영화를 보는 내내 조니 뎁이 연기한다는 사실을 잊어버렸다. 조니 뎁의 퍼포먼스가 마냥 실존 에드 우드의 삶을 사실적으로 재현했다는 말이 아니다. 나는 실제 에드 우드가 어떤 사람인지는 모른다. 그저 나는 그냥 영화 속 에드 우드 그 자체의 모습을 목격했을 뿐이고, 필름에 새겨진 그의 삶을 곱씹고 싶을 뿐이다.
<에드 우드>는 우드만의 영화는 아니다. 벨라 루고시를 비롯한 수많은 영화인들의 사연 또한 우드의 삶과 공존한다. 인정받기 위한 투쟁과 자신이 믿는 가치를 지켜내려는 뚝심이 혼재하는 삶 속에서, 팀 버튼은 정답이 없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그래서 자신만의 방식으로 자신이 좋아하고 동경하고 사랑하는 이들을 애정 가득 담아 바라본다. 그래서 <에드 우드>가 실제 우드의 삶과 얼마나 닮아있는지 보다도 훨씬 중요한 건, 어쩌면 그가 촬영할 때 보이는 행동들, 즉 자신이 쓴 각본의 대사를 읊는 배우들과 입을 맞춰 중얼거리는 모습을 담는 일이다. 이어서 팀 버튼의 카메라는 분명히 담아낸다. 자신의 영화를 행복하게 감상하는 관객 에드 우드의 모습을 말이다. 오롯이 나를 위해 사는 삶이 가능할지는 모르겠지만, <에드 우드>가 내게 남긴 질문들을 곱씹어 보며, 그저 매 순간 최선을 다하기로 한다.
사람들이 판에 박힌 패턴으로 매일 같이 출근하는 장소를 보며 우리는 문득 느낄 수 있다. 공간을 감싸는 공기가 매번 달라진다는 걸 말이다. <인 디 아일>에서는 유독 아무도 없는 빈 장소를 담는 숏이 많은 것 같다. 커피를 뽑아 마실 수 있는 쉼터는 사랑이 싹트는 공간이면서 무거운 고독이 뿌리내리는 곳이기도 하고 고단함에 못 이긴 이들이 스몰 토크를 스스럼없이 건넬 수 있는 사각지대이기도 하다. 진열대 사이사이의 좁은 통로 또한 언제든 의미가 달라질 수 있다. <인 디 아일>은 인물의 정서를 섬세하게 포착하는 건 물론이고 그와 결부되거나 혹은 그를 암시하는 공간의 정서까지 머금으려고 하는 영화처럼 느껴진다. <인 디 아일> 속 창고형 마트는 각자에게 어떤 공간이 되는가. 수많은 손님들이 거쳐가는 곳에서 직원들은 몇 번이고 마주친 동료와 실없는 농담을 주고받는다. 그러다가도 남들의 눈을 피해 혼자만의 시간을 갖는다. 이곳은 사람들로 북적대지만, 어떨 때는 고독이 사무치는 냉혹한 장소가 된다.
이미지 출처: 네이버 영화, IMD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