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 영화

2021.12.17-2021.12.23

by 드플레

<아사코(寝ても覚めても)> (하마구치 류스케, 2018)


<아사코>(2018)의 멜로드라마는 무엇을 통해 작동하는가. 또한 이 영화가 무엇을 위해 로맨스를 도입했는가. 다른 평자들도 언급하듯 <아사코>는 동시대 영화인 <운디네>(2020)처럼 기이한 사랑을 응시하는 것처럼 보인다. 크리스티안 페촐트는 멜로드라마를 동선과 움직임의 문제를 통해서 풀어나가는데(김병규 평론가의 표현을 빌리자면), 그렇다면 묘하게 비슷한 인상을 풍기는 하마구치 류스케의 멜로드라마가 어떤 구조로 짜여 있는지, 서사적 동인이 어떻게 구성되어 있는지를 살펴보는 일 또한 흥미로운 접근이 될 것 같다. 물론 이 작업은 하마구치 류스케의 영화를 반복해서 살펴본 뒤에나 가능할 것 같긴 하지만 말이다. 슬쩍 화두만 던져보자면 <아사코>가 과연 연인 간의 사랑을 말하는 영화가 맞냐는 것에 관한 문제인데, 그도 그럴 것이 이 영화가 특이하게 느껴지는 이유가 있다. 특히나 이 영화엔 서로의 감정을 확인(혹은 감각)하는 순간이 뚜렷하게 강조되는 데 반해 그 외에 다른 순간들, 이를테면 연인들이 함께 시간을 보내며 서로가 서로를 닮아가는 모습을 문득 체감한다든가 혹은 의견 차이로 인해 격렬히 싸운다든가 하는 일상적인 시간들의 총체가 은근슬쩍 뭉개져 있다는 점이 사뭇 이상하다.


이때 <아사코>에선 만남까지의 빌드업과, 그 합일이 어그러지는 때의 충격, 그리고 다시 만남을 재건하는 것에 관한 고민이 다른 요소들보다 중요하게 느껴진다. 그리고 이 묘사들은 반복과 변주를 통해 관객에게 도달한다. 도통 종잡을 수 없는 아사코의 내면은 기계 혹은 유령 같은 톤으로 둘러싸인 대사나 연기를 통해서 더욱 아리송하게 관객의 호기심을 자극하게 된다. 일상-비일상(꿈, 망상 혹은 재난)이 계속해서 교차되는 모호한 구조에 따라서, 인물들의 로맨스 또한 몽롱함에 사로잡힌 형태로 가공되는 것 같다. 예전처럼 시선을 마주하고 교차할 수 없을지라도, 불편함을 감수한 채 곁에 머물고자 하는 마음만은 남는다. 자신의 과오를 잘 알고 있지만, 너무 잘못해서 오히려 용서를 구하지 않겠다는 뻔뻔한 아사코의 자세는 관계 유지를 향한 강한 열망이 서투른 방식으로 발현된 것일까? 감독은 이 영화에서 엇갈리는 인물 간의 시선들만큼이나 미끄러지는 표현과 감정들을 집요하게 담아낸다. 감정들은 한곳으로 수렴할 수 없고 그에 따른 파국을 수습하는 일은 불가능하다. 그럼에도 삐걱대는 너와 나의 삶은 지속되어야만 한다는 강박적인 태도는 하마구치의 영화 전반에 깔려 있는 테마처럼 느껴진다. 그리고 <아사코> 속 일상에 균열을 내는 사건들은 영화 자체를 하나의 거대한 은유 덩어리로 만들어내는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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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사코(寝ても覚めても)>



<드라이브 마이 카(ドライブ・マイ・カー)> (하마구치 류스케, 2021)


<드라이브 마이 카>는 어떤 영화인가. 체호프의 희곡과 하루키의 소설을 경유하는 하마구치 류스케의 영화 속에는 가후쿠가 연출해낸 다언어 연극이 있다. 다양한 텍스트들이 다층적으로 포개진 오묘한 구조를 띤 이 영화의 서사는 분명 매력적이나, 그보다는 이 영화에서 어떤 시네마틱한(?) 모먼트를 느낄 수 있었는지에 조금 더 관심을 기울이고 싶은 마음이다. 운전사와 탑승자 사이의 보이지 않던 심리 장벽이 슬며시 허물어지기까지 어떤 일들이 일어났으며, 그리고 두 사람이 속내를 공유하고 마주하는 순간은 어떤 방식으로 가공되고 있을까. 그럼에도 살아가야 한다, 버텨내고 털어내야만 한다는 의지. 삶을 추동하는 요소들이 있다는 사실 자체는(각자에게 다를 것이다) 당연히 알겠지만, 그것들이 영화에서 어떤 방식으로 존재감을 드러내는지는 잘 안 와닿았던 것 같기도 하다. 이때 자동차는 일상을 영위하게 해주는 비일상 공간으로서 매우 독특한 지위를 드러낸다. 그리고 <드라이브 마이 카>에선 이런 일상/비일상의 혼재 구조가 자동차뿐 아니라 연극 준비 과정 속에서도 빈번히 형성되고 있다는 점이 흥미롭다. 그래서 이 영화는 원전을 각색하거나 소스들을 가공해서 각본을 써 내려가는 감독의 역량이 탁월하다는 것을 방증하는 사례가 될 수 있기도 하다.


다만 문제는 <드라이브 마이 카>가 내 마음에 들러붙지 못하는 느낌이 어디에서 기인했느냐 하는 것인데, 사실 <해피 아워>가 상당히 좋았던 데 반해 <아사코>와 이 영화에서는 문득 인위적인 개입으로 빚어낸 우연적 모먼트가 활성화되길 바라는 감독의 어떤 욕망이 느껴졌던 것 같다는 이유에서 뭔가 갸우뚱해진다. 반복해서 쓰이는 정면 클로즈업 숏 역시 이전작들에 비하면 생명력이 떨어지는 것 같다. 빈틈없이 잘 짜인 영화를 보는 데서 오는 감흥도 물론 중요하지만, 감독이 천착하는 '그럼에도 살아가야 한다'는 테마라는 게 상징 혹은 은유를 통해서만 구현될 수 있는 건 또 아닌 듯하기에, 하마구치 류스케의 영화 속에서 즉흥과 계획의 논리가 어떤 방식으로 테마와 연동될 수 있는지에 관해서도 생각해 보고 싶다. 이 영화를 다시 보면 이 생각이 달라질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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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이브 마이 카(ドライブ・マイ・カー)>



<끝없음에 관하여(Om det oändliga)> (로이 안데르손, 2019)


유령들이 있다. 아니 살아는 있지만 생기를 잃은 듯한 사람들이 프레임 내부를 맴돌거나 그 안팎을 들락날락하고 있다. 한 아저씨가 내게 인사를 건넨다. 오랜만에 친구를 만나 인사를 건넸다고 하는데, 그 친구는 자신의 인사를 무시한 채 그냥 지나쳐버렸다고 했다. 그리고 그 순간, 친구가 인사를 건네는 아저씨를 거들떠보지도 않고 스쳐 지나간다. 발화 시점과 사건이 일어난 시점이 포개지는 모양새를 보고 있자니, 이 시공간에 스며들어 있는 사람들은 영락없는 유령들이 아닌가. 영화는 내내 한마을, 아니 어쩌면 국가, 아니면 그보다 더 큰 규모의 어떤 오묘한 시공간에 시선을 보낸다. 그렇지만 우린 여기서 타인의 삶을 어떻게 들여다볼 수 있는가. 조각난 단면들을 잠시 동안만 응시하는 과정들. 적당히 선명하고 적당히 탁한 기운이 혼재된, 시종 회화적이지만 한편으론 왜곡된 광각 구도 속에서 관객들은 시체처럼 차가운 인간들의 움직임을 보지만, 한편으론 이 시선이 퍽이나 따스하게 느껴진다는 점이 아이러니하다.


하나의 숏이 곧 하나의 신이 되는 이 영화에서, 신과 신 사이의 인과관계는 느슨하다 못해 없는 수준이다. 이때 의도된 분절 속에서, 끼룩대는 철새 무리가 시작과 끝을 매개하고 있다. 떼 지어 날아가는 새들을 아무 생각 없이 바라보던 부부의 뒷모습에선 황량함이 감돌고 있지만, 멀어져 가는 철새 무리와 고장으로 멈춰 선 차를 살피는 남자가 담기는 숏에선 미약하게나마 기대감 같은 것이 은은하게 배어 있는 듯하다. 마취를 거부하는 환자를 두고 훌렁 떠나버린 치과의사의 모습을 보면서는 실소가 터졌지만 한편으로는 그의 슬픔을 발견했기에 가슴 한구석이 침울해지기도 한다. 춤추는 사람들과 그걸 감상하는 사람들을 보고 있으면, 그들과 시공간을 계속해서 공유하고 싶은 마음이 들기도 하지만, 그러나 야속하게도 지속될 수 없는 그들의 유희가 어느새 다른 시체 혹은 유령들의 사연으로 전환되어 버리는 광경을 지켜봐야만 한다. 이 과정에서 신기했던 점이 있다면, 영화를 본다는 느낌보다는 그림을 보는 듯한, 아니 그림을 읽어내는 듯한 묘한 감상의 세계로 진입한 느낌이 들었다는 사실이다. 일정한 톤으로 반복되는 내레이션조차도 어쩌면 이 움직이는 회화의 일부처럼 느껴졌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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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없음에 관하여(Om det oändliga)>



<아멜리에(Le Fabuleux destin d'Amelie Poulain)> (장-피에르 주네, 2001)


아멜리에의 선행(?)이 지속될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인가. 어쩌면 소박한 기쁨. 즉, 자신이 우연히 찾아낸 보물 상자를 원 주인에게 돌려준 뒤, 그 사람이 추억에 젖어 잠시나마 눈물 흘리고 행복해하는 모습을 훔쳐보며 느꼈던 감정들. 아멜리에는 그것을 결코 잊을 수 없다. 결국 타인을 위한 그녀의 계획은 자신을 위한 것이기도 하다. 타자 지향적 행위가 나의 내면을 풍족하게 만들어줄 것이라는 기대감으로 둘러싸인다. 그런데 이건 어쩌면 환영 혹은 착각일 수도 있겠다. 진정 나를 위해 살아가는 방식은 무엇인가. 타인의 행복을 거치지 않고서는 나의 행복에 도달할 수 없는 것일까. 그래서 나는 아멜리에의 내면이 와르르 무너지는 장면을 떠올린다. 미망인의 공허한 마음을 치유해 주고자 하는 일에 몰두했던 아멜리에는 역시나 부인이 기뻐하는 모습을 통해 자신도 기뻐해야만 한다. 그런데 모종의 사건으로 인해 아멜리에는 기뻐할 수 없다. 내 마음의 여유가 없다면 타인의 마음을 헤아릴 수 없지 않을까.


영화 속 은둔자들은 모두 타인을 훔쳐보는 일에 익숙하다(익숙해져야만 하는 운명에 놓인 것일지도 모른다). 차마 자신을 세상에 내던지지 못하고, 타인을 향해 내면을 드러내지 못하는 이들. 재밌게도 <아멜리에>는 이런 사람들의 일거수일투족을 엿보는 일을 영화 속 인물들과 관객들이 함께 수행하게끔 만든다. 영화는 쌍안경으로 포착한 광경을 과도한 클로즈업으로 잡기도 하고, 계단 위나 전화 부스 뒤편에서 고개만 빼꼼 내밀어 상대를 관찰하는 장면을 인물의 시점을 거쳐서 표현한다. 이렇듯 시시각각 변하는 구도들을 통해서 우리는 타인의 삶을 여러 측면으로 응시할 수 있으며, 관계가 가공되거나 변화되는 지점들을 감각할 수 있다.


한바탕 촌극을 만들어낸 비하인드 스토리 또한 소수의 사람들만이 간직할 수 있는 비밀이다. 비디오를 짜깁기해서 자신의 의사를 우회적으로 전달하던 아멜리에를 향해 노인은 답답한 나머지 직언한다. "놓치지 마!" 어쩌면 아멜리의 인생이 참 영화 같다는 생각도 해 본다. 운명과도 같은 사랑, 고민하고 망설이다가 냅다 내지르는 어떤 선택의 순간들, 그리고 마냥 단절되어 있는 것처럼 보였던 타자들과의 뜻하지 않은 유대 혹은 결속까지. 영화적인 모먼트가 드문드문 삽입되어 있는 기이한 일상은 나지막이 읊조리는 내레이션처럼 언제나 지속될 것이다. 아멜리에가 맹인에게 홀린 듯 다가가 정신없이 길 안내를 해줄 때 두 사람을 제외한 나머지 행인들이 묵묵히 삶을 영위하고 있던 것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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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멜리에(Le Fabuleux destin d'Amelie Poulain)>



<매트릭스: 리저렉션(The Matrix Resurrections)> (라나 워쇼스키, 2021)


주의! 스포일러 있습니다.




네오가 일궈낸 메시아로서의 행적을 깡그리 게임으로 취급해버리는 전반부 설정들, 특히 워너 브라더스가 게임 매트릭스 4 개발에 착수했다는 대사가 아무렇지도 않게 인물의 입에서 나오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이 영화의 과감한 각본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그런데 영화는 이런 메타적인 설정을 뿌려놓으면서 동시에 알약의 색 대비와 앨리스의 토끼굴 모티프를 슬며시 끼워 넣는 개운치 않은 전략을 구사하기 시작한다. 미약한 기대감이 다시 의문으로 바뀌기 시작한다. 그렇다. 결국 이 영화는 오프닝의 셀프 오마주에서 느낄 수 있듯 전작의 세계관을 그대로 복기하고 재현하려는 복제품이 되고야 만다. 그리고 <리저렉션>의 몇몇 선택들로 인해 삼부작에 걸쳐 다져놓은 서사는 존재 의의를 잃는다. 종족의 운명을 건 대규모 전쟁과 메시아의 희생 같은 것으로는 결국 아무것도 바뀌지 않는다. 그렇다면 인간은 무엇을 선택해야 하는가.


이젠 늙어서 날지 못한다며 예전 같지 않다는 조크를 날리는 구원자 네오는 세계의 존속이 아닌 나의 삶을 택한다. 비록 허술한 각본은 네오의 선택을 납득하기 어렵게 만들고 있지만, 어쩐지 라나 워쇼스키는 명분과 당위보다는 그들의 감정 상태에 몰입하라고 촉구하는 것 같다. 그래서 매트릭스는 더 이상 삭막한 초록빛 코드가 떠도는 가상 세계처럼 보이지 않는다. 동틀 무렵 피부를 적시는 햇빛을 마주하는 네오와 트리니티의 모습을 통해 우리는 매트릭스-현실 간의 이해관계보다는 두 사람의 감정의 교류에 몰입하려는 마음을 먹어야 할 것만 같다. 시리즈의 성취를 가볍게 대사 몇 마디로 조소하는 <리저렉션>은 당연하게도 기존 팬과 평단과 대중의 엇갈린 반응을 받아내야만 하는 운명을 타고났다. 그렇지만 네오가 자신이 구원한 세계를 다시 위험에 빠뜨릴 걸 알면서도 사랑에 충실했던 것처럼, 라나 워쇼스키 또한 <매트릭스> 트릴로지의 명성에 흠집이 가는 것 따위엔 관심도 없다는 듯이 자신의 현재 관심사와 감정 상태를 반영하고자(극 내내 인물들의 대사들을 통해 아주 직설적으로 제시된다) 솔직한 영화를 만들어냈다는 점에서 이 영화는 여러모로 사람들의 다양한 반응을 이끌어 낼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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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트릭스: 리저렉션(The Matrix Resurrections)>



이미지 출처: 네이버 영화, IM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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