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12.24-2021.12.30
올해를 마무리하는 차원에서, 하단부에 소소한 결산의 자리(?)를 마련했습니다.
사실 이 영화를 보고 덧붙일 말이 그리 많지 않았다. 개봉 당시 극장에서 보지 못했으니 원활한 감상 환경이 아니었음에도, 이 영화가 뿜어내는 활기에 완전히 매료됐기 때문에 그저 떠오른 생각의 편린들을 남겨놓고 싶은 마음뿐이다. 얼핏 보면 <너의 새는 노래할 수 있어>는 정말 특별할 것 하나 없고 어찌 보면 진부하기까지 한 영화다.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이 영화가 품은 활력 요소들이 참 특별해지는 것 같다. 영화 자체가 과도한 욕심이 아예 없다고 해야 할까. 자신이 무엇을 할지 잘 알고 있고, 그걸 관객들과 어떻게 나눠야 하는지도 잘 알고 있는 느낌이다. 사치코가 슬쩍 꼬집고 난 뒤, '나'를 감싸던 주변 소음이 사라지는 마법 같은 순간들. 클럽 특유의 무드와 음악을 통해 생성되는 정서의 교류나 자유로운 움직임들. 형형색색의 네온사인이나 가로등, 각종 조명들로 둘러싸였던 인물들의 얼굴이 말갛게 내리쬐는 햇볕을 받아낼 때 벌어지는 일들. 마지막으로 각자 자신들이 있어야 할 것 같은 자리로 되돌아오는 사람들까지. 이 영화가 감정을 잡아내는 방식들은 뭐라 형언할 길이 없이 매력이 넘친다.
이 여름이 끝나지 않을 것만 같다던 '나'의 독백이 과연 유효할 수 있을지 궁금해진다. 그 시절 그때의 그 여름의 어느 한자락이었기에 생생하게 스며들 수 있었던 시간과 공간 그리고 사람들의 이야기. 그리고 진심을 전달하고 난 '나'의 내면에는 지금껏 겪어보지 못했던 균열이 생겨났을 테고, 그렇게 끝나지 않을 것만 같던 여름이 어느샌가 자취를 감춰버릴지도 모른다. 이 순간 미야케 쇼는 두 사람의 모습을 함께 담지 않고 각자에게 숏을 할애한다. 그가 담아내는 인물들의 표정에서 우리는 동시대 청춘들이 지나온 궤적을 엿볼 수 있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미래를 향한 희미한 기대감이나 걱정들 같은 것들도 읽어낼 수 있지 않을까. 부유하는 청춘들을 잠시나마 붙잡고 관객과 만나게 하려던 이 영화는 알맞은 강도와 밀도로 관객과 호흡하는 일을 즐기고 있다. 그리고 이 영화는 자신이 해야 할 일은 딱 여기까지라며 쿨하게 털어버린 뒤 관객과 인사한다.
배우들의 호연과 직관적인 상황 설정의 얽힘을 통해 구축된 고밀도의 심리 묘사는 분명 <빛과 철>의 핵심이자 강점이다. 그런데 감정의 교차점이나 변곡점을 이끌어내는 방식이 거의 대부분의 경우, 인물의 단편적인 대사에만 의존하고 있다는 점이 살짝 아쉽다. 드러나지 않았던 진실이 누군가의 입을 통해 발설되면, 그에 따라 반응하는 인물들의 연기(특히 주연 배우 둘)는 매우 탁월하게 그 순간을 휘어잡는 정서를 생성해낸다. 하지만 감정의 표출과 그에 따른 포착이 어딘가 정석적인 루트로만 반복된다는 점이 사뭇 영화의 매력을 밋밋하게 만드는 것 같다. 인물들은 계속해서 진실을 접한 뒤, 충격을 받거나 감정의 변화를 느낀다. 이 상황에서 희주는 이분화된 구도 속에서 자신의 (상대적) 지위를 바꾸려고 노력하는데, 이에 따라 대립 관계에 놓인 영남 역시 큰 영향을 받게 된다. 복잡한 심리 변화로 인해 감정들이 중첩되고 있다는 사실이 어쩌면 배우들의 역량에 생각보다 훨씬 크게 의지하는 건 아닐까. 그도 그럴 것이 <빛과 철>은 충분히 더 보여줄 수 있는 영화임에도 어딘가 아쉬운 구석을 종종 노출한다.
그러니까 <빛과 철>에서 흥미롭게 파고들 수 있는 지점이 있다면, 인물들의 입을 통해 제공되는 정보와 시청각적으로 주어지는 정보 간의 격차 혹은 지위의 차이가 어떤 형태로 발현되고 있으며 각각이 어떤 지점을 표상하고 있는 것인가의 문제가 될 수 있다. 이 영화에 묻어나는 연출론은 두 사람의 심리 상태를 어떤 방식으로 관객에게 제공하는가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는데, 얼굴 위주의 클로즈업이라든가, 조명이나 자연광의 배치, 대사를 듣는 인물들의 리액션을 어떤 구도에서 찍었는지에 관해서는 이야깃거리가 있겠으나, 그 외에 투박하게 나열된 숏과 숏의 리듬, 인물을 도구화한 채 제어하는 것만 같은 시나리오는 이 영화의 기획 자체에 내재된 풍부한 매력을 단순화하는 지점들로 작용한다. 계속해서 작위적인 상황을 만들어내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기보단, 비언어적인 표현이나 카메라의 운용 방식을 동원하여 영화적인 언어로 드라마 요소들을 가공하고 연결해나갈 기회를 충분히 살리지 못한 것처럼 느껴진다.
<노웨어 스페셜>에서 가장 도드라지는 요소는 아마도 창문과 관련된 모든 것이지 않을까. 창문 청소업자인 아버지가 사다리를 대고 일을 할 때마다, 그의 눈에 들어오는 어떤 광경들이 있을 터인데, 이 영화는 그것들을 놓치지 않고 담아내고 있다. 영화는 각기 다른 모양의 창문을 담아내면서 시작한다. 창문 너머의 것들과 창문에 반사되는 것들이 공존한다. 창문 너머의 사람들을 보면서, 존은 자신과 아들에게 허락되지 않는 것들에 관해 욕망과 결핍을 느낀다. 지금껏 생존과 적응을 위해 숨기고만 살아왔던 그에게 창문 청소라는 생업은 어쩌면, 아니 창문을 통해서 목격할 수 있는 일상의 광경들은 그의 몸을 갉아먹는 질병보다도 더욱 쓰라린 감각을 제공해 주었는지도 모른다.
존은 사람들을 두 가지 방식으로 바라볼 수 있는 환경에 몸담은 사람이다. 창문을 통해서 응시할 때와 그렇지 않을 때다. 이 영화에선 후자의 경우 위탁 가정을 알아보기 위한 미팅 과정으로 구체화될 수 있는데, 실체적으로 맞닥뜨린 각자의 사연과 삶의 양상들은 기대하던 것과는 달라도 너무 다를 수밖에 없다. 아들을 잘 알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어쩌면 그것이 완전한 착각이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에 사로잡히면, 얼마 남지 않은 시간의 압박이 더욱 생생하게 숨통을 죄여 온다. 그럼에도 이 영화는 극적인 순간을 정서적으로 심화하는 데에는 관심이 없다. 영화는 시종 담담하다. 애써 감정적 울림을 극대화하지 않으려는 연출은 어쩌면 타인의 삶을 어떻게 응시하고 인식할 수 있는가의 문제와도 연결된다. 카메라로 구획된 프레임 또한 누군가를 들여다볼 수 있는 창과 같은 것일 텐데, 이때 창은 타인의 삶을 투명하게 응시할 수 있게 도움을 주는 일종의 매개체이면서 동시에 실체적인 감각 자체를 차단해버리는 장벽이 된다.
이후로는 슬쩍 낑겨넣는 소소한 결산입니다. 제가 2021년 한 해 동안 실관람한 영화들에 한해서만 정리를 해보았습니다. <당신 얼굴 앞에서>, <메모리아>, <우연과 상상> 같은 영화들을 아직 보지 않았기에 상당히 아쉽습니다. 올 한 해 수많은 영화와 제가 함께 만들어 갔던 시간들 모두가 소중했기에, 일 년간 제가 만나러 갔거나 저를 만나러 와준 영화들 전부를 언급할 수 없는 것 또한 아쉽습니다.
<노웨어 스페셜>
<더 파더>
<드로스테 저편의 우리들>*
<베네데타>
<쁘띠 마망>
<스파이의 아내>
<아네트>
<파워 오브 도그>
<피닉스>
<해피 아워>
* 제 25회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BIFAN) 상영작
<얼굴들>(1968)
<에드 우드>(1994)
<오프닝 나이트>(1977)
<운디네>(2020)
<위선적 영웅>(1996)
<중경삼림>(1994)
<타락천사>(1995)
<토니 에드만>(2016)
<트랜짓>(2018)
<홀리 모터스>(2012)
P.S. 어디까지나 평범한 관객의 개인 취향이 반영된 리스트입니다.
다르덴 형제와 이창동의 영화는 제게 터닝 포인트를 마련해 주었고, 뜻깊은 시간들을 선사해 주었습니다. 왕가위와 존 카사베츠, 사프디 형제, 크리스티안 페촐트, 레오스 카락스와 자크 오디아르의 영화들 역시 너무나도 소중한 경험들을 제공해 주었습니다. 그저 틈나는 대로 미친 듯이 영화를 보고 감상을 정리한 뒤 책을 뒤져가면서 글을 썼습니다. 내년에도 꾸준하고 싶습니다. 주간 영화는 계속됩니다. (아마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