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서브스턴스는 여지없이 몸의 영화다. 그렇다면 중요한 건 신체의 변형과 훼손을 통해 인물들이 어떤 감정과 생각에 몸담고 있는지, 또 그런 과정을 통해 어떤 변화를 겪게 되는지의 문제로 귀결된다. 이때 관객들은 감각이 강조되는 이 여정을 따라가면서 인물들과 동기화될 수 있지만 어쩐지 이 영화에선 그 작업이 어려워 보인다는 점에 주목하자. 이유는 바로 이 영화가 몸을 몸 자체로 다루는 게 아니고 몸을 이미지처럼 다룬다는 데서 찾을 수 있다. 이 때문에 눈에 띄는 일부 관객의 반응이 있다. 혹자는 이 영화를 보고 소셜 미디어 댓글 창에 “영화 속 수 배역을 맡은 마거릿 퀄리가 자신의 가장 아름다운 시절의 모습을 스크린에 영원히 박제해 놓았다. 너무 매력적으로 나오더라”는 식으로 적어 놓았다. 현대사회 속 자신을 갉아먹으면서 극한의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행태를 고발하는 영화를 보고 이런 반응이 나온다는 사실 자체가 바로 씁쓸함을 더욱 짙게 만든다.
이 같은 요소들은 역으로 삭막한 현실을 더욱 적나라하게 드러내고 있다. 여성들만이 낼 수 있는 목소리를 펼쳐 놓을 때나 여성만이 다룰 수 있는 여성의 서사를 이야기할 때조차 남성들의 흔적에 기대야 하는 구조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사실이 이번 작품 개봉을 계기로 드러난 셈이다. 게다가 과도한 레퍼런스와 오마주 요소들이 곳곳에서 보이는 탓에 사람들은 여성 신체를 다루는 작품의 진정성 내지는 몸의 화두라는 묵직한 지점들에 집중하는 대신 이 작품 속 이미지만을 가볍게 소비하고 있다. 틱톡 등의 플랫폼에서 인플루언서들이 영화 속 괴생명체를 따라한 분장 영상이 유행하는 것만 봐도 그렇다.
이런 맥락에서 서브스턴스가 의미 있는 이유는 바로 작품 자체만으로는 감독의 의도가 완성되지 못했다는 점이다. 오히려 다수의 대중이 작품을 소비하고 가공하는 행태가 재생산됐기 때문에 이 영화가 겨냥한 현실과 동기화 지점이 늘어난 셈이다. 그렇기에 서브스턴스는 영화와 현실 사이 상호작용을 들여다볼 때 더욱 그 가치를 음미하는 사례가 된다. 현실은 영화보다 무섭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