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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스페라투’, 흡혈귀 고전을 이 시점에 불러낸 이유

by 드플레

이제 필요한 질문이 있다. 왜 흡혈귀 캐릭터인 노스페라투가 지금 이 시점에 왜 우리 곁에 다시 소환돼야만 했을까.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 보자. 1922년작 ‘노스페라투’의 도입부는 어떠했나. “독일 위스보그(가상의 마을)에서 벌어지는 죽음에 대한 이야기…이야기는 이렇게 시작된다”고 극의 도입부와 실질적인 서사 사이 경계를 명확히 표현해냈다. 최신작은 어떠했나. 애거스 감독은 동시대 관객과 영화 속 배경을 연결 지으려 했다. 진보한 미술과 분장 기술을 통해 당대 시대상을 구현해낸 시도를 보면 그런 점이 느껴진다. 이 때문인지 ‘1838년 독일’을 자막으로 띄우면서 시작하는 이번 ‘노스페라투’가 이야기를 액자식 구성으로 풀어낼 생각이 없다는 점에 주목해볼 필요가 있다. 이 같은 선택으로 얻는 효과는 무엇일까. 액자식 구성을 포기한 덕분에 관객들은 이 고리타분한 흡혈귀 이야기가 여전히 우리와 동떨어지지 않았다는 사실을 보다 손쉽게 인식하게 될 수 있다. 다시 말해 노스페라투가 잊혀 가는 설화 속 존재로만 남아 있지 않을 수 있다는 말이다.


그런 측면에서 미뤄볼 때 최신작 노스페라투에서 가장 중요한 장면은 바로 올록 백작의 손아귀 그림자가 마을을 덮치는 장면이라고 할 수 있겠다. 외딴 성에 혼자 살던 노스페라투가 주인공 부부가 사는 마을로 진입한 뒤, 마을이 내려다보이는 집 안에서 창밖을 향해 손을 든다. 뻗친 손의 그림자가 칠흑이 내려앉은 마을 전역을 덮어 까맣게 물들인다. 이 장면은 두 가지 측면에서 의미가 있다. 먼저 올록 백작의 존재가 전설 속의 허황된 이야기가 아니라 실재하는 위협으로서 마을에 당도했다는 점을 보여줬다는 측면에서다. 또 주인공 부부뿐 아니라 공동체를 향한 위협이 도사리고 있다는 사실을 직관적으로 표현해냈다는 점에서도 언급할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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