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다른 ‘길복순’과 ‘사마귀’를 기다리며

by 드플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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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길복순’은 ‘현실에서 일어날 법한가?’ 대신 ‘얼마나 매력적인 세계인가’라는 후자의 물음이 훨씬 가치가 있는 영화여야 한다. 그런데 ‘길복순’을 두고 관객이 의아해했던 지점 중 눈에 띈 사례는 무엇이었나. 바로 청부살인 작업을 마치 하나의 작품을 찍어내는 것처럼 여기는 비현실의 만화적인 세계관에서, 사회 병폐나 이슈들처럼 지나치게 많은 현실과의 연동 지점을 녹여냈다는 점이다. 즉 쉽게 말해 이도 저도 아니라는 말이다. 이때 조금만 달리 생각해 보면, 이건 영화 제작진만의 문제는 아니다. 우리가 고려해야 하는 진영은 창작자뿐만이 아니라, 수용자 진영도 들여다봐야 한다. 결국 국내 관객이 선호하거나 기대하는 바를 충족시키기 위한 지점들을 크게 의식한 데에서 비롯된 산물일 가능성이 크다는 것. 즉 이런 맥락에서 우리는 ‘한국 관객’이라는 수용 환경에 관해 짚고 넘어가야만 한다. 이처럼 현실과의 관계 내지는 동기화 지점들을 환기하는 ‘길복순’의 전략은 어쩌면 당연한 접근법이었을지도 모른다. 한국의 관객들은 아직까진 킬러들의 세계를 받아들일 준비가 안 됐기 때문일 테다.


물론 한국 영화에서 ‘살인청부업자(킬러, 히트맨, 암살자)’ 자체는 낯선 존재가 아니다. 청부살인이라는 소재가 액션과 범죄와 결합할 때 서사의 동력원이자, 이벤트로 소비되는 사례가 셀 수없이 많기 때문일 테다. 기억나는 인물도 몇 있다. ‘악녀’(2017)의 숙희(김옥빈), ‘더 킬러: 죽어도 되는 아이’(2022)의 방의강(장혁), ‘파과’(2025)의 조각(이혜영)뿐 아니라 길복순과 차민규 그리고 사마귀(임시완) 등은 스크린 위에 저마다의 궤적을 남겼다. 문제는 ‘이들의 이야기가 계속해서 이어질 수 있느냐’다. 육체 언어가 됐든 감정선이 됐든 인물이 선사하는 매혹은 충분하더라도, 그 힘이 세계관을 넓히는 과정으로 이어지는 건 다른 문제여서다.


‘길복순’과 ‘사마귀’ 이전에는 어떠했나. 시곗바늘을 조금만 되돌려 보자. 국내에서 킬러들의 세계를 자세히 따라가려는 작품은 물론 몇몇 있었다. 2012년 공개됐던 ‘회사원’도 ‘길복순’처럼 전문 암살자들이 위장 회사에 취업한 채 현실에 녹아든 세상을 다뤘다. 물론 ‘회사원’은 ‘길복순’보다는 더욱 현실의 핍진성이랄지 개연성 같은 요소에 집중해 사회 반영, 풍자의 질감을 살리는 데 몰두했다. 살인청부업자도 회사의 부품과 다르지 않으며, 그저 나를 잃고 소모해 버리는 삶을 억지로 이어가는 근로자 개개인의 모습이 상세히 묘사되기 때문이었다. 그 뒤로도 청부살인을 소재로 다루거나, 조직 간 갈등에서 비롯된 살인 등을 내세운 콘텐츠는 계속해서 생산됐지만 결국 킬러들의 세계를 본격적으로 다룬 건, 2023년의 ‘길복순’이 가장 눈에 띄는 확실한 사례였다. 이때 한국만 놓고 보면 ‘회사원’과 ‘길복순’ 사이에는 11년이라는 간극이 있었다. 최근 들어선 비슷한 시도가 10여년 전에 비해선 늘어나고 있다. ‘사마귀’가 나오기 전인 올해 4월에는 ‘파과’도 개봉했다. 이혜영이 노년의 킬러로 분한 이 영화 역시나 전문 암살자 업계를 묘사한다는 점에서 궤를 같이한다. 그 사이 해외에선 글로벌 팬덤을 확보한 ‘존 윅’ 시리즈가 입지를 다지는 데 성공했다. 이른바 ‘존 윅 유니버스’는 킬러들의 세계관을 전면에 내세운 현대 프랜차이즈 중 가장 성공한 사례로 여겨도 될 만큼 완성도와 대중성을 동시에 얻었다. 인기를 방증하듯 최근엔 스핀오프 ‘발레리나’(2025)가 개봉했으며, 향후 메인 시리즈에 등장했던 캐릭터 등을 이용하는 다양한 후속 작품들이 줄지어 계획돼 있는 상태다.


앞서 봤듯 영화 ‘회사원’ 역시 시리즈 확장의 가능성을 품고 있었지만, 이조차도 한 편이라는 단발성 기획에 그치고 말았지 않나. 그렇기에 한국에서 만들어진 콘텐츠들 사이에선 아직까진 킬러들의 세계를 ‘존 윅 유니버스’처럼 다뤘던 적이 사실상 없다고 봐도 좋다. 이제 막 ‘길복순’과 ‘사마귀’가 그 토대를 다지려는 단계로 보인다. 왜 이런 시도가 그동안 나오지 않았는가? 몇 가지 이유를 짚어볼 수 있다. 앞서 봤듯 가장 큰 이유는 관객들이 한국 영화에 기대하는 전형성에서 그 답을 찾을 수 있다고 본다. 영화가 대중과 호흡해 온 이래로 국내 관객에게 중요한 건 대체로 ‘현실성’과 ‘개연성’이었다. ‘부당거래’, ‘황해’, ‘신세계’, ‘베테랑’, ‘아수라’, ‘범죄도시’ 등 수많은 사례를 떠올려 보자. 폭력과 살인은 단순한 장르 장치가 아니라, 현실의 부조리를 들추고 쑤시는 도구이자 은유로 쓰였다. 조직 폭력배는 언제나 경·검찰 등의 공권력, 재벌 등의 유착으로 얽혀 있고, 관객들은 스크린 너머 현실과 맞닿는 접점을 음미하는 데에서 통찰과 쾌감을 얻는 구조가 여러 작품에서 반복돼 왔다. 이런 수용자의 환경 토대라면 ‘존 윅 유니버스’에서처럼 킬러들이 지켜야 할 규칙이니, 어떤 암살자에게 걸린 현상금이 얼마인지를 따지는 발상들이 다소 생경하게 다가올 확률이 아무래도 높지 않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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