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바타: 불과 재

by 드플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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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편에서 우리는 무리에서 추방된 툴쿤 파아캰의 시점을 간접체험했다. 3편에서도 관객들은 로아크와 친구들을 바라보는 툴쿤의 눈을 잠시 빌린다. 단순 시점숏이 아니라, 마치 툴쿤의 동공과 홍채의 생물 컨디션을 반영한 듯 노란 빛 필터가 적용된 화면이다. 2편과 3편 모두 같은 형태다. 3편에서 눈에 띄는 구간은 하나 더 있다. 영화는 키리의 손에 이끌려가는 스파이더의 1인칭 시점 또한 관객과 공유한다. 문제는 이런 구간들이 오래도록 지속되지도 않고, 그저 다른 숏들처럼 찰나의 순간만 지나가고 컷된다는 점에서 비롯된다. 그러니까 이런 순간들은 이 순간을 강조하기 위해 도입된 게 아니라, 그저 흐름의 일부로만 기능하는 셈이다.


그러니 이런 시도들이 자연스레 과시처럼 다가온다. 조금 비꼬아 본다면 마치 창작자가 자신의 윤리의식을 은근하게 내세우는 것처럼 느껴진다. 틈날 때마다 타자의 입장을 고려하며 '역지사지'를 몸소 실천하는 마음가짐으로 이 영화를 만들고 있다고 선언하는 모양새가 아닌가. 그렇지만 정말 타자의 시점을 관객과 공유하고 싶었다면, 아바타 3편의 프레임 속에는 장로 툴쿤들의 참전으로 인한 스펙터클 대신 파야칸과 타눅과 그들 사이 소통 과정이 더욱 담기는 편이 나았을 법했다. "예 족장"이라는 파야칸의 한마디로 너무나 손쉽게 봉합되어버린, 그런 종착점은 노란빛 필터의 시점숏을 더욱 초라하게 만든다.


제임스 카메론은 3편에 AI 기술이 쓰이지 않았다는 점을 강조한다. 기계에 의존하지 않은 지극히 '인간다운' 산출물이라는 게 핵심이다. 그렇지만 프레임 내부와 너머가 서로 연동될 수 있었는가. 사실 3편이 보여준 '인간다움'이라는 건 무엇이었나. 설리는 나비족다움이 아닌, 인간다움에 관한 고민에 더욱 매달린다. 스파이크는 1편의 토루크 막토라는 구세주 설리의 바통을 이어받아, 4편과 5편에서 제2의 설리가 될 채비를 마쳤다. 결국 시리즈 내내 매우 피상적이고 얄팍하게나마 시도하려 했던 탈중앙화, 연대 도모, 생태주의 따위의 의제들이 3편에선 다시 흐릿해질 뿐이다.


언젠가 카메론이 한 인터뷰에서 이런 말을 했던 기억이 난다. 나비족의 신체 특징이나 번식 방법이 인간과 유사한 이유가 있는지 묻는 질문에 대해, 그는 관객들이 수용 가능한 수준을 고려했다는 뉘앙스로 말하지 않았나. 그러니 카메론의 '인간다움'은 거기에 있는 셈이다. 인간 중심의 사고방식. 그러니 아바타 시리즈는 어쩔 수 없이, 타자와 접속 또는 연동 또는 연대하는 데 실패할 운명을 타고났다. 우리가 인간인 이상, 인간이라면 지닌 특성을 부정하거나 버리거나 내려놓을 수 없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거듭 생산되는 아바타 시리즈는 실패를 거듭하며, 인간이 가장 인간답다는 걸 방증하는 하나의 사례로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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