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 영화

2020.07.31-2020.08.06

by 드플레

<이웃집 토토로> (미야자키 하야오, 1988)


<이웃집 토토로>는 공감대 형성이 쉬운 보편적 정서를 작가(감독) 고유의 화술로 장식하여 관객에게 전달하는 작품이다. 묘사된 캐릭터와 서술 구조에 담긴 알레고리와 메타포(은유)는 특정 관점 하에 고정된 채 존재하지 않는다. 이런 특성이 이 영화를 뛰어난 작품으로 만들어준다. 결국 감상자는 이 영화를 다채로운 시각으로 읽어낼 수 있다. 게다가 관점을 달리하여 영화를 해석할 때마다 감독 특유의 색채로 담아낸 주제 의식이 사라지지 않고, 오히려 적절히 변주되어 자연스럽게 녹아든다.


서사도 뚜렷하지 않으며 인물도 입체적이라고 보기 어렵다. 하지만 이 영화가 집중하는 부분은 따로 있다. 미야자키 하야오는 이 작품에서 애니미즘, 소년 시절과 향토 문화로 도출 가능한 정서(일본인 입장에서의 보편적 정서)를 기저에 깔고 인간 본질적 요소를 재치 있게 배치하여 인류 공통의 공감대를 자극하는 데 성공했다.






<오션스 일레븐> (스티븐 소더버그, 2001)


끝내 오션은 사랑을 되찾고, 팀원들은 돈을 얻는다. 작업이 성공하고 오션과 친구들의 우정이 돈독해졌는지는 알 수 없다. 사실 영화는 오로지 '카지노 금고 털이'에 집중하다 못해 집착하기 때문이다. 동료들은 오션의 카지노 털이 제안을 거부하지도 않고 수용했다. 각자의 사연은 묻어둔 채, 그렇게 범죄는 성공을 향해 내달린다. 관객의 혼을 빼놓으려고 작정하고 흔들어대는 이 작품은 오션과 러스티의 불화마저도 작전의 일부로 활용하며 시종 센스를 자랑하기 바쁘다. 흔히 말하는 '현대 케이퍼 무비'의 특성을 다분히 보여주는 이 영화는 1960년 개봉한 프랭크 시나트라 주연의 동명의 영화를 리메이크한 작품이다.






<오션스 일레븐> (루이스 마일스톤, 1960)


1960년 개봉한 <오션스 일레븐>은 화려한 출연진을 자랑한다. 프랭크 시나트라, 딘 마틴, 새미 데이비스 주니어 등 60년대를 달궜던 스타들이 총출동했다. 2001년에 스티븐 소더버그가 리메이크한 <오션스 일레븐>도 만만치 않다. 조지 클루니, 브래드 피트, 맷 데이먼과 줄리아 로버츠까지. 톱스타 라인업을 구축한 1960년과 2001년의 <오션스 일레븐>은 겉모습이나 주요 설정만 봐서는 비슷한 점이 많아 보인다. 그런데 자세히 살피면, 두 영화가 상당히 다르다는 걸 알 수 있다. 특히 플롯을 꾸미는 방식에서 두 영화는 많이 다르다.


오리지널 <오션스 일레븐>은 영화 중반부 즈음까지 카지노 털이에는 관심이 없고, 오로지 스타 배우들의 말과 행동에만 집중한다. 총 러닝 타임이 두 시간인 작품에서 영화 시작 이후 1시간이 지나서야 금고털이가 본격적으로 이루어지는 전개 방식은 분명 아쉬운 구성이다. 초중반의 전개는 매우 느슨하다. 중심 서사는 희미하고 일상 대화와 잡담이 난무한다. 그렇지만 그 속에는 다양한 인물의 사연들이 드문드문 숨어 있다. 이렇게 심어 놓은 씨앗(오션의 전처와 현 애인, 지미의 새아버지 산토스 등)은 후반부 적절한 때에 싹을 틔우며 극의 흐름에 변칙 리듬을 부여하고, 정서 공감을 유도한다. 이후 오션의 패거리가 팀을 꾸려 계획을 공유하며 본격적으로 '케이퍼 무비'의 외양을 갖춰나간다.






<벨벳 버즈소> (댄 길로이, 2019)


댄 길로이의 <벨벳 버즈소>는 공포, 스릴러의 공식을 곁들인 풍자극이다. <나이트 크롤러>를 연출한 댄 길로이의 작품이고, 내가 가장 좋아하는 배우 제이크 질렌할이 주연을 맡은 영화라서 나는 이 작품을 무조건 봐야만 했다. 감독이 담아낸 영화의 메시지가 눈에 포착은 되지만, 마음속에 와 닿지 않는다. 말하고자 하는 게 느껴지니까 우선 내 기준에서 졸작은 아니다. 그렇지만 이 영화에 담긴 연출법은 많은 의문과 아쉬움을 남긴다. 영화의 주제는 인물이 처한 상황과 행동, 대사 등의 다양한 풍자 요소로 짐작 가능하다. 그런데 감독은 주제 구현을 위한 내러티브를 매력 있게 조직하지 않았다. 그저 의미심장한 상징으로 가득한 쇼트의 나열과 그 흐름 속에서 파편처럼 떠도는 대사, 행동이 영화의 메시지를 구체화한다. 또한 캐릭터를 서사 흐름에 녹여내지 못하며, 의미 없이 낭비되는 인물도 발생한다.


제이크 질렌할은 남녀 통틀어 내가 제일 좋아하는 배우다. 배역에 따라 다르긴 하지만 그는 특별한 무기를 가졌다. 그는 마음속 저 깊은 곳에서 불편한 감정을 끄집어낼 줄 안다. 희로애락처럼 선명한 감정들을 표현할 때는 특별하다는 느낌을 받기 힘들지만 '희미한 피로감', '원인 모를 상실감' 등의 "숨은 감정들을 풀어내는 질렌할"(내가 전에 적은 글을 인용하자면)은 그 어느 배우보다도 강력한 아우라를 발산한다. 그런데 이 영화를 포함한 최근 몇몇 작품을 보고 나니 어렴풋이 깨달은 게 있다. 아무래도 질렌할은 카멜레온 같은 배우(ex. 에디 레드메인)가 아닌 맞춤 환경에서 능력이 극대화되는 배우(ex. 라이언 고슬링)인 것 같다.






<카오산 탱고> (김범삼, 2020)


영화 관람 직후, 나는 이 영화의 제목을 떠올렸다. 그냥 제목에 대한 의문이 생겼다. '왜 카오산 탱고일까'. 방콕의 카오산 로드를 배경으로 하는 로드무비라는 점에서 '카오산'이라는 단어 배치는 지극히 직관적이며 합당하다. 게다가 아름다운 탱고 음악이 영화 내내 흘러나온다. 그래서 탱고가 제목에 들어갔을까? 아니, 아직 와 닿지 않는다. 과거를 붙잡고 있는 남자와 현재만 바라보는 여자 사이의 묘한 기류는 본능적으로 피어오르는 설렘과 행복, 각자 간직한 아픔과 상실을 거쳐서 성찰과 치유로 이어진다. 이 이야기를 '카오산 탱고'와 어떻게 연결해야 좋을까.


카오산과 탱고, 영화 속 이야기를 한 덩어리로 만들고 싶어서 인터넷을 뒤적이던 나는 감독 지인의 시사회 후기를 통해 단서를 얻었다. 감독은 탱고 음악 'Que Nadie Sepa Mi Sufrir'에서 영감을 받은 듯하다. 이 곡의 제목은 '당신이 내 고통을 아나요'로 해석된다. 탱고 선율에 담긴 이 고통의 정서는 감독의 자전적 경험과 연결(박순백, 2018) 되면서 다양한 사람들이 만나고 헤어지는 '카오산 로드'라는 공간을 빌려 영화를 이루는 이야기로 탈바꿈한다. 제목과 이야기, 음악과 배경은 그렇게 어우러진다.


제목을 향한 의문은 어느 정도 해결됐다. 이제 다시 영화를 떠올린다. 감독이 영화를 통해 무엇을 말하려는지 어렴풋이 느껴지긴 하지만 어째 인물들의 사연은 내 마음속에 오랫동안 머물면서 나의 공감을 얻는 데는 실패한 듯 보인다. 이 영화를 이루는 요소들(음악, 배경, 인물 등)은 모두 매력이 넘치지만 자연스럽게 섞이며 나의 내면에 깊게 스며들지는 않는다. 상실의 아픔을 여행으로, 아니 사람으로 치유하는 과정 속에 수반되는 여러 감정 기반 서사는 아름다운 태국의 풍광과 감성적인 탱고의 분투에도 불구하고 다소 삐걱대는 모습을 숨기지 못한다.



참고 문헌

"아픔을 딛고 마음과 몸이 성숙하고 싶어 김범삼이 만든 영화, “카오산 탱고”." (2020년 8월 4일) Dr. Spark.net. http://www.drspark.net/index.php?mid=sp_freewriting&page=3&document_srl=4229650





<칠드런 오브 맨> (알폰소 쿠아론, 2006)


촬영 감독 엠마누엘 루베즈키는 몇십 초가 아닌, 몇 분 단위의 핸드헬드 롱테이크 쇼트를 주로 배치했다. 이는 영화 속 세계관의 시간을 관객이 고스란히 체감할 수 있게 한다. 영화의 시간과 관객의 시간이 동일하게 흘러가면서 관객은 화면에 펼쳐진 세계에 몰입하는 걸 넘어 그 세계에 자신이 편입되는 듯한 착각에 빠진다. 핸드헬드 촬영이 전해주는 현장감과 생동감은 관객을 세계 밖으로 나가지 못하도록 붙든다. 카메라는 종종 피사체와 거리를 조절하고, 시점을 적절히 바꿔서 관객의 능동적인 감상을 유도한다. 이 모든 촬영과 편집은 주제의식을 관객의 마음속에 효과적으로 새겨 넣기 위한 알폰소 쿠아론과 엠마누엘 루베즈키의 헌신이자 노력 그 자체로 볼 수 있다.






<A-특공대> (조 카나한, 2010)


출연진 각자의 연기와 본연의 매력을 살려 캐릭터에 적용하니 감칠맛 나는 인물이 구축된다. 물론 이 영화 속 한니발(리암 니슨 분)과 그의 팀원은 치밀하게 구성된 각자의 서사를 이끌어가거나 플롯 속 사건 흐름을 주도하는 핵심 행동을 보여주지는 않는다. 그러나 인물들의 외형적 매력은 살아있다. 인물이 종종 뱉는 주요한 대사나 배우의 역량으로 만들어낸 특유의 분위기는 캐릭터와 인물 관계에 생명력을 주입한다.


주인공 네 명 모두 팀을 위한 행동이라면 그 어떤 것이든 한다. 영화를 보면 팀플레이가 녹아든 장면이 많이 보이는데 이런 장면이 매력적으로 다가오는 이유는 개인의 활약이 화려해서가 아니라 이들이 각자의 위치에서 최선을 다하며 팀으로서 빛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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