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 영화

2020.08.14-2020.08.20

by 드플레

<소셜 네트워크> (데이빗 핀처, 2010)


<소셜 네트워크>는 정말 재밌는 영화다. 한시라도 눈을 뗄 수가 없을 만큼 몰입감이 좋다. 이 작품은 마크 저커버그가 대학생 때 페이스북을 창립하는 과정을 사실관계에 기초해서 각색한 영화다. 우스갯소리로 현실이 아무리 영화 같다지만 허구로 창작한 이야기와 실화 기반의 각색물은 분명 흥미 유발의 정도가 다르다. 현실에서 '일어나는 일'과 '일어날 법한 일' 사이엔 미세한 차이가 있다. 영화화의 관점에서, 전자는 자칫 잘못하면 따분해지기 쉬워 각색이 까다롭고 후자는 극적인 요소를 장착하면 재밌는 이야기로 비교적 쉽게 탈바꿈한다. 실화 각색물이 그 미묘한 간극을 넘어서려면 연출자의 상당한 내공이 필요하다. 이 작품이 재밌다는 말은, 바꿔 말하면 감독 데이빗 핀처가 그 내공을 십분 발휘한 것으로 봐도 좋다는 말이다.


영화는 저커버그, 윙클보스 형제와 나렌드라, 왈도 사이에 벌어지는 소송에서 인물들이 진술할 때마다 걸맞은 회상 장면을 열심히 교차하면서 전개된다. 회상을 통해 펼쳐지는 이야기는 페이스북 창립 배경과 사업 시작 이후 초기 성장 속에서 벌어지는 사업자 간 갈등으로 간단히 정리할 수 있다. <조디악, 2007>에서 뽐냈던 핀처의 역량은 이 영화에서 한껏 세련미를 더했다. 진부할 수 있는 소송 장면과 과거 회상을 몰입감 넘치게 조직한 것 자체만으로도 이 영화는 분명 의미가 있다.


그렇다면 이 영화는 단순히 기술적인 완성도에만 의지하는가? 그렇지 않다. 이 작품엔 사람들이 정서적으로 이입할 수 있는 지점이 많다. 천재 너드 대학생 저커버그의 창립 도전기와 이해관계로 얼룩진 소송 과정을 통해 관객은 삶에서 느낄 수 있는 크고 작은 공감대를 발견한다. 사업을 확장하면서 친구 왈도와 관계가 틀어진 저커버그의 복잡한 심경을 보며, 전 애인에게 페이스북 친구 신청을 보낸 뒤 수락 여부를 확인하며 새로 고침 버튼을 누르는 공허한 저커버그의 표정을 보면서 나는 그에게 몰입하고 공감할 수 있었다. 그래서 이 작품이 핀처의 최고작이라는 의견이 나온 게 아닐까 싶다.



P.S 내 취향에 맞는 데이빗 핀처의 연출작은 <조디악, 2007>과 <세븐, 1995>이다. 이제 미뤄 뒀던 <파이트 클럽>과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 <더 게임>도 슬슬 봐야겠다.








<빅 쇼트> (아담 맥케이, 2015)


감독이 영화에 채택한 기법이 흥미로운 작품이다. 인물이 관객에게 말을 거는 장면이 자주 쓰인다. 이런 연출은 작품에 몰입하려는 관객과 거리를 두게 하는 효과도 있고, 스크린에서 진행되는 상황을 관객이 이성적인 시선으로 인식하여 능동적으로 사고할 수 있도록 도와주기도 한다. 극 중간마다 분명히 구간을 명시하며 유명인이 등장해 낯선 경제 용어를 설명한다. 이를 통해 사건 흐름의 유기성은 다소 약화되고, 관객은 어색함과 신선함 등의 반응에 휩싸인다. 그럼에도 경제 용어 설명을 이보다 더 확실하고 매끄럽게 할 수는 없다. 감독이 이 작품을 왜 만들었는지를 떠올려보면 납득 가능한 연출 방식이다. 각기 다른 개인을 조명하며 문제에 처한 상황에 집중하면서도 감상적 태도에 함몰되지 않고 날카로운 눈빛으로 비판 대상을 응시하는 영화다.








<그녀에게> (페드로 알모도바르, 2002)


이 영화를 두고 의견이 종종 갈린다. 여성을 지나치게 대상화한 묘사, 남성의 폭력적인 범죄를 미화하는 듯한 연출이 주된 담론의 소재로 보인다. 베니뇨가 강간을 하고 나서도 자신이 강간이라는 범죄를 저질렀다는 걸 인식조차 하지 못하는 걸 보면 과연 베니뇨에게 있어 사랑은 어떤 의미인지 생각해봐야 할 것이다. 물론 시각에 따라 감독이 강간 범죄자를 옹호한다고 보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감독은 적나라한 범죄의 현장을 그대로 묘사하지 않고 무성 영화로 대체하여 우회해서 나타내는 방식을 택했다. 이는 범죄를 교묘하게 옹호하려고 한 장치인가 아니면 주제 의식과 다소 떨어진 부수적인 논쟁을 최소화하고자 한 노력인가.


감독은 이 영화를 통해 관객에게 끊임없이 질문을 던진다. 마르코와 베니뇨의 말과 행동, 이들의 관계에서 파생된 여러 에피소드들은 '진정한 사랑은 무엇인가'에 관해 묻고 있는 듯하다. 그리고 더 묻는다. 사랑하는 대상을 어떻게 생각할 것인지, 사랑을 어떻게 표현할 것인지 말이다. 그리고 나는 생각하게 된다. 이상적인 사랑의 형태를 정의할 수 있긴 한 것인가? 어떤 사랑이 완벽할까. 저마다의 사랑하는 방식은 그 자체로 나와 상대에게 어떤 의미를 가질까.


페드로 알모도바르 감독의 특징이 고스란히 담긴 영화다. 성적 메타포와 뒤틀린 사랑, 붉은 색채로 가득한 미장센 등이 직관적으로 다가온다. 영상미 관련해서는 매번 볼 때마다 감탄이 절로 나오게 하는 감독이다.








<프로젝트 파워> (헨리 유스트 & 아리엘 슐만, 2020)


조셉 고든 레빗과 제이미 폭스가(토끼와 여우...) 나온다는데 일단 보고 판단하기로 했다. 최근 넷플릭스가 배급하는 킬링타임 무비들은 어딘가 비슷하다. 트렌디한 삽입곡, 드라마를 연상시키는 화면의 질감 등 많은 부분에서 유사성을 보인다. 뭐 투자, 제작, 감독부터 제작진과 출연진까지 그때마다 조합과 상황이 다르니까 순전히 기분 탓이긴 하겠지만 말이다.


어쨌든 이 영화는 알약이라는 소재에서 <리미트리스, 2011>를, 능력을 얻게 된다는 점에선 각종 히어로물과 초능력자가 등장하는 영화를 자연스럽게 떠올리게 한다. 채택한 소재를 충분히 매력적인 이야기로 꾸며낼 수 있었지만, 이 작품은 갈피를 잡지 못한 채 중심과 방향성을 모두 잃어버렸다. 부성애와 자아 탐구, 잠재 능력 발현과 자유 의지 같은 제법 다양한 주제 의식들 틈에서 방황하는 작품이다.


그럼에도 짚고 넘어가고 싶은 건 바로 로빈(도미닉 피시백)이다. 알약이 잠재력을 끌어내는 수단은 아니라서 비교하기에 적절하진 않지만 어쨌든 영화에서 로빈은 유일하게 알약을 먹지 않고 잠재력을 끌어내는 존재로 묘사된다. 과정은 삐걱대고 납득하기 어려워도 결국 로빈은 자신을 향한 확신을 얻게 된다.








<쥴 앤 짐> (프랑수아 트뤼포, 1961)


참 신기하다. 흑백영화에서 컬러풀한 생동감이 느껴진다. 청춘 남녀 간의 우정과 사랑을 다룬 이 영화는 언뜻 보면 쾌활한 로맨틱 코미디쯤으로 보일 수 있겠으나 끝까지 다 보고 나면 생각보다 머리가 지끈거리는 영화다. 재기 발랄한 카메라의 움직임으로 잡아낸 인물들의 생명력과 겉으로 티가 나지 않는 우울과 불안감이 동시에 느껴지는 영화다.


쥴과 짐, 그리고 카트린은 서로가 서로에게 휘말려 들어간다. 이 영화는 쥴과 짐 그리고 카트린이 서로의 의견을 묻고 나누는 장면이 많이 나온다. 그만큼 관객은 저마다의 가치관에 치우쳐서 이들을 바라보는 대신, 다양한 관점에서 이들의 언행을 수용할 수 있게 된다. 한편 감독이 아마 이들의 자유분방하게 얽힌 사랑 끝에는 결국 관계의 단절만이 있을 뿐이라며 냉소를 날리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카트린은 늘 사랑받길 원했다. 동시에 대상화되기를 꺼려하며 어떤 상황에서든 주체가 되길 원했다. 이렇게나 모순된 존재를 많은 남자들이 떠받들었다는 점도 흥미롭다. 카트린은 오로지 자기만족을, 짐은 관계의 안정을 추구한다. 쥴에겐 카트린을 향한 무조건적인 사랑만이 있었다. 카트린에게 쥴은 자상한 남편이자 안정적인 남자였지만 카트린은 만족할 수 없었다. 끝내 짐과 카트린은 이어지지 않는다. 짐은 처음으로 카트린에게 구속되지 않는 남자였을 것이다. 그래서 카트린은 결단을 내린 게 아닐까? 내가 가질 수 없다면 그 누구도 갖지 못하게 말이다.








<소년 시절의 너> (증국상, 2019)


청소년 세대가 심각한 문제에 직면했을 때 기성세대를 믿지 못한다는 건, 과연 누구의 책임일까. 사실 책임을 특정 대상에 한정 지어 묻는다는 건 굉장히 어려운 일이다. 영화도 그 원인을 파헤치지 않고 이들이 처한 현실을 적나라하게 묘사하면서 펼쳐지는 상황을 향해 공감을 요구할 뿐이다. 어떻게든 버텨내서 소년이 어른이 된 후, 문득 떠올리는 그때의 날카롭고 혹독한 기억은 시간이 지나서 깎여나가고, 독기를 잃어버린다. 시간이 더 지나면 기억을 꺼내봐도 희미한 잔상조차도 남지 않을 수도 있다. 그래서 공감에만 그치지 말고, 한 번쯤은 생각해봐야 한다. 우리가 지금 놓치고 있는 것은 무엇인지 말이다. 베이 역을 맡은 이양천새 배우가 크레딧에서 관객에게 전달하는 메시지도 그냥 지나치면 안 될지도 모른다.


지나친 엘리트주의와 세대 간 소통의 부재가 빚어낸 학교 폭력 문제에 관해서 그 실상을 직시하려고 노력한다. 클로즈업의 과도한 사용은 사회문제에 처한 개인의 내면에 집중하겠다는 감독의 고집이다(주연 배우의 훌륭한 연기 덕에 좋은 선택이 됐다). 결국 영화는 감정적 호소에 기반하여 세상에 내던져진 개인을 조명하면서도 관객에게 경각심을 환기한다. 한편 이 영화는 학교 폭력을 진중하게 다루다가 천니엔과 베이의 관계를 첨가하여 전개를 확장한다. 서로를 향한 신뢰와 사랑이 빚어낸 치유와 극복 의지, 가해자와 피해자의 경계가 무너진 시스템 속 갈등 당사자의 도덕성, 사회가 시스템 속 약자에게 취해야 할 자세나 태도 등에 관해 다양하게 묘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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