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 영화

2020.09.04-2020.09.10

by 드플레

<초록물고기> (이창동, 1997)


제대한 지 얼마 안 된 막동(한석규 분)은 달라진 사회에 녹아들지 못하는 인물이다. 가슴속에 순수한 꿈을 차곡차곡 쌓아가던 막동은 사회라는 거대한 폭력에 희생되는 도구일 뿐이다. 이창동은 막동이를 애틋하게 바라본다. 인물을 향한 감독의 시선은 애정이 있어 보이지만, 이는 연민에 가깝다고 볼 수 있다. 자기 식구를 죽인 사람에게 맛있는 식사를 대접하는 막동이네 가족을 보고 있으면 괜히 안쓰럽기도 하고, 허탈하기도 하다. 참으로 각박하고 잔인한 세상 아닌가. 재개발되는 일산 신도시와 막동의 집이라는 두 공간이 한 장면에 동시에 담기는 모습에선 감독의 날카로운 사회 진단이 느껴지기도 한다.


상징이나 은유를 활용하는 방식, 인물 묘사, 서사 전개 등 영화 전반에 걸쳐 소설가였던 감독 특유의 성향이 녹아있다고 느꼈다. 누아르 영화는 기본적으로 사회상과 연결된다. 이 작품은 사회의 단면과 이어지는 누아르라는 큰 틀을 활용하고 있지만, 개인의 내면과 사회를 끊임없이 대비하여 통념적인 장르 특성과는 살짝 결이 다른 공감대를 이끌어낸다. 막동이에게 부여된 사회적 약자라는 설정과 한석규의 몰입을 높이는 훌륭한 연기력 덕분에, 관객은 이 캐릭터에게 강한 정서적 애착을 형성할 수 있다.





<박하사탕> (이창동, 1999)


<초록물고기>의 막동이와 <박하사탕>의 영호(설경구 분)는 모두 급변하는 사회 속에 내던져진 초라한 개인들이다. 이창동은 이들이 사회에 적응하지 못하고 튕겨져 나가는 모습을 사실적으로 담아내고 있으며, 이런 연출 방식은 인물과 사회상을 직관적으로 연결 지어 생각해볼 수 있게 만들어준다. 한편 <박하사탕>에선 얼핏 보면 영호의 비극이 사회적 변화와 맞물려 있다고 생각하게 된다. 당장 5.18 민주화운동과 97년도 외환 위기 사태가 눈에 띄지 않는가. 하지만 분명 짚고 넘어가야 한다. 영호의 모든 행동들이 격동하는 사회라는 외압에 의해 당위성을 보장받을 수 있는지는 모르겠다.


이 영화는 끝에서부터 시작으로, 현재에서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는 타임라인으로 구성된다. 7개의 챕터로 나뉘며, 각각의 챕터 사이에는 기차가 선로 위를 달리는 모습을 역재생한 장면을 담았다. 사실 기차가 거꾸로 가는 것만 봐서는 이게 정방향 재생인지 역재생인지 정확히 알기는 힘들지만, 나무로 모여드는 벚꽃잎, 거꾸로 걷는 사람들, 강아지와 자동차를 통해 비교적 간단히 알 수 있었다. 영호는 기찻길로 뛰어들어 자살로 생을 마감한다. 기차는 이 영화의 시작이자 끝이다. 첫사랑 순임(문소리 분)도 자살로 생을 마감하는 그 철로가 있는 장소에서 만났다. 최초의 영화가 뤼미에르 형제의 <열차의 도착, 1895>인 탓인지 영화에서 기차는 종종 중요한 모티프로 쓰인다.


영화가 시간 역순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이는 표면적으로는 영호의 인생을 조각내서 재배치한 것으로 보인다. 그렇지만 우리는 마지막 장면에서 눈물을 흘리는 영호를 주목해야 한다. 사실 난 처음에 그 눈물이 직관적으로 와 닿지 않았다. 설렘 가득한 야유회에서 순임 씨를 알게 된 영호가 흘리는 눈물 치고는 사연이 매우 복잡해 보이지 않는가. 어쩌면 이 영화는 죽기 직전의 영호가 망가져 버린 자신의 삶을 돌아보는 기억 그 자체일지도 모른다. 그러니까 우리는 영호가 떠올린 기억들을 음미하고 있는 셈이다.


P.S. 역방향 장면에서 쓰인 음악이 정말 좋았다.





<패스트 & 퓨리어스 2> (존 싱글톤, 2003)


전작 <분노의 질주>는 패기로 가득 찬 카레이싱의 긴박감 속에서 잠입 경찰과 가족주의 범죄자 간의 우정을 포착하려고 했던 영화다. 전작에서 돔(빈 디젤 분)을 일부러 놓아준 브라이언(폴 워커 분)은 이번 영화에서도 로만(타이리스 깁슨 분)과 사건에 휘말리게 된다. 이 영화는 전작의 다소 거칠고 불균형했던 스토리라인을 비교적 매끄럽게 다듬어서 브라이언의 서사에 나름대로 설득력을 부여했다. 다만 'Fast & Furious'라는 시리즈인데 이 영화는 사람 사이에서 피어나는 감정들과 개인의 내면을 짚어내면서 이를 카 액션과 나름 연결해보려던 전작과는 다르게, 자동차 액션으로만 가득 차 있고 분위기도 전반적으로 경쾌해서 시리즈가 모색하려 했던 정체성을 계승하는 데는 실패한 듯싶다. 한편 눈여겨볼 포인트는 바로 후반부 자동차 대량 투입 신과 브라이언과 로만의 차량이 요트로 뛰어드는 신이다. 분명히 해당 장면에서 우리는 느낄 수 있다. 차량에 금고를 매달고 시가지를 초토화시키며, 초고층 빌딩 사이를 슈퍼카로 넘나들고, 잠수함과 추격전을 벌이는 속편들의 향기를... 분명 2편까지만 해도 이 시리즈가 그렇게 될 줄은 몰랐다.





<헐크> (이안, 2003)


이 영화는 이안 감독이 연출한 슈퍼히어로물이다. 좋은 부분도 있었지만 전체적으로 아쉬움이 많은 영화다. <와호장룡, 2000>이라는 수작 이후 내놓은 작품이라 더 그런 걸지도 모른다. 독특한 화면 편집을 통한 극 전개 템포 조절, 매개체를 이용한 쇼트 전환 같은 연출적 시도는 분명 매력 있게 보이긴 하지만 영화의 진중한 분위기와 묘하게 겉돌면서 좋은 인상을 주진 않는다. 주인공 브루스 배너(에릭 바나 분)의 내면을 자꾸 들여다보려는 시도가 느껴진다는 점은 마음에 들었다. 주제의식의 깊이와 볼거리의 규모 중에서 명확한 선택을 하지 못하고 어정쩡한 타협을 해버린 작품이 아닐까 생각된다.





<햄스테드> (조엘 홉킨스, 2017)



장단점이 뚜렷해 보이는 영화다. 영상미는 훌륭하다. 자연의 아름다움이 고스란히 담겨 있어 눈이 편안해지는 점이 너무 좋았다. 베테랑 배우들이 뽐내는 안정적인 퍼포먼스 덕에 상당한 안정감도 생긴다. 그런데 인물들의 감정선을 온전히 따라가기에는 편집된 화면도 많아 보이고 다소 불친절한 묘사를 보여준다. 극 전개 속도도 들쭉날쭉하다. 노년의 로맨스, 거주 문제와 관련한 사회상 묘사, 아름다운 자연경관 등 눈에 두드러지는 포인트는 많지만 이것들이 어우러지지 않아서 아쉽다.





<마스크> (척 러셀, 1994)


시종 유쾌한 작품이다. 이 영화를 보고 나면 배우 한 명이 작품 전체를 지배한다는 말의 의미를 자연스럽게 이해할 수 있다. 만약 짐 캐리가 주연이 아니었다면 이 작품이 크게 성공할 수 있었을까? <마스크>에서 짐 캐리의 존재감은 그 정도로 특별하다. 짐 캐리의 퍼포먼스가 차지하는 비중이 절대적이지만 잘 살펴보면 흥미로운 점이 많은 영화다. 영화 속 비현실적으로 보이는 CG 처리(마스크의 심장이 튀어나오거나, 턱이 빠지고, 몸이 고무처럼 휘는 등)는 캐릭터 형성과 상황 묘사에 있어 중요한 요소로 작용한다. 즉, 이 작품의 CG를 활용한 연출은 어색하게 제작비를 낭비하는 질 낮은 기법으로 볼 수 없다는 말이다. 스탠리 입키스(짐 캐리 분)가 밤마다 마스크로 변신하면서 벌어지는 에피소드는 코미디, 뮤지컬 등 장르 요소가 어우러지면서 극의 템포를 재치 있게 조절한다. 카툰, 애니메이션, 극 영화의 질감이 동시에 느껴지는 장르 영화라는 점도 매력 포인트이다. 주제 의식에서 비롯되는 깊이감이 부족한 전형적인 상업 영화임에도 나름 자아 탐구와 정체성에 관한 물음을 가볍게 던지고 있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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