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10.02-2020.10.08
카메라는 닉(베니 사프디 분)의 두 눈을 익스트림 클로즈업으로 잡고 영화의 시작을 알린다. 후반부 경찰에 잡힌 코니(로버트 패틴슨 분)의 얼굴이 점차 확대되다가 코니의 얼굴에서 닉의 얼굴로 숏이 바뀐다. 영화는 마지막에 닉을 화면 가득 잡지 않고 건너기 게임(장애자 대상 교육)을 하는 그의 모습을 방 밖에서 바라본다. 개인의 감정을 면밀히 포착하려는 기법이 주로 사용되지만 결정적인 순간에 카메라는 인물에게서 멀찍이 떨어진다. 그렇게 영화는 뉴욕을 벗어나지 못하는 초라한 사람들을 사프디 형제만의 공식 아래에 둔다. 사프디 형제는 매 작품마다 뉴욕을 벗어나지 못하는 이들에게 심심한 위로를 건네기는 하지만, 결국 약자들을 향한 진실된 연민에는 크게 관심이 없을지도 모른다. 작가의 자전적 경험, 재치 있는 일렉트로닉 사운드 디자인, 각종 연출 기법을 바탕으로 또 다른 사실성을 획득한 사프디 형제의 뉴욕에서는 코니를 비롯한 여러 인물들 또한 작가의 욕심에 희생될 운명을 지녔다.
영화는 코니의 얼굴을 시종 타이트하게 몰아붙이다가 그가 경찰에 붙잡히는 비극적인 순간은 멀리서 부감으로 담아낸다. 감독은 코니의 비극적인 상황에 연민 대신 냉소를 날린다. 사프디 형제는 전작들에서 그랬듯 인물에게 영화적 일탈을 허용하는 듯 보이지만, 결국은 냉혹한 현실만이 이들을 기다릴 뿐이다. 아니 어쩌면 이번엔 그 파국으로 코니가 직접 걸어들어가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코니의 선택은 스스로를 점점 코너로 몰아갔다. 동시에 그 선택들과 맞물린 주변인들을 같이 무너뜨렸다. 연쇄 작용으로 벌어지는 뉴욕의 비극은 코니 개인의 문제만은 아니다.
작중 코니의 행적이 닉의 환상이라고 보는 사람도 있다는 점이 이 영화를 더욱 흥미롭게 만들기도 한다. 나는 코니가 실제로 닉을 위해 고군분투했든 환상 속에서 코니가 닉의 분화된 자아를 대리한 것처럼 표현됐든 두 관점 모두 존중한다. 그래서 현실이든 환상이든 닉과 코니 모두 그들이 탈출하려고 했던 뉴욕을 벗어날 수 없다는 사실이 더욱 씁쓸하게 느껴진다. 엔딩에서 닉은 치료 교육을 받는 '굿 타임'을 보낸다. 닉의 독립심을 키워 자립하게 만들고 싶었던 형 코니의 바람도 산산조각 나고, 자신을 옭아매는 치료 프로그램을 거부했던 닉도 결국 그 세계로 회귀한다.
사프디 형제는 전작들에서 뉴욕의 냉혹한 뒷골목을 무대로 이야기를 풀어냈다. 그들이 <굿 타임> 제작 이전부터 <언컷 젬스>를 구상하고 있던 걸 생각해보면 이 작품 역시 작가의 세계관을 다듬고, 정제하고, 변주해서 풀어내는 작업의 연장이라고 봐야 한다. 하워드(아담 샌들러 분)는 <굿 타임>의 코니와 닉처럼, <헤븐 노우즈 왓>의 할리처럼 비극을 받아들여야만 한다.
한편 이 작품에서 발산하는 에너지가 전작들과 비교해서 결이 살짝 다르다고 느꼈던 이유는 하워드라는 인물 덕분이다. 앞서 언급한 할리, 코니와 닉은 그들을 옭아매는 세계를 벗어나지 못한 채 계속 살아가야만 한다. 사프디 형제의 뉴욕에는 미래를 향한 일말의 계획도 없이 현재 주어진 순간에만 충실한 보석상이 있다. 하워드는 거액의 베팅금을 따낸다. 복잡한 채무관계를 드디어 청산할 수 있고, 앞으로 모든 게 잘 해결될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을 것이다. 하지만 사프디 형제는 하워드에게 그 이후를 허락하지 않았다. 대장 내시경 결과에 이상이 없다는 소식에 안심하는 그는 총알 하나에 목숨을 잃었다. 사프디 형제는 잘 살아보겠다는 사람의 몸부림을 응원하는 듯싶더니 한순간에 가볍게 부정해서 쓰디쓴 허무감을 맛보게 한다.
그렇지만 영화는 하워드의 얼굴에 박힌 총알 자국을 블랙 오팔의 결정을 확대할 때와 똑같이 파고 들어간다. <헤븐 노우즈 왓>, <굿 타임> 등의 영화와 이 작품이 다른 지점은 바로 인물의 내면을 진짜로 들여다보려는 시도가 존재한다는 점이다. 전작들에선 사프디 형제가 클로즈업으로 잡아낸 인물들의 얼굴이 냉정한 뉴욕의 이면, 현실적인 요소들과 대치되면서 세계와 개체의 관계가 효과적으로 표현됐다. <언컷 젬스>에선 보석의 결정과 하워드 얼굴의 총알 자국을 의도적으로 줌 인(zoom-in)한다. 어쩌면 보석 속에 펼쳐진 환상적인 영역은 하워드의 내면으로 치환될 수 있을 것이다. 겉으로 보기엔 빚을 돌려 막기 하고 인생을 도박에 걸다가 파국을 맞은 불쌍한 남자의 서사가 있지만, 그 속을 들여다보면 그 남자를 지탱하는 원동력을 느낄 수 있는 것이다. 이는 아무도 몰라주지만 관객만은 그러한 하워드의 감춰진 모습을 알아달라는 사프디 형제의 부탁일지도 모른다.
에놀라(밀리 바비 브라운 분)는 시작부터 관객에게 말을 건넨다. 카메라를 똑바로 쳐다보며 관객에게 동의를 구하듯 눈빛을 보내는 경우도 많고, 관객을 향해 질문을 던지기도 한다. 이를 통해 관객은 에놀라와 같은 시공간을 공유하는 듯한 착각에 빠져 극의 호흡을 더욱 잘 따라가게 될 수도 있고, 에놀라가 말을 걸 때마다 몰입도가 깨져서 감상에 방해를 받을 수도 있다. 1800년대를 다루는 시대극에서 과감히 제4의 벽을 부수려는 시도 자체는 참신하다고 보지만 조금 과하지 않았나 싶다. 물론 에놀라 역을 맡은 밀리 바비 브라운의 캐릭터 소화력과 퍼포먼스가 뛰어났기 때문에 이런 연출 방식의 부정적인 면을 어느 정도 상쇄할 수 있었다고 본다.
영화의 메시지는 인물 관계 분포, 대사 등을 통해 직관적으로 인지할 수 있는 선에서 비교적 뚜렷하게 드러난다. 극을 이끌어가는 중심인물이 사회와 많이 부딪혀보지 않은 소년들이기 때문에 메시지의 무게감은 다소 현실감이 떨어지는 경쾌한 에너지에 가려지는 느낌이다. 최근 영화로 비교해 보자면, 이 영화는 그레타 거윅의 <작은 아씨들, 2019>처럼 균형을 잡는 작품이 아니다. 상당히 단순하고 직선적으로 접근한다. 여권 신장에 관한 이슈는, 특히 이 영화처럼 역사적 맥락에서 짚어보는 경우라면 당대 상황을 충분히 고려하는 과정이 반드시 동반되어야 한다. 하지만 이 영화는 현대적 시각을 기반으로 과감하게 제시하고 풀어냈다. 에놀라의 모험, 성장 서사가 이런 맹점을 희석하려는 듯이 느껴진다.
영화는 다양성을 인정하지 않는 사회 속에서 서서히 고립되는 개인의 이야기를 담았다. 토드 헤인즈는 이 작품에서 멜로 영화의 거장 더글러스 서크의 감각을 고전미 가득한 미장센을 앞세워 충실히 살려내면서 한편으로는 인종 차별이 만연해 있고 다른 성적 취향을 용납하지 않는 당시 사회의 공기를 냉정하게 진단하고자 한다. 영화의 주제 의식은 매혹적인 영상미와 멜로의 질감 덕분인지 겉으로 보기엔 다소 부드럽게 느껴진다. 하지만 살짝 어긋나기 시작하는 순간부터 영화는 그로부터 피어나는 불안과 혼돈을 계속해서 확장해 나간다. 인물들의 말과 행동들, 카메라의 시선이 섬세하게 겹겹이 쌓여가면서 인물들을 천국으로부터 멀리 떨어뜨려 놓는다. 쇼트 하나하나마다 그냥 지나칠 수 없을 정도로 짜임새가 만족스러운 작품이다.
몽환적인 음악과 섬세한 색채 배치가 감정과 맞닿으면서 만들어내는 정서적 몰입만이 영화를 지탱한다. 없던 감정이 생겨나고, 새로운 감정에 적응하는 과정이 아름답게 표현된다. 영화를 감상하는 동안에는 감정의 소용돌이에 몸을 맡길 수 있다. 영화가 끝나면 짙은 여운 대신 공허한 의문이 드는 건 어쩔 수 없다. 만족하기에는 거슬리는 요소가 꽤나 있는 작품이지만 색을 활용하는 방법과 미장센에 관해서는 여러 관점에서 짚고 넘어갈 수 있는 특색 있는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사진 출처
- 네이버 영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