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 영화

2020.10.16-2020.10.22

by 드플레

최근 개봉한 <소리도 없이>, <프록시마 프로젝트>에 관한 코멘트가 있으니 유의하시기 바랍니다. 영화 내용이 일부 담겨 있습니다.



<하늘을 걷는 남자> (로버트 저메키스, 2015)


필립(조셉 고든-레빗 분)은 평소 줄을 탈 때 공연 의상으로 터틀넥을 입는다. 그런데 무역 타워를 건너려고 옷을 갈아입을 때 의상을 잃어버린 걸 알게 된다. 절망하던 필립은 어쩔 수 없이 옷을 그대로 입고 줄을 타기로 한다. 이는 그의 줄타기가 의상을 차려입은 줄타기꾼의 공연이 아닌, 꿈을 위해 모든 걸 바친 한 남자의 소망이라는 걸 강조하려는 장치일지도 모른다. 그는 줄에 첫발을 내디딜 때, 오로지 자신과 줄만 존재하는 것 같다고 느낀다. 줄을 건너다 문득 케이블과 빌딩에게 진심 어린 인사를 건네는 필립의 모습에선 내면의 소리에 충실한 한 예술가의 진정한 헌신이 포착되기도 한다.


<하늘을 걷는 남자> 스틸컷


<프록시마 프로젝트> (앨리스 위노커, 2019)


영화는 우주비행사를 꿈꾸는 사람이자 한 아이의 엄마인 사라(에바 그린 분)의 이야기를 다룬다. 우주를 소재로 한 영화지만 감독은 사라가 우주에 가기 위해 준비하고 고뇌하는 과정까지만 담아내고 우주로 간 이후는 담아내지 않았다. 이 작품은 결국 사람에 관한 영화다. 관객은 사라와 딸의 사연에 집중하게 된다. 영화를 보고 짚고 넘어가고 싶은 부분이 생겼다. 사라를 통한 여성상 구현에 주목한다면 후반부 감독의 선택은 납득하기 어려워 보인다. 사라가 남성 중심의 관습을 타파하면서 역경을 딛고 꿈에 한 발씩 다가가는 영화인데, 그 선택은 과연 사라의 서사에서 어떤 역할을 부여받았는가. 안일한 판단이 거대한 우주 프로젝트를 순식간에 망쳐놓을 수도 있었다.


그런데 다른 관점에서 본다면, 그 선택은 필연적이어야만 했다. 영화에서 사라와 딸의 관계는 시작부터 끝까지 강조된다. 사라의 이야기도 중요하지만, 딸의 이야기도 중요하다. 엄마가 탄 우주선이 발사되길 기다리며 딸 스텔라(젤리 블랑 분)가 카운트다운을 하고, 마침내 우주선이 발사되는 장면을 떠올려 보자. 감독은 우주선이 발사되어 날아갈 때, 긴장과 설렘을 가득 품은 사라의 얼굴을 잡지 않았다. 그때 감독이 담아낸 건 발사 과정에 쓰이는 신호를 정확하게 입으로 따라 하고 있는 스텔라였다. 내가 스텔라였다면 누구보다도 소중한 엄마를 머나먼 우주로 떠나보내는 순간에 아마 펑펑 울었을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스텔라는 오히려 엄마의 꿈을 응원하듯 힘을 실어주는 기운을 뿜어낸다. 결국 엄마와 딸은 서로를 진정으로 이해하게 되면서 한 뼘 성장하게 된다.


딸의 입장에서 엄마를 이해하는 장면이 나왔다면, 엄마는 무엇을 했는가? 그에 대한 감독의 선택이 바로 후반부의 격리 시설 탈출 신이다. 엄마 사라는 어린 시절부터 꿈꿔왔던 순간을 눈앞에 둔 상황이었다. 다음 날이면 우주로 떠나야 한다. 하지만 엄마는 딸과 로켓을 보러 가기로 했던 약속을 지키지 못했다. 선택의 순간, 사라는 어렴풋이 느꼈을지도 모른다. 나의 꿈이 소중한 만큼, 딸에게 있어 소중한 것도 지켜주고 존중해 줄 필요가 있다고 말이다. 엄마도 딸을 이해하기로 마음먹고 과감히 결단을 내린 것이다. 그래서 나는 후반부 사라의 탈출은 관점에 따라 다른 의미를 가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어쩌면 이 작품에서 감독이 사라만의 이야기가 아니라 사라와 스텔라의 이야기를 풀어내고 싶었다면, 엄마가 위험을 감수하며 딸과의 약속을 지키고, 딸도 그런 엄마의 진심을 이해하고 엄마와 함께 호흡하고 응원하게 되는 후반부 전개의 마무리 과정은 꼭 필요했을 것이다.


<프록시마 프로젝트> 스틸컷


<브루클린> (존 크로울리, 2015)


이주 노동자가 느끼는 다채로운 감정들을 에일리스(시얼샤 로넌 분)를 통해 꼼꼼하게 풀어낸다. 미묘하게 결이 다른 감정선을 겹겹이 쌓아가며 유지하는 어려운 임무를 시얼샤 로넌이 훌륭하게 소화해낸다. 시대상이 물씬 느껴지는 배경, 미술 요소들도 영화를 돋보이게 만들어 준다. 다만 아일랜드로 잠시 돌아간 이후 전개되는 흐름에서 설정, 대사 등의 장치 몇 개로 인해 잘 유지해오던 일관성 있던 분위기가 다소 어그러지는 점이 아쉽다.


<브루클린> 스틸컷


<폴라> (요나스 오케르룬드, 2019)


영화를 지배하는 자극적인 색채는 목적 없이 점철될 뿐이다. 뮤직비디오 연출을 자주 맡았던 감독은 이 작품에서 그러한 자신의 스타일을 적극 반영하려고 했다. 막상 결과물을 보면 영화적 요소들과 감독의 개성이 잘 어우러지는 느낌이 거의 들지 않아서 아쉽다. 섹스와 폭력 등의 적나라한 묘사, 자극적인 소재 등은 무엇을 위해 투입된 것인가. 덩컨 비즐라(매즈 미켈슨 분)는 다양한 킬러 캐릭터(존 윅, 히트맨 등)를 반영한 존재처럼 보인다. 원작 그래픽 노블에서 따온 특성, 감독이 부여한 설정보단 매즈 미켈슨이 지닌 특유의 카리스마가 캐릭터의 생명력을 겨우 유지한다.


<폴라> 스틸컷


<델타 보이즈> (고봉수, 2016)


꽤 많은 사람들이 어렸을 적 반짝이던 꿈을 묻어둔 채 열정이 식어버린 삶을 묵묵히 견뎌낸다. 그저 관성만이 존재하는 삶이다. 생계를 이어가고, 인간관계 속에 녹아들어야만 하고 내게 주어진 자리를 토 달지 않고 지켜야 한다. 영화 <델타 보이즈>는 얼핏 보면 꿈꾸는 자들의 좌충우돌 도전극이지만, 내 생각엔 단순히 한 마디로 정리할 수 있는 작품은 아니다. 시나리오 없이 경험을 살려 연기하는 배우들의 대사와 행동에 몰입하다 보면 어느새 따스함과 씁쓸함이 공존하는 묘한 매력을 느끼게 된다.


사실 이 영화는 원대한 꿈쟁이들의 이야기를 다루지 않는다. 재능을 묵혀둔 원석 같은 존재들의 성공기는 더더욱 아니다. 당신이 만약 모나고 부족해도, 실패로 가득해 보여도 그에 굴하지 않고 용기와 열정을 잠시나마 불태울 수 있다면 이 영화가 건네는 응원과 위로가 달콤하게 느껴질지도 모른다. 그리고 짚고 넘어갈 수 있다. 내가 내린 선택들에 대해서 후회는 없는지, 자신감을 가질 수 있을지 말이다. 처한 상황에 마냥 안주하지 않겠다고 마음먹으면 어렴풋이 마음 한구석에서 삶의 원동력이 느껴질지도 모르는 법이다.


<델타 보이즈> 스틸컷


<소리도 없이> (홍의정, 2020)


영화는 시종 관습과 통념을 비틀어서 묘한 기운을 자아내는 데 집중한다. 감독은 사건을 매듭짓는 데는 크게 관심이 없고 기회가 날 때마다 슬쩍 일을 벌여놓는다. 그래서일까, 나는 다소 갑작스러운 결말에 잠시 당황했다. 인물 각자의 서사로 보자면 적절하게 마무리 지은 듯 보이나 영화 전반의 모양새는 매듭을 짓는다기보단 풀어헤치는 쪽에 가까웠다. 사회상 묘사가 동반된 블랙코미디와 미스터리가 중첩되는 범죄 스릴러 사이 그 어딘가에서 방황하는 듯 보인다.


관객은 태인(유아인 분)에게 얼마나 공감할 수 있는가? 영화는 초희(문승아 분)의 모습으로 끝내지 않고 태인에게 시선을 돌린다. 그렇게 기이하게 형성된 가족의 단란함을 강조라도 하듯 영화가 끝난다. 영화에 담긴 태인의 변모 과정은 유괴된 아이와 연대를 쌓아가며 일종의 내적 성장을 이루는 것으로 압축 가능한데, 그러한 태인에게서 나는 무엇을 느낄 수 있을까. 태인과 초희의 관계는 그 설정부터가 관습에서 살짝 벗어나 있다. 초희는 영악하고 어른의 세계를 이해하고 있는 존재인데, 이런 초희를 통해 태인이 점점 변화하게 되는 식으로 묘사가 된다. 초희의 이야기로 봐도 어딘가 성에 차지 않고 태인의 이야기로 봐도 개운하지가 않다. 감독의 의도가 불분명해지는 지점이 여럿 보인다.


한편 종종 예상을 뒤엎고 조소를 날리는 영화의 톤을 고려한다면, 이 영화는 섬뜩한 현실에 얽힌 인간상의 아이러니에 주목하려고 한 것처럼 느껴진다. 그런데 또 의문이 생긴다. 감독이 윤리 의식이 무뎌진 사회의 단면을 조명하여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지 어렴풋이 이해는 가지만, 찌르고 싶은 지점이 무엇인지는 와 닿지 않는다.


<소리도 없이> 스틸컷



사진 출처


- 네이버 영화

- IMDb



작가의 이전글주간 영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