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 영화
2020.10.30-2020.11.05
<그림자들> (존 카사베츠, 1958)
미국 독립영화의 존재감을 끌어올린 영화사적 성취보다도, 즉흥성을 잃지 않겠다는 감독의 의도가 스며든 영화 자체가 뿜어내는 기운이 훨씬 대단하게 느껴진다. 감독은 굳이 영화의 말미에 '당신이 방금 본 영화는 즉흥적으로 연출된 작품(improvisation)'이라는 멘트를 삽입했다. 이 즉흥성을 영화 내내 유지하는 주체는 영화 내적으로는 배우들, 외적으로는 재즈의 선율이다. 감독이 즉흥적으로 디렉팅을 하면, 그에 따라 배우들도 준비가 되지 않은 상태에서 즉석에서 퍼포먼스를 보여줘야 한다. 그 상황에서 배우들은 본인의 경험이나 평상시 느꼈던 일상적인 감정들에 기반한 연기를 펼칠 수밖에 없지 않았을까. 주요 인물들의 서사가 무심한 듯 교차되는데, 주·조연의 배역의 이름이 전부 본명이라는 점을 염두에 둔다면, 이 영화가 허구의 이야기를 구축하는 데는 크게 관심이 없다는 걸 깨닫게 된다.
<글로리아> (존 카사베츠, 1980)
감독은 고독한 중년 여성과 가족을 잃은 아이가 서로를 밀쳐내다가도 가까이하면서 만들어가는 관계 형성의 양태에 집중한다. 마지막에 감독이 허용한 새로운 가족의 탄생은 탈출구가 보이지 않는 답답한 현실에 대한 작은 몸부림으로 느껴졌다. 사실 개인적으로는 그런 감상적 순간이 달갑지는 않았지만 영화가 내내 그들의 유대감 구축에 주목했다는 걸 떠올린다면, 그들에게 작은 행복을 선사할 명분은 있지 않을까. 뉴욕 브롱스에서 시작된 서사가 방황 끝에 피츠버그에서 완결 났다는 점도 흥미를 끈다. 이야기가 뉴욕에서 끝났다면 결말도 달라져야만 할 것 같은 느낌이 강하게 든다. 감독이 담아낸 뉴욕은 적어도 화려하고 안락한 뉴욕은 아니니까 말이다.
P.S. 이 영화는 <레옹>(1994)에 분명 큰 영향을 미쳤다.
<무뢰한> (오승욱, 2014)
부유하는 감정의 파편들을 맥없이 응시하는 김남길의 연기와, 소용돌이치는 감정의 덩어리들을 보란 듯이 주무르는 전도연의 연기가 미묘하게 서로의 거리를 조절한다. 김남길 배우가 맡은 역은 극 중 표현된 대로만 보면, 설정대로 구현하기 꽤나 힘겨워 보인다. 인물의 감정선에 몰입하기 힘든 몇몇 지점이 남기는 의문은 누아르의 질감을 시종 고수하는 영화의 뚝심에 슬그머니 뭉그러진다.
<중경> (장률, 2007)
중경 토박이인 쑤이(궈커이 분)는 자신의 고향을 겉돌기만 한다. 중경 출신이 아닌 사람들은 그녀가 견뎌내지 못하고 튕겨나간 빈자리를 손쉽게 차지하는 듯 보인다. 노숙자가 기타를 치며 부르는 노래도, 노인이 틈만 나면 흥얼대는 가락도 중경이라는 공간에 잘 스며드는 걸 보면 어쩌면 중경은 처음부터 방랑자와 이방인들을 위한 공간이 아닐까. 어째서 쑤이는 중경에서 그토록 무력하고 고독한 존재가 될 수밖에 없었을까. 사회적인 관계를 이어나가는 데 있어 번번이 좌절하는 쑤이는 인간 내면의 바닥을 파고들어 육체적 쾌락을 매개로 중경에 녹아들어보려 하지만, 어째 이 냉혹한 공간은 그마저도 허락하지 않는다. 그런 쑤이가 의지할 수 있는 유일한 존재는 산 사람이 아닌 죽은 어머니이다. 카메라는 영화 내내 끈질기게 인물이 떠난 자리를 응시하고, 내 가슴 한구석은 공허로 가득 찬다.
<길버트 그레이프> (라세 할스트룀, 1993)
영원히 변하지 않을 것만 같았던 시골 마을에는 대형 마트에 이어 패스트푸드 체인점이 들어선다. 길버트(조니 뎁 분)는 카버 씨의 아내와 자신의 관계가 카버 씨에게 들통났을까 노심초사하지만, 정작 보험사에서 일하는 카버 씨는 아무런 보험을 들지 않은 길버트를 잠재적 고객으로만 인식한 모양이다. 마을 사람들은 길버트의 어머니의 외양만 보고 흉을 보고 수군거리지만, 마을 사람들 중에 길버트네 가정사를 제대로 아는 이가 있는가? 세상 살이란 게 이렇다. 한 치 앞을 내다볼 수도 없고, 이리저리 굴려보지 않으면 오로지 하나의 면밖에 볼 수 없는 주사위와 같다.
길버트의 인생은 어쩌다 이 지경이 됐는가. 혈통과 고향에 얽매인 게 그의 책임일까, 가족의 책임일까. 아니 사실 이제 와서 그걸 저버리기엔 너무 늦어버린 건 아닌가? 어쩌면 그 누구에게도 책임을 물을 수 없지 않을까. 살다 보니 이렇게 됐는데 나보고 어쩌란 말이냐. 각자의 사연이 있고, 말 못 할 사정이 있는 법이다. 끝내 길버트가 숨통이 트이게 된 건 다행이지만, 그가 중압감에서 벗어날 수 있었던 계기를 본인이 만들지 않았다는 점이 여전히 마음 한구석을 먹먹하게 만든다. 어머니가 잘못되지 않았다면 길버트는 여전히 자신이 지탱해야 할 의무에 사로잡힌 인생을 살아갔을 것이다.
P.S. 극 중 길버트의 동생 역을 맡은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의 퍼포먼스가 인상적이다.
사진 출처
- 네이버 영화
- IMD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