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11.06-2020.11.12
그들의 사랑은 늘 흔적을 남기면서 기록된 기적이다. 불같았던 여름날의 사랑은 노아가 나지막이 읊는 휘트먼의 시에 실려가다가 쌓여버린 편지에 가로막히기도 했지만 끝내 두 사람의 기적을 위해 두툼한 노트북 안에 고스란히 담기고야 만다. 영화는 노아의 한결같은 사랑을 시와 편지로, 그에 대한 앨리의 대답을 한 권의 에세이로 엮어서 관객에게 전달한다. 라이언 고슬링과 레이첼 맥아담스 간의 환상적인 호흡이 영화의 단점을 상쇄하고도 남는 묘한 인상을 심어준다.
반복되는 무료한 일상에 질려버린 남자는 불안한 호기심을 떨쳐내지 못한다. 뜻하지 않은 일탈의 늪으로 빨려 들어가는 남자는 방황과 혼돈의 소용돌이 속에서 점점 고립될 뿐이다. 사프디 형제가 <굿타임 Good Time>(2017)을 만들며 참고했을 법한 지점들이 여럿 보이기도 한다. 남자는 우여곡절 끝에 일상으로 복귀하는데, 그렇다면 도무지 상식적으로 받아들일 수 없던 한밤의 촌극은 남자에게 있어 일종의 경고와도 같은 건 아닐까. 괜한 생각 말고 기계처럼 일하고 평소같이 살라고 말이다. 일에 찌들어 살다가 모처럼 기분 전환하려는 사람을 이리도 뒤흔들어 놓을 줄은 몰랐다. 마틴 스콜세지는 이런 소재로도 현대 사회의 단면을 들춰낸다. 마지막에 카메라는 일상의 소중함을 느껴보라는 듯 사무실을 구석구석 헤집는데, 이 시선이 나에겐 참으로 잔인하게 다가왔다. 간밤의 소동이 남긴 상흔은 흔적조차 없이 사라져버리고 남은 건 여전히 반복될 하루가 아닌가.
시간대를 교차하며 서서히 드러나는 인과 관계는 붉은빛의 미장센과 함께 어우러지며 섬뜩한 인상을 풍긴다. 영화는 엄마의 잘못된 육아 방식, 케빈의 성장 과정과 기행, 아빠의 무관심 등을 묘사하기만 하지 그것들에 관한 부연 설명을 거들지 않는다. 정작 주목하는 건 아들 케빈과 엄마 에바 사이에서 포착 가능한 성질들이다. 괴물로 자라난 케빈을 두고 온전히 에바의 책임으로만 돌릴 수 있는가? 자신이 손쓸 수 없다고 생각한 나머지 목이 터져라 울어대는 아이를 공사장 한복판에 방치한 에바의 행동은 옳은가? 마지막 에즈라 밀러의 탁월한 표정 연기가 기억에 남는다. 시작부터 단추를 잘못 끼운 엄마와 아들은 결국 끝장을 보고서야 서로를 받아들이기라도 한 걸까.
그때는 여러 빛깔의 순수한 사랑으로 우리만의 세상을 물들이고는 했다. 여전히 기억은 손끝에 닿을 듯 선명하지만, 이젠 더 이상 마음대로 색을 물들일 마음이 남지 않았다. 컬러풀한 과거와 무채색의 현재가 기억을 따라 교차된다. 그 시절은 마냥 행복하고 아름다운 순간들로만 채워져 있지 않았다. 기쁠 때도, 슬플 때도, 화가 치밀어 오를 때도 있었다. 언제나 서로에게 진심이었고, 흘러가는 순간을 붙잡아 마음에 오롯이 품으려 했기에 그 시절이 색을 잃지 않을 수 있었다. 남자의 게임에서처럼, 이언이 켈리를 못 찾으면 세상이 무채색으로 변한다. 형형색색의 과거와 흑백의 현재의 대비는 불연속적인 시간의 경과처럼 멀어진 마음의 격차를 효과적으로 드러낸다. 서서히 색을 잃어가는 모습 대신 한순간에 색을 잃어버리고 멀어진 서로의 공허한 마음만이 남았다. 다시 색이 물들어가는 세상에서 카메라는 얕은 심도로 배경을 흐리게 하고 두 사람만을 담는다. 멀리 떨어져 있지만, 마음만은 다시 가까워진 걸까.
사진출처
- 네이버 영화
- IMD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