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 영화
2020.11.13-2020.11.19
<얼굴들(Faces)> (존 카사베츠, 1968)
카메라는 극단적인 클로즈업으로 떠도는 얼굴들 사이를 유영한다. 얼핏 느끼기엔 복잡한 감정들의 섬세한 변화를 잡아내기 위해 과도한 클로즈업을 사용하는 듯 보일 수 있겠다. 하지만, 이 영화에서는 얼굴로 가득 찬 화면 영역이 끊임없이 감상자가 화면 바깥을 의식하도록 만든다는 점이 상당히 독특하다. 카사베츠는 <그림자들 Shadows>(1959)에서 즉흥적인 연출을 그렇게나 강조했는데, 이번에는 작정하고 정교하게 설계한 듯 보인다. 어떤 방식이든 하고 싶은 말을 매력적으로 재단하여 관객에게 전달하는 솜씨가 정말 놀랍다.
P.S 컬러로 복원할 필요가 전혀 없는 영화다.
<레이버 데이(Labor Day)> (제이슨 라이트만, 2013)
아델(케이트 윈슬렛)은 프랭크(조쉬 브롤린)를 향해 꽁꽁 숨겨두었던 속내를 털어놓는다. 프랭크는 그런 아델을 온전히 수용한다.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만난 지 며칠 지나지 않은 남녀는 서로가 평생을 함께할 수 있다는 믿음을 갖게 된다. 캐나다로의 탈주 계획은 아들의 실수 덕분에 틀어진 게 아니다. 어쩌면 이미 실패가 예견되어 있었다. 프랭크가 기나긴 옥살이 끝에 아델과 재회하는 순간은 그래서 더욱 애틋하다.
한편 이 영화는 서사 체계를 구성하는 요소들이 서로 조화를 이루지 않는다. 프랭크의 과거를 표현하는 플래시백 장면들과 서사 흐름 속 메인 플롯 간의 조합은 인상을 주는 데 실패한다. 아델의 아들 헨리(게틀린 그리피스)의 시점에 집중하여 성장 서사를 그려내려는 감독의 의도가 어렴풋이 느껴지기는 하나 편집 등의 형식적 기법이 이러한 감독의 의도를 뒷받침하기 위해서 존재하는지 의문이 들었다. 영화에서 가장 마음에 들었던 건 베테랑 배우인 조쉬 브롤린, 케이트 윈슬렛 간의 호흡이었다.
<웰컴 투 뉴욕(Welcome to New York)> (아벨 페라라, 2014)
이 영화는 IMF 총재를 지냈던 프랑스의 정치인 도미니크 스트로스칸의 성폭행 사건을 재구성했다. 나는 관련 당사자들이 아니라서 완벽한 진실을 알 수 없으므로, 영화 내적 텍스트에만 집중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영화 내내 성적 욕구를 통제하지 못하는 섹스 중독자 데보라(제라르 드빠르디유)의 추한 본성이 낱낱이 드러난다. 영화의 목표는 간단해 보인다. 데보라의 모순과 이중성, 그가 숨기고 있던 추악한 면들을 빠짐없이 파헤쳐서 고발하는 것이다. 아벨 페라라는 이 영화에서 독특한 미장센을 드러내지도 않고, 과감한 편집 기법도 사용하지 않으며 촬영 시에도 카메라의 움직임을 최소화한다. 영화에서 묘사된 데보라의 본모습이 현실과 연계되어 있다는 암시를 강하게 드러내듯, 마지막 쇼트에서는 데보라가 카메라를 응시한다.
<웰컴 투 뉴욕(Welcome to New York)> (아벨 페라라, 2014) <문라이트(Moonlight)> (배리 젠킨스, 2016)
후안(마허샬라 알리)은 어린 샤이론이 입을 꾹 닫고 있어도, 의사 표현을 하지 않아도 다그치거나 불편한 기색을 드러내지 않는다. 후안은 자신의 엄마에게 마약을 팔았냐는 샤이론의 물음에 말없이 고개를 숙이며 복잡한 심경을 드러낸다. 후안은 샤이론을 보며 자신의 어린 시절을 떠올렸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샤이론이 자신과 같은 시행착오를 거치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이 컸을 것이다.
세 개의 챕터로 나뉜 플롯은 각각 샤이론의 자아 형성에 있어 주요한 변화를 겪는 지점에 집중한다. 감독은 챕터마다 필요한 사건들만 제시한다. 시공간적 배경과 미장센, 음악 등 형식적 요소들도 나열되는 사건들과 맞물려 들어가면서 서사 구조를 매력적으로 꾸며낸다.
영화는 대상을 한 가지 기준으로 규정할 수 없다는 견해를 끊임없이 드러낸다. 더불어서 후안과 케빈을 통해 진정한 '나'를 찾아가는 과정에 대해 고찰하게 만드는데, 블랙으로서의 샤이론은 한편으로는 용기를 내어 속내를 드러내는 사람이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상처와 트라우마 속에서 헤매다 만족스러운 탈출구를 찾지 못해 위안을 삼을만한 도피 공간으로 잠적해버리는 존재이기도 하다.
후안은 샤이론에게 수영을 통해 세상을 헤쳐나가는 법을 알려줬고, '달빛을 받는 블루' 이야기를 하며 스스로 어떤 존재가 될지 결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리틀에서 블랙이 된 샤이론은 후안처럼 검은 비니를 쓴 마약상이 되기로 결정했고, 엄마와 진솔한 이야기를 나눴고, 케빈에게 속내를 토로했다. 그러한 선택이 과연 샤이론의 인생에 있어 어떤 의미로 규정될 것인가. 아니, 영화가 주장하는 바를 다시 떠올려본다면 규정하는 건 크게 의미가 없을 지도 모른다.
사진 출처
- 네이버 영화
- IMD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