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12.11-2020.12.17
스콧의 전작과 미묘하게 다른 빌뇌브 특유의 미장센은 시각적인 쾌감을 선사한다. 초반부 K(라이언 고슬링)과 사퍼(데이브 바티스타)가 있는 공간에선 빛을 절제하다가도, 월레스(자레드 레토)의 회사 내부엔 다채로운 빛의 향연이 펼쳐진다. K와 인공지능 조이(아나 디 아르마스)의 관계를 살펴보는 작업도 영화를 흥미롭게 감상할 수 있는 지점 중 하나이다. 전작이 질문을 던지는 영화였다면, 이 영화는 전작의 문제의식을 통해 분명한 의견을 제시하는 작품이다.
한편 전작에 비해 서사적인 설정이 다소 퇴보한 듯 보여서 아쉽다. 포스트휴머니즘의 관점에서, <블레이드 러너>는 데커드(해리슨 포드)를 통해 기존 인간 중심적 사고를 탈피하려는 양상을 보였다. 하지만 K의 행동은 결국 이분화가 정립된 세계의 논리에 균열을 내려는 의도에서 비롯된 행동이 아니었다. 그리고 그의 행위를 통해 데커드가 딸을 만나고 태어난 레플리컨트가 보호받게 됨으로써, 휴머니즘의 재생산이 이루어진다. 레플리컨트가 인간을 완벽히 대체하며 인간 중심적 사고의 재정립으로 이어지는 것이다. 즉, 레플리컨트는 탈인본주의적인 존재들이 아닌, 인간을 대체하여 재인간화된 존재라는 말이다.
인류의 존속이 걸린 중대한 문제 앞에서, 영화는 필연적 논리에 따라 정해진 미래로 귀결되는 총체적인 전개 양상보다는 개체가 자신의 운명을 인식하고 수용하는 과정에 동반되는 순간적인 면모들에 집중하려고 한다. 몸이 두 동강난 터미네이터(아놀드 슈왈제너거)가 끈질기게 자신의 임무를 완수하려고 하자, 사라 코너(린다 해밀턴)는 그저 그 순간을 벗어나기 위해, 살아남기 위해 발버둥 친다. 인류의 미래를 위해 살아남아야 한다는 서사적 동기보다 생존을 위협받는 사람이 느끼는 원초적인 공포감이 극을 지배하면서 장르적 질감이 다변화된다는 점이 영화의 매력으로 느껴진다.
자신을 인간으로 여겨왔던 존재가 진실과 마주하면서 겪는 혼란은 적절하게 묘사가 되었는데, 특히 인간과 기계 사이에서의 감정 갈등을 오롯이 담아내려는 영화의 집중력은 인상적이다. 허나 존재적 탐구 및 감정적 고찰에 관한 극의 초중반의 흥미로운 전개는 갈수록 구심점을 찾지 못하고 방황하다가 매력을 잃어버리고 만다. 흡인력 있는 소재와 감성을 어루만지는 음악 등 좋은 요소들에도 불구하고 단점이 명확하게 보이는 아쉬운 작품이다.
표면적으로는 마법 학교끼리의 우열을 다투는 트라이위저드 대회에 참가하게 된 해리 포터의 여정을 다루고 있으나, 그 모든 여정의 이면에는 오로지 목적 달성만을 열망하는 볼드모트의 계략이 숨죽이며 도사리고 있었다. 다양한 에피소드와 스펙터클한 볼거리들이 극을 풍성하게 꾸며주긴 하지만, 정작 매력적으로 느껴지지 않는 이유는 아마 이 모든 요소들이 그저 빠듯한 러닝 타임 속에 억지로 나열된 듯한 인상을 풍기기 때문이 아닐까. 한편 볼드모트가 온전한 육체를 얻게 되면서 위압감 넘치게 등장하는 신은 확실히 인상적이다.
극의 플롯이 다소 산만하게 펼쳐지긴 해도 볼드모트의 정신적 지배를 벗어나려는 포터의 서사는 비교적 명확하게 주제 의식을 품고 있다. 해리가 정신적으로 변모를 겪는다는 점에서, 시리우스 블랙과 얽힌 에피소드가 중심을 이룬다는 점에서 3편과 비교할 수 있겠으나 3편처럼 간결하고 영리한 전략을 보여주지 못한다는 점이 아쉽다. 마법사들의 세계인 만큼, 이번 작품에선 후반부 마법부에서 불사조 기사단 단원들과 죽음을 먹는 자들 간의 마법 결투가 기억에 남는다. 빛과 어둠, 백색과 흑색의 형체들이 뒤엉키고, 지팡이에서 발사되는 형형색색의 마법들이 공존하는 양상이 화면에 매력적으로 담긴다.
고집스러울 정도로 일관된 잿빛의 화면 톤은 주요 인물의 죽음으로 귀결되는 비극적인 분위기를 충실히 보조한다. 7편에서 본격적으로 전환될 국면에 앞서, 추후 플롯 전개의 중요한 열쇠인 호크룩스를 소개하는 데 공을 들이지만, 정작 그 소개를 위해 영화의 정체성이 흐릿해진다. 청춘의 로맨스 요소는 시종 다운된 극 전반의 기조를 잠시나마 희석해주지만 가끔 과하다고 느껴지는 지점이 있다.
재치 있는 장면 전환, 효과적인 사운드 믹싱 및 삽입을 통해 만들어낸 서스펜스가 매력적인 영화다. 전형성과 서사적 한계를 뚜렷하게 안고 있음에도 그것들을 무마하기 위해 무리하지 않고 감독 특유의 접근법을 살려 극의 활력을 끊임없이 유지하는 점은 확실히 인상적이다. 다만 중반부 진실이 드러나는 상황 즈음부터, 숨가쁘게 조여오던 분위기가 다소 흐트러지는데, 차라리 진실을 한 겹씩 벗겨내며 드러내는 방식을 계속 유지했으면 어땠을까 싶다.
사진 출처
- 네이버 영화
- IMD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