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 영화

2020.12.25-2020.12.31

by 드플레

<쇼걸(Showgirls)> (폴 버호벤, 1995)


나체로 점철된 원초적인 이미지를 내세워 진실과 거짓, 위선과 진정성을 오가며 현란하게 양태를 바꾸는 인간상을 조명한다. 겉으로 보기엔 멀쩡한 쇼일지라도 이면에 있는 추악한 본성을 엿볼 수 있는 것처럼, 영화 전체가 하나의 아이러니적 표상으로 발현된다. 단순한 대립뿐만 아니라 다양한 인물 관계 양상이 담겨 있다. 노미(엘리자베스 버클리)에게 공동 안무를 제안한 제임스(글렌 플러머)는 진솔하게 마음을 털어놓지만 어째 갈수록 인생이 꼬여 가는 것 같고, 일과 학업을 병행하는 성실하고 인정 많은 몰리(지나 라베라)는 의도치 않게 끔찍한 범죄의 피해자가 된다. 감독은 노미의 분신과도 같은 크리스털(지나 거숀)과의 관계를 통해 노미의 서사적인 상징성을 강화한다. 숨기고 싶은 내면이 까발려지더라도 현재의 삶을 포기할 수 없기에 그녀는 절대 라스베이거스에서 벗어날 수 없다. 이중적 면모를 합리화하며 점점 새로운 세계에 적응해가는 노미에겐 포장된 거짓이 진실을 대신하는 라스베이거스라는 무대가 제격인 셈이다.


P.S. 여성 신체의 과도한 전시라는 이유로 이 영화를 폄하하는 의견이 있지만, 오히려 개인적으로 이 영화를 높게 평가하는 이유가 바로 이 낯뜨거울 정도로 가득 찬 나체의 자극적인 모습이 극의 주제와 아주 절묘하게 맞닿아 있는 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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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쇼걸(Showgirls)>



<원더 우먼 1984(Wonder Woman 1984)> (패티 젠킨스, 2020)


감독은 이 작품을 영웅 원더우먼의 이야기로 풀어내기 싫었던 모양이다. 플롯을 연결하는 중심 소재가 인간의 욕망이라는 점에서 이미 영화의 서사는 스펙터클한 영웅물의 외피를 벗어낸 채 다양한 담론을 품으려 한다. 갈등의 해결 과정 역시 초인적 존재의 능력에 의존하지 않고, 인간 각자의 개인적 차원에서의 성찰로 귀결된다. 좋은 시도임에는 분명하나 결정적으로 불필요한 쇼트가 종종 있었고, 극의 전개에 있어 분배적인 측면, 호흡 등이 일정하지 않았기 때문에 전체적으로는 아쉬움이 많이 남는다.


게다가 유독 이 작품에선 한스 짐머의 음악이 극과 조응하지 않는 인상을 받았다. 마치 '짐머의 음악이니 감동받을 준비하세요'라고 외친 다음 음악이 나오는 느낌이었다. 기시감도 조금 들었다. <씬 레드 라인>이나 <인셉션> 등에서의 기존 짐머의 음악과 비슷했던 탓일까.


P.S. 극장의 음향 송출 문제인지 영화 자체의 문제인지는 모르겠지만 후반부 중요 장면에서 믹싱 문제가 느껴졌다. 대사와 음악과 효과음이 조화를 이루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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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더 우먼 1984(Wonder Woman 1984)>



<반지의 제왕: 반지 원정대(The Lord of the Rings: The Fellowship of the Ring)> (피터 잭슨, 2001)


프로도는 하루아침에 세계의 운명을 짊어진 존재가 된다. 이때 영화는 혼란에 빠진 프로도의 고뇌를 다루면서도, 다양한 인물 군상을 통해 각자의 삶이 제시하는 논리들에 종속되거나 저항하는 저마다의 존재적 양상을 담아낸다. 주어진 삶을 향한 의문에 사로잡히는 대신 그 속에서 무엇을 해야 할지 생각하라는 간달프의 조언이 영화를 관통한다. 매력적인 판타지의 외연을 훌륭히 갖춘 데다가 다루는 제재가 서사와 유기적으로 호응한다는 점에서 이미 영화의 완성도는 보장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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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지의 제왕: 반지 원정대(The Lord of the Rings: The Fellowship of the Ring)>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2001: A Space Odyssey)> (스탠리 큐브릭, 1968)


감독의 고집스러운 야심과 확신이 느껴지는 영화의 설계가 인상적이다. 제목처럼 영화 전체가 하나의 서사시로서 느껴지기도 하고, 곳곳에 스며든 은유 및 각종 알레고리를 음미하는 재미도 충분히 보장된다. 서사적 요소가 상당량 배제되어, 마치 스토리텔링이 아닌 이미지텔링의 영역을 넘보는 독특한 매력을 지닌 작품이다. 이때 중요한 건, 감상자가 감독의 의도에 따라 배열된 시각 이미지들을 능동적으로 수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 영화는 그런 관점에서 보면, 다양한 담론 및 해석을 도출해낼 수 있는 확장성이 뛰어난 작품이라 할 수 있겠다. 또한 후반부의 몽타주처럼 제시되는 시각적 몰입을 유도하는 황홀경과 같은 구간이 여운을 많이 남긴다. 영화 전반에 걸친 미장센의 영역과 시각 효과의 구현에 있어서는 감히 그 독창성과 완성도 측면에서 도저히 흠잡을 수가 없는 걸작이다. 극장에서 보지 못해 정말 아쉽다. 68년에 개봉할 즈음 맞춰서 이 영화를 본 사람들은 정말 축복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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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2001: A Space Odyssey)>



<끝까지 간다> (김성훈, 2014)


관객의 심리를 구석으로 몰아세우는 전략을 유지하려는 뚝심이 잘 묻어난다. 다수의 클로즈업과 초점 변화, 음악의 섬세한 활용은 정석적으로 느껴지면서도 재치 있게 다가온다. 집중해야 할 요소를 명확히 파악한 뒤 강점을 부각하는 간결한 스릴러라는 점에서 군더더기 없이 깔끔하다. 다만 이러한 강점은 동시에 영화의 깊이를 제한하여 양날의 검으로 작용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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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까지 간다>



사진 출처


- 네이버 영화

- IM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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