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01.29-2021.02.04
도머(알 파치노)의 혼란스럽고 모호한 내면의 상태가 음향, 미장센, 촬영, 편집 등이 모두 어우러져 훌륭하게 전달된다. 그의 심리 묘사에 있어서 놀란이 설계한 방식은 충분히 만족스럽다. 백야 현상이 지속되는 알래스카라는 설정이 도머가 처한 상황, 그의 심리 변화와 잘 맞물리면서 유기적인 텐션을 만들어내는 점도 좋다. 잦은 플래시백의 활용이 호불호가 갈릴 수는 있겠지만, 이 작품에서는 불필요하게 배치된 것 같지 않았다. 잠에 들지 못해 괴로워하는 도머와 플래시백 쇼트들이 불규칙한 리듬으로 배열된다. 파편화된 이미지의 잔상, 적절한 음악, 알 파치노의 갈 곳 잃은 눈빛이 극의 모호한 분위기를 산발적으로 환기한다.
놀란은 플롯 게임에 집착하지 않아도 흡인력 있는 연출이 가능한 감독이다. 아이맥스 필름을 통해 정보량을 늘리고 감각적으로 수용하기 버거운 물리량(시간, 공간) 조작을 내세워, 관객이 극장에서 영화를 보는 행위에 새로운 기준을 부여하려는 그의 야망이 인상적으로 느껴지긴 하지만 <인썸니아>처럼 간결하게 심리 묘사에 집중하는 편도 충분히 매력이 있다.
줌렌즈의 활용, 핸드헬드 촬영이 빚어내는 운동감, 프레임에 인물을 가두는 다양한 방식 등을 조합해 영화의 텐션과 무드, 테마를 동시에 챙기는 점이 인상적이다. 인간의 생명마저도 돈벌이로 여기는 섬뜩한 인물인 브루노가 변화하는 과정 자체를 온전히 납득하기 어렵지만, 중요한 건 영화 속 인물들이 문제에 직면하고 그에 대처하는 양상들을 포착하는 것이다.
다르덴 형제의 영화를 전부 보진 않아 섣불리 단정 짓기는 어렵지만, 이들은 관객에게 질문을 던지면서도 분명한 메시지를 넌지시 드러낸다. 이들의 질문은 인간의 윤리 의식과 관련한 논의로 발전할 수 있으며, 동시에 사회 시스템에 속한 인간들의 고장난 삶에서 간과되었던 지점을 파헤쳐 드러낸다. 이들은 한결같이 묵직한 주제를 다루지만 그와 직결되는 휴머니즘 역시 필연적으로 따라오기에, 해체와 회복을 반복하는 인간관계 그 자체는 다르덴 형제에게 무엇보다도 중요한 영화적 소재가 아닐까.
출처가 기억나진 않지만, 사프디 형제가 다르덴 형제에게 영향을 많이 받았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사프디의 리얼리즘은 현실과 허구를 병치시켜 자신들이 묘사하는 세계를 현실의 재현으로만 그치지 않게 한다는 점에서 다르덴 형제와는 다른 독자적인 노선을 타는 듯하다. 다르덴 형제는 삶과 직결된 윤리 테마와 현실감을 극대화한 일상의 단면을 드러내는 데 집중하는데, 사프디 형제는 마냥 그렇지는 않다.
이 영화는 단순 종교적 차원의 이슬람에서 벗어난, 정치적 이데올로기의 사고를 가진 이슬람주의자를 중심인물로 삼는다. 흥미로운 건 이 자가 한창 성장기에 놓인 미성숙한 소년이라는 점이다. 소년과 주변 무슬림(선생님), 소년과 엄마, 소년과 사회 시스템(교정 시설, 더 나아가 서구의 개입) 등 다층적인 대립 관계가 묘사된다.
인상적인 엔딩에 함의된 바가 무엇인지 의문이 들기도 했다. 아메드가 소리를 내어 자신의 위치를 알리고, 선생님에게 용서를 구하는 순간에는 맹목적 신념이 배제된 본능적인 욕구 내지는 의도가 반영이 된 게 확실하지만, 과연 그것이 지속될 수 있는가를 따져보면 쉽게 단정 지을 수 없다. 그가 생존을 위협받는 극단적인 상황에 처했을 때에 이르러서야 변화의 가능성을 모색할 수 있다는 사실은 그 자체로 관계 개선 여부를 추적하기엔 비약이 다소 큰 접근이다.
그래서 극단성을 품은 자가 변화하여 통념화된 사회 구조에 편입될 수 있는 가능성과 희망을 논하기엔 다르덴 형제의 시선이 다소 회의적으로 느껴진다. 이걸 뒤집어 낙관적으로 바라보자면, 다르덴 형제가 드러내려 했던 건 변화를 향한 아주 희미한 가능성이라도 포착하여 긍정하고 싶은 마음일지도 모르겠다. 그렇다면 더 무서워질 법도 한데, 미성숙한 아이에게 마저도 희망을 찾기 힘들다는 사실은 스크린을 넘어 산재해 있는 현대의 집단적 갈등을 진하게 환기하기 때문이다.
관상쟁이는 앞날을 볼 수 없다는 임금의 주장에, 관상가가 즉각 반박하며 여러 단서를 조합하여 충분히 그 미래의 맥락마저도 읽어낼 수 있다고 말한다. 순간에 몰두하여 치열하게 살아가는 인생이 정해진 운명 속에서의 몸부림이라면, 도대체 우리는 왜 살아가야 하는가. 그건 바로 내경(송강호)이 어떻게든 역모를 막기 위해 수양대군(이정재)의 이마에 점을 박아 넣으려는 치열한 시도 그 자체에 있다. 귀결되는 양상보다 중요한 건, 순간을 견뎌내는 각자의 현존성이다. 인생을 전체적으로 조망하면 덧없을 가능성이 높겠지만, 죽어서도 흙으로 돌아갈 걸 알면서도 왜 그렇게 운명을 바꾸려고 하고 열심히 살아가려는 것인가. 의미를 어디에 두는지는 자신이 결정해야 한다.
P.S. 좋은 소재를 좋은 영화로 조각해내지 못한 작품이라고 생각된다. 굉장히 아쉽다.
사진 출처
- 네이버 영화
- IMDb
부족한 글이지만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의견이 있다면 댓글로 남겨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