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 영화

2021.02.05-2021.02.11

by 드플레

<해피 투게더 리마스터링(春光乍洩: Happy Together)> (왕가위, 1997)


서로 충돌하는 격정적인 감정들 사이로 느려지고 끊기는 듯한 화면 영역의 미묘한 변화가 피어난다. (조금 과장하면) 예측할 수없이 점프 컷 된 쇼트들은 타지에서 사랑과 향수, 고독을 머금은 그들의 혼란스러운 심리를 반영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영화적 요소들 간의 조합이 다소 생경하거나 어긋나는 것처럼 보이다가도 어느 순간 정신을 차려보면 왕가위 특유의 영상미와 음악이 자연스레 스며들어 근사하게 덧칠된 짙은 감성이 느껴진다.


음악에 관해 이야기를 안 할 수가 없다. 평소 탱고를 종종 듣는데, 마침 피아졸라의 음악이 흘러나와서 얼마나 설렜는지 모른다. 좋아하는 음악을 스크린의 배경음악으로 듣는 경험은 늘 새롭고 뜻깊은 순간이다. 반도네온의 음색은 그 자체로 애절하고도 깊게 맴도는 매혹적인 맛이 있다. 피아졸라의 탱고는 클래식과 재즈의 질감을 탱고와 결합해 만들어낸 '누에보 탱고'다. 'Por Una Cabeza'와 같은 곡과 비교하면 피아졸라의 탱고는 확실히 다른 감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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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피 투게더(春光乍洩)>



<소울(Soul)> (피트 닥터, 2020)


매번 알면서도 픽사의 교묘한 설계에 홀딱 속아넘어간다. 웬만해선 정서적으로 흔들리는 편이 아닌데, 감정이입하기 좋은 인물이 있어서 그랬는지 주책맞게도 영화를 보면서 눈물이 났다. 비록 연출 상의 상투적인 포인트가 종종 있었지만, 인생 전체를 가늠하고 재단하기보단 순간에 몰두하는 나 자신을 긍정하고자 하는 내 인생 가치관과 맞닿아 있는 지점이 꽤나 있었기에 참 인상 깊게 느껴진 작품이다. 이 작품은 맹목적으로 사소한 일상만을 예찬하지 않는 것 같다. 어떤 상황에 직면하든, 기쁘든 슬프든 화가 나든 허무하든 간에 그 순간을 버텨내는 자신을 스스로 직시할 수 있는가를 논하고 있다.


인간이 온전히 감각, 수용하기 어려운 형이상학적 세계를 재치 있게 구현하려는 시도가 참 흥미롭다. 이건 분명히 애니메이션이기 때문에 가능한 시도들이고, 실사 영화에서 아무리 특수 효과와 그래픽을 동원하더라도 넘보기 힘든 영역이다. 무아지경, 황홀경의 묘사도 묘한 매력이 있다. 경계를 해체하는 지점이 아닌가. 현실과 저 너머의 경계가 무너지는 영역이 서사적으로 유의미하게 기능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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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울(Soul)>



<스왈로우(Swallow)> (카를로 미라벨라 데이비스, 2019)


헌터(헤일리 베넷)는 종종 주변 인물들에 둘러싸인다. 어떤 쇼트가 기억에 남는다. 가운데 배치된 헌터는 양옆에 있는 남편과 시어머니로 인해 갇혀버린다. 헌터의 정면 방향에 있는 시아버지도 역시 헌터의 영역을 제한한다. 헌터의 불안하고 폐쇄적인 심적 상황이 관객에게 효과적으로 전이된다. 구슬, 고정 핀, 건전지 등의 피사체를 강박적으로 클로즈업하는 방식 또한 헌터의 이상 심리를 잘 반영하는 듯 보인다.


외롭게 프레임 안에 갇혀 방황하는 헌터가 마침내 프레임 바깥으로 유유히 빠져나간다. 이후 롱테이크로 길게 지속되는 엔딩 쇼트는 헌터가 겪은 아픔이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다는 암시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물론 그러한 사회적 시선을 환기하는 시도도 의미가 있겠지만, 내게 이 지점이 인상 깊게 다가왔던 이유는 카메라가 클로즈업 등으로 가둬왔던 헌터를 마침내 프레임에서 해방하여 그의 서사를 매듭짓는 과정을 시각적으로 아주 명료하게 드러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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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왈로우(Swallow)>



<클로즈 업(Nema-ye Nazdik)> (압바스 키아로스타미, 1990)


보고 나면 어안이 벙벙해지는 영화들이 있다. 이 작품도 그렇다. 현실과 영화 사이의 간극, 그 관계에 관한 논의가 이 영화 한 편만으로 가능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한다. 이 작품은 간략하게 보면 영화를 찍는 과정에 대한 영화다. 하지만 그리 간단하게 정리할 수 없다. 이 작품이 머금고 있는, 현실과 영화의 경계를 해체하려는 야심이 참 인상적이다. <클로즈 업> 속에서 촬영되는 영화는 어떻게 보면 영화 내에 개입한 매우 방대한 몽타주 내지는 이미지의 나열과도 같다. 그런데 영화 속에서 재판 과정을 영화로 찍는 상황에서 카메라나 장비가 등장하지 않기 때문에, 재판을 찍는 과정 자체를 곧 <클로즈 업>으로 치환할 수 있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게다가 실제 사건을 실제 연루자들이 배우로 등장해 연기한다는 사실이 이 영화를 더욱 매력적으로 만든다. 이쯤 되면 어디서부터 영화고 어디서부터 영화가 아닌지 구분하려는 시도가 무용하다고 느껴진다.


그렇다면 이 실험의 끝에는 무엇이 있는가? 재판 이후 실제 마흐말바프 감독이 사브지안과 만나 피해자의 집에 찾아가는 과정에서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확실한 건, 키아로스타미의 작품을 전부 찾아서 봐야겠다는 생각뿐이다. 사실 이란 영화 중에선 <씨민과 나데르의 별거> 이후 두 번째로 접한 작품인데, 이를 계기로 이란 영화에 대한 아주 큰 흥미가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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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로즈 업(Nema-ye Nazdik)>



<언노운 걸(La fille inconnue)> (장 피에르 다르덴, 뤽 다르덴, 2016)


제니(아델 에넬)는 죄의식에 사로잡혀 강박적으로 소녀의 신원을 알아내려 한다. 사실 이런 그녀의 행동이 처음엔 잘 와닿지 않았다. 제니의 마음이 편치 못한 건 이해하겠는데, 그녀의 죄책감이 그렇게나 클 수 있는지 살짝 의문이 들기도 했다. 어쩌면 내가 이미 타인의 사연에 신경 쓰지 않는 냉랭한 사람이 되어 버린 건 아닌가, 책임감이 결여된 사람이 되어 버린 건 아닌가 잠시 자문하기도 했다. 그렇게 제니를 따라 추리물 마냥 소녀의 정보를 차근차근 캐내는 과정을 살펴본다. 이 영화의 백미는 후반부에 압축적으로 제시되는 구간에 있다. 다르덴 형제는 장르 영화의 질감을 슬쩍 빌려 내내 의뭉스럽게 관객을 끌고 오다가 후반에 가서야 하고 싶은 말들을 쏟아낸다. 다만 나는 하고 싶은 말을 슬쩍 일부만 건네고 나머지 부분은 관객을 향한 질문으로 채우는 다르덴 형제가 조금 더 마음에 든다. 소재가 주는 울림이나 호소력과는 별개로, 이 영화에서 독특한 인상을 받지는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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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노운 걸(La fille inconnue)>



<로제타(Rosetta)> (장 피에르 다르덴, 뤽 다르덴, 1999)


다르덴 형제는 로제타의 삶을 평가하거나 기만하거나 동정하려 들지 않는다. 그저 그녀가 처한 현실을 따라가고, 관찰한다. 이 영화가 대단한 이유는, 단순히 황금종려상과 같은 영화사적인 성취 때문이 아니라 실제 벨기에에서 청년 실업자들을 위해 내세운 정책인 '로제타 플랜'과 맞닿아 있다는 데에 있을 것이다. 영화 속 미학적인 장치들이 로제타의 서사와 아주 긴밀하게 맞물리면서 극을 밀도 있게 완성한다. 시종 불안하게 흔들리는 핸드헬드로 타이트하게 로제타를 프레임 안에 가두면서 끊임없이 극적인 분위기를 만들어나간다. 특히 음향의 활용도 뛰어난 영화인데, 자동차의 소음 등이 로제타를 소외된 존재로 부각하는 점도 인상적이다. 살고 싶어도 마음대로 살 수가 없고, 죽고 싶어도 마음대로 죽을 수 없는 지옥도가 펼쳐진다. 다르덴 형제는 관객에게 많은 걸 요구하지 않는다. 이들을 향한 작은 관심이 필요하다는 주장을 역설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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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제타(Rosetta)>


사진 출처


- 네이버 영화

- IMDb




부족한 글이지만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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