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02.19-2021.02.25
솔직하게 털어놓자면, 트랜스젠더 여성 감독의 데뷔작이라는 정보를 사전에 접한 뒤 자연스레 편견 아닌 편견을 가진 채로 영화를 봤다. 나는 감독이 이 영화를 정체성과 맞닿은 소재들에 기반하여 만들었을 거라 멋대로 짐작하고, 영화가 그런 측면에서 정치성을 띠지 않을까 예상했다. 그런데 내가 생각하던 작품과는 다소 달라서 부끄러웠다. 주인공의 다층적인 매력이 잘 녹아있었고, 영화 속 이야기는 흥미로웠다. 음악의 적절한 배치나 피사체를 섬세하게 포착하는 지점 등의 매력 요소가 보이기도 했고, 영화를 DSLR 카메라(캐논 550D)로 찍었다는 사실도 꽤나 놀라웠다.
주인공 도나(빈센트 산도발)에게 부여된 설정이 영화를 이끄는 주동력원이다. 트랜스젠더 여성인 도나는 낮엔 선거 본부에서 일하고 밤엔 매춘업에 종사한다. 그녀는 과거를 묻어두고 한적한 시골 마을에 정착하려 하지만, 정작 도나가 깨닫게 되는 건 과거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냉혹한 사실이다. 도나는 페페 박사의 선거 운동 본부에서 일하는데, 페페는 부당한 방법을 동원하여 선거에서 승리하는 건 절대 용납하지 않는 청렴한 사람이다. 페페와 상대 진영 정치인이 자연스레 대립항을 이루고, 도나의 VIP 고객이 상대 진영의 정치인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는 점이 영화를 매력적으로 만든다. 이 작품은 철저하게 사회에 자연스레 녹아들지 못하는 타자의 선택과 고뇌를 통해 서서히 수면 위로 드러나는 전인류적인 윤리 테마를 다루고 있다. 여러 가능성을 염두에 둔 다소 모호한 결말도 기억에 남는다.
P.S. 산도발 감독의 장편 데뷔작인 이 영화는 감독이 성전환을 하기 전(빈센트 산도발일 때)에 제작됐다. 감독은 시네마테크 KOFA에서 마련한 관객과의 대화에서, 근래 들어 <세노리타> 속 자신을 볼 때 어딘가 다른 사람처럼 느껴진다고 했다. 최근 연출작인 <사랑의 언어>는 성전환 이후 내놓은 첫 작품이다. 두 영화를 비교하여 감상한다면 감독의 작품 세계를 폭넓게 이해할 수 있다.
전작과 비교하여 보면, 일본을 묘사하는 감독의 시선이 다소 달라졌다. 세상이 어떻게 되든 말든 더 이상 신경 쓰지 않고 너와 나의 행복만을 추구하겠다는 소년의 마음은 긍정하고 싶지만, 전달력이 떨어지는 영화의 서사 화법 때문에 아쉬움이 크게 남는다. 내레이션과 서정적인 음악이 남용되는 점이 영화의 전체적인 인상에 악영향을 끼친다. 감독의 시그니처 스타일을 살려 감각적으로 어필 가능한 장점을 부각하는 시도가, 찰나의 독특한 인상과는 별개로 알 수 없는 피로감을 선사하기도 한다.
영화의 시작에는 주체할 수없이 서로에게 빠져든 낯선 이(Stranger)들이, 끝에는 드러나선 안 될 진실을 목도하여 상처받은 영혼들이, 그 사이엔 각자의 방식으로 관념적인 사랑을 어떻게든 감각하고자 하는 처절한 몸부림이 있다. 서로가 열렬히 사랑할 땐 사랑을 확인하지 않는데, 관계가 무너지거나 종국에 다다르는 위태로운 순간이 오면 누군가는 사랑을 확인하고 싶어 한다. 아니, 감각하고 싶어 한다. <클로저>는 사랑에 빠진 연인들의 행복한 시간을 일부러 포착하지 않는다. 복잡하게 얽힌 네 남녀의 감정 난투극은 행복했던 순간을 의도적으로 잘라낸 의도된 편집 덕에 더욱 강력하게 존재감을 발산한다. 네 명의 배우가 빚어내는 극의 텐션이 영화를 지탱하다 못해 집어삼킨다.
어떻게 찍고, 어떻게 편집할 것인가? 영화에서 가장 중요한 문제일지도 모른다. <시민 케인>은 낭비되는 쇼트가 하나도 없는 영화다. 이 작품에 쓰인 모든 영화 기법이 기능적으로 상호작용한다. 한 사람의 일생을 재구성하는 방식도 군더더기 없이 깔끔하다. 조명이나 피사체의 배치 등 다양한 방법으로 케인의 고독감을 환기하는 연출도 마음에 든다. 역대 최고의 영화라는 찬사를 받을 만한 작품인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비판받을 만한 구석은 하나도 없어 보이는 영화다.
위트 넘치는 맹키위츠를 따라 그의 지난날을, 아니 1930년대의 할리우드를 되짚어본다. 당대 흑백영화를 의식한 고전미 넘치는 미장센은 핀처 특유의 센스 덕에 더욱 우아함을 뽐낸다. 혼란스러운 시대를 관통했던 맹크는 오르간 연주자의 원숭이였을 뿐이다. 비록 종국에는 자신의 처지를 돌아보는 초라한 원숭이만이 있을지라도, 그 원숭이가 몸부림치는 과정을 담아내려고 한 점은 이 영화의 매력 중 하나다. 다소 벅찬 정보량이 몰입도를 떨어뜨려 아쉬웠던 점만 빼면, 핀처의 연출 및 배우들의 호연 등 여러 만족스러운 요소가 배합된 작품이다.
영화는 이분법적 사고의 해체를 요구한다. 이는 인간-티나, 티나-보레, 보레-인간, 인간-트롤, 트롤-티나라는 대립과 층위 관계의 반복된 설정을 통해 이루어진다. 이분법의 해체 끝에는 티나 자신이 어떻게 살아갈 것인지에 관한 주체적 고뇌, 더 나아가 관객의 성찰이 있다. 이 영화는 관객에게 질문한다. 존재적 정체성과 결부된 윤리 문제를 아주 깊숙이 찌른다. 판타지는 현실의 단면을 반영한다는 점에서, 이 영화는 그 자체로 시작부터 굉장히 유리한 고지를 선점한 채 원하는 대로 관객을 흔들 수 있다.
다르덴 형제의 자신감이 아주 진하게 묻어난다. 전작들과 다르게 관조하지 않고, 음악을 배제하지 않더라도 관객들의 내면을 파고드는 영화를 만들 수 있다는 자신감 말이다. 질문보다는 주장에 가까운 영화다. 관찰보다는 개입이 두드러진다. 관계 회복과 존재의 구원에 관해 논했던 전작들은 마치 그 이후는 알아서 상상하라는 듯 툭 끊기며 끝이 난다. 그러나 이 영화는 소년이 프레임을 벗어나고 나서 그 이후까지 응시한다. 소년을 프레임에 가두며 끝내는 게 아니기 때문에, 다르덴 형제의 영화 중에서 가장 특정 방향으로의 논조가 살아 있는 작품이 아닐까 싶다(물론 아직 <아들>과 <프로메제>를 보지 않아 섣불리 예단할 수는 없다).
사진 출처
- 네이버 영화
- IMDb
- https://pinoyrebyu.wordpress.com/2011/11/16/senorita/
- https://yccfilmdesk.wordpress.com/tag/senorita-vincent-sandoval-review/
부족한 글이지만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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