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 영화

2021.03.12-2021.03.18

by 드플레

<아비정전(阿飛正傳: Days of Being Wild)> (왕가위, 1990)


프레임 속 프레임을 구획해서 인물의 심리를 환기하는 감독의 접근이 돋보인다. 정착하지 못하고 떠도는 삶을 포착하는 왕가위의 카메라는 마치 존 카사베츠의 시선과 그 뜻을 공유하는 것처럼 보인다. 왕가위 영화에서 경찰은 이 영화 말고도 <중경삼림>에서도 등장한다. 주로 자신의 담당 구역을 순찰하는 영화 속 인물은 어쩌면 과거와 현재 어딘가에 물들어 있는 각자의 사연 속에서 맴돌고 있는 건 아닐까. 그런 경찰은 마침내 선원이 되어 떠돌이 생활에 몸담는다. 여자와 어긋난 뒤 방황하는 삶을 선택하는 것인가. 방랑하는 선원은 또 다른 방랑자 아비를 만난다. 아비를 지탱하는 건 사랑이 지워진 자리를 파고드는 끝없는 공허함, 삶을 향한 알량한 냉소뿐이다. 순간을 강조하는 발 없는 새는 선원을 기억하지 못하지만 수리진과의 첫 만남을 기억하고 있다. 참으로 지리멸렬한 삶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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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비정전(阿飛正傳)>



<윌로 씨의 휴가(Les vacances de Monsieur Hulot)> (자크 타티, 1953)


휴양지의 무드를 환기하는 음악, 어딘가 느슨하게 커트되는 장면들, 슬랩스틱 유머의 중첩이 모여 영화의 여유로운 리듬을 만든다. 제법 길게 지속되는 각 쇼트마다 소소하게 장식된 요소들이 눈에 띈다. 게다가 이 작품은 사운드를 매우 영리하게 활용하는 영화다. 주로 쓰이는 트랙이 내재적/외재적 속성을 넘나들며 극의 분위기를 생동감 있게 이끌고, 다소 과장된 음향 효과 역시 주요 지점마다 극의 진행을 재치 있게 돕는다. 윌로 씨의 행위가 의도치 않은 균열을 만들어내는 순간을 오롯이 담아내는 이 영화의 낭만스러운 태도가 마음에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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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윌로 씨의 휴가(Les vacances de Monsieur Hulot)>



<추격자> (나홍진, 2007)


이 영화는 장르의 관습을 그대로 따르지 않는다. 끝내 잡힐 듯 잡히지 않는 지영민(하정우)을 추적하는 영화가 아니다. 관객은 지영민이 잡히고 난 뒤의 상황을 접한다. 나홍진은 단순한 범인 잡기보다는 정체불명의 악을 대면하는 인간의 무력함을 관객에게 전달하려 든다. 엄중호(김윤석)가 모르는 사실을, 그가 죽도록 매달려 찾아내는 정보들을 관객은 이미 알고 있는 상태로 그의 여정을 따라간다. 끝내 관객은 응징을 통한 카타르시스보다도 좌절과 무력감을 마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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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격자>



<그래비티(Gravity)> (알폰소 쿠아론, 2013)


프레임 내부의 피사체가 x, y, z 축을 모두 오가며 물리적인 공간감을 살려주기 때문에 관객은 생경한 우주공간을 더욱 효과적으로 실감할 수 있다. 영화 초반부의 10분이 훌쩍 넘는 유려한 롱테이크는 물론이고 시점을 오가면서 인물의 불안정한 내면을 환기하는 촬영 등이 영화의 몰입도를 한껏 강화한다. 사운드의 매력도 빼놓을 수 없다. 스톤 박사가 우주복을 벗고 몸을 웅크리거나 지구에 착륙해 물에서 나와 땅에 얼굴을 대고 있는 장면 등은 살짝 작위적(대놓고 은유적인..?)일 수는 있겠지만, 탄탄한 서사 화법으로 작용하여 이야기를 매력적으로 가꿔준다. 한편 개인적으로는 지구의 아닌강과 교신에 성공한 스톤이 넋이 나간 듯 개 짖는 소리를 따라 하는 신, 스톤이 코왈스키의 환영과 대화를 나누는 신이 기억에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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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비티(Gravity)>



이미지 출처: 네이버 영화, IM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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