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 영화

2021.03.19-2021.03.25

by 드플레

<항생제(Antiviral)> (브랜든 크로넨버그, 2012)


대중은 셀레브리티를 동경한다. 대상을 향한 동경은 개체마다 내재된 욕망에 따라 다양한 형태와 층위로 확장될 수 있다. 이때 소위 말하는 팬덤 문화는 자본주의와 긴밀하게 연결된다는 점도 지나칠 수 없다. 이 영화는 이러한 현실 요소를 반영하면서도 더욱 깊고 과감하게 세계관을 확장한다. 이 영화에서 특히나 흥미로운 점은 앞서 언급한 추상적인 심리 차원의 담론을 실물로 감각할 수 있는 가능한 바이러스, 세포 배양육, 피부 이식 등으로 구체화해서 극의 서사 구조에 반영한다는 점이다. 이 논의는 급기야 셀레브리티의 사후 세계와도 동화되고야 말겠다는 대중들이 존재할지도 모른다는 발칙한 가능성을 환기한다. 이때 자본은 그 지위를 더욱 공고히 하며 현대 사회의 최상위 가치 체계로서 자리매김한다.


연예인들이 앓았던 질병을 같이 앓으려 하고, 그들의 고통을 같이 누리고자 하는 대중의 뒤틀린 욕망은 그 자체로 병리적 사회 현상인가 아니면 개개인의 심리 차이에서 비롯된 특이 사례일 뿐인가. 이 영화에서는 그런 현상의 집단적 측면을 강조하는 듯 보였다. 결국 대상에서 대상으로 무언가 전이되는 것에 관한 영화다. 감각의 전이, 바이러스의 전이 그 어떤 것이든 말이다. 그런 점에서 영화 속 텔레비전의 뉴스 화면, 셀레브리티의 사진이나 대형 포스터 등 각종 매체는 무언가의 전이를 유도한다. 공유하고 소유하는 걸 넘어서 동화되려는 개체의 욕망이 그릇된 가치 체계 하에 어떻게 작동하는지 담겨 있는 영화가 아닐까 싶다. 워낙 품고 있는 텍스트가 많아서 묘하게 여러 번 보고 싶어지는 작품이다.


P.S.#1

사실 영화의 원제 'Antiviral'의 옳은 번역 표현은 '항생제'가 아니라 ''항바이러스제'가 아닐까 싶은데, 항바이러스제도 넓게 보면 항생제의 범주로 볼 수 있을 테니 괜히 예민하게 반응하지 말자...


P.S.#2

가만 생각해 보니 케일럽 랜드리 존스가 출연한 작품을 종종 접한 적이 있다. <헤븐 노우즈 왓>에서도 그는 비전문 배우들 틈에서 마냥 튀지 않으면서도 필요할 때마다 존재감을 슬쩍 흘리는 섬세한 연기를 보여줬다. <항생제>에서 그는 극을 집어삼키는 퍼포먼스를 보여준다. 단순히 병든 사람을 연기하는 느낌과 살짝 다르게, 그가 연기하는 시드는 육체나 심리 등의 복합 병증이 그 자체로 형상화된 기묘한 존재처럼 보인다.


P.S.#3

어쩌다 보니 크로넨버그 가의 아버지 영화보다 아들 영화를 먼저 접해버렸다. 아버지 데이비드 크로넨버그의 영화와 아들 브랜든의 영화를 비교하기엔, 내가 아버지 영화에 관해 아는 게 거의 없어서 조금 답답하다. 조만간 아버지 필모그래피를 훑어볼 듯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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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생제(Antiviral)>



<포제서(Possessor)> (브랜든 크로넨버그, 2020)


영화에서 감독이 선택한 전략이 마음에 든다. 영화가 포커싱한 측면은 개체의 심리 변화, 내면 묘사를 일관된 방식으로 담아내는 작업이다. 웅웅대는 전자음과 눈에 띄는 미장센, 자극적인 장면의 강조 등 덕분에 감각기관들이 쉴 틈이 없다. 아들 브랜든의 연출 스타일이 아버지의 영화를 닮았다는 의견이 많지만, 나는 거꾸로 아들 영화를 먼저 접했으니 비교는 생략한다.


이 영화는 진부한 소재를 채택했다. 직접적으로는 <공각기동대>, 간접적으로는 <인셉션>, <매트릭스> 등의 다양한 SF 영화/애니메이션이 이 영화의 근간을 이룬다. 주제적 측면에서 이 작품은 참신하거나 독특한 관점을 드러내지 않는다. 그렇다면 과연 이 영화에서 이런 질문이 성립하는가? 이를테면, "진짜 '나'는 누구인가?", "육체와 정신의 결합체라는 점만으로 나라는 존재를 정당화할 수 있는가?"와 같은 질문 말이다. 심지어 후자의 질문은 데카르트식 근대적 사고 기반의 철 지난 논의처럼 보이기도 한다. 영화는 결국 저런 질문에 답을 하려고 하지 않는다. 모종의 이유로 자아의 분화, 분열을 겪는 비정상적인 개체의 변화 속에서, 영화는 기존 자아의 존속/회복 혹은 새 자아로의 변화/대체 여부에 관해 심층적으로 고찰하지는 않는다. 단지 문제가 터져 나오는 지점들을 노려보고 파헤치려는 작업에만 몰두한다.


그래서 이 영화가 유의미한 지점이라면, 아마도 소재를 다루는 방식이나 소재가 극의 동력으로 작용하는 과정을 묘사하는 데에 있다고 본다. 특히나 두 자아 중 하나가 주도권을 빼앗으려는 신의 미장센이나 기법, 혼돈과 환각의 상태를 반영하는 이미지들이 기억에 남는다. 한편 여성 요원에게 뇌를 지배당한 남성 숙주라는 설정을 통해서는 단순히 육체-정신의 경계라는 존재적 자아의 문제를 넘어서는 일종의 젠더 담론을 생성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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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제서(Possessor)>



<잭 스나이더의 저스티스리그(Zack Snyder's Justice League)> (잭 스나이더, 2021)


4시간의 러닝타임을 고려했을 때 서사의 인과성/개연성에 관해 납득하는 건 그렇게 어렵지 않다. 시간이 많으니 구구절절 풀어서 설명하고 보완할 수 있다. 하지만 팀을 꾸려 위험에 처한 세계를 구하겠다는 브루스 웨인의 추동력은 미약하고, 그를 중심으로 모여드는 영웅들 각자의 서사는 개연적이긴 해도 끝내 밋밋하게 느껴진다. 이때 슈퍼 히어로 팀업 무비인 이 영화를 <어벤져스>(2012)와 비교하는 작업은 동일한 잣대를 적용하기 어렵다는 점에서 한계가 있지만, 개괄적인 특징을 살펴볼 수는 있겠다. <어벤져스>의 영웅들은 대체로 대의를 우선하지 않는다. 그러다 보니 최소한의 명분을 만들기 위한 장치를 심어서 서사의 굴곡을 조절한다. 닉 퓨리가 콜슨의 죽음을 동기부여로 활용하려는 행위가 이에 해당된다. <어벤져스>는 그런 점에서 개개인의 서사가 집단적 서사로 발전하는 과정을 나름의 당위성을 통해 구체화한다.


하지만 이 작품에서 영웅들은 <맨 오브 스틸>(2013)의 슈퍼맨이 그랬던 것처럼 평탄한 흐름 속에 지구를 지키는 이야기 속 도구로 소비된다. 초지구적 재난에 대응할 수 있는 존재는 이들뿐이다. 다른 서사적 상황이 가정되지 않는다. 실존적 고뇌나 갈등(아쿠아맨/사이보그의 정체성 갈등) 혹은 분열 상황(문제 해결 과정 속 전략 모색 등의 의견 충돌)이 존재는 하지만, 이 모든 과정이 개인에서 팀으로 거듭나는 팀업 무비로서의 장르적 동력을 형성하는 대신, 사건의 인과를 설명하려는 도구적인 성질만 띤다는 점이 영화의 명백한 한계로 작용한다. 팀으로 모여 싸울 때조차도, <어벤져스>는 롱테이크 시퀀스로 각 영웅의 캐릭터 조형적 특성 및 역할 배분 등을 효과적으로 집약해냈는데, 이 영화에선 어쩐지 각 멤버의 시너지가 유기적으로 혼합된다기보단 인위적으로 배열된다는 인상을 받았다. 물론 두 프랜차이즈 세계관이 채택한 전략이 다르다는 점에서, 이 작품에서 발견되는 약점들은 향후 영화를 통해서도 극복하기 어려워 보인다.


P.S. 스나이더만의 액션 신 연출(공간감, 슬로 모션 등)은 그 자체로 매력이 있지만, 시그니처 스타일을 극단으로 밀어붙인다는 점이 영화 전체를 매혹적으로 가공하는지는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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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잭 스나이더의 저스티스리그(Zack Snyder's Justice League)>



<미드나이트 스카이(The Midnight Sky)> (조지 클루니, 2020)


서사 구조를 풍성하게 만드는 여러 장치들이 각자의 존재감을 드러내기는 한다. 의도된 복선, 장르적 질감의 다변화(서스펜스 유도, 포스트 아포칼립스 설정, 로드 무비 형식의 변주 등), 유려한 영상미 등의 요소뿐 아니라 외적으로도 메시지가 주는 울림이나 사회 맥락과 이어지는 시선 등으로 볼 때 나름대로 의미가 있는 작품이다. 문제는 이러한 매력적인 장치들이 서로 시너지를 일으키지 못하고 호응에 실패하며, 좋은 인상을 남기지 못한다는 데 있다. 그러니까 영화가 전체적으로 산만한 느낌을 준다. 우주와 지구를 오가는 교차 편집된 플롯과 오거스틴의 내면을 묘사하는 플래시백 역시 영화의 형식적 구조에 딱 들어맞지 않는 묘한 어긋남이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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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드나이트 스카이(The Midnight Sky)>



이미지 출처: IM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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