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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ng in Houston Nov 04. 2020

렛 잇 슬로우 인 휴스턴!

굿바이 코로나! 헬로! 핼러윈 인 휴스턴 1.

굿바이 코로나! 헬로! 핼러윈 인 휴스턴 1.


다시 미국에 온 지 어언 9개월! 본의 아니게 코로나와 함께 미국에 온 셈이다. 코로나로 나뿐만 아니라 모두의 생활이 바뀌었고, 이젠 그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겠지만...


원래 우리의 계획은 이랬다.

카우보이의 고장 텍사스에 살게 되었으니 3월에는 로데오 행사에 가고, (남편의 거래처에서 로데오 공연 티켓을 줘서 꽤 좋은 자리에서 관람할 기회를 얻었다. 그래서 아마존에서 카우보이 모자도 사고 가죽조끼와 부츠도 사려고 장바구니에 담아 놨었다.)



5월에는 뉴욕에 있을 국제 도서전에 참가하고, (한국에서 출간한 책들을 발췌 번역하고, 나의 영문 포트폴리오도 남편이 만들어주던 중이었다.) 7월쯤에는 여름휴가로 라스베이거스를 거쳐서 그랜드 캐년도 가며 멋들어진 2020년 상반기를 즐길 예정이었다.


하지만 우리의 계획은 모두 취소되었다. 우리뿐만 아니라 전 세계 사람들의 계획이 모두 취소되고 서로의 안전을 위해 사회적 거리두기를 필수로 실천해야 할 코로나였다.


마스크가 품절 나고, 손 소독제로 두 손을 비벼 손을 소독해도, 사랑하는 가족이나 이웃을 코로나로 떠나보내야 하는 일들이 이어졌다. 함께 모여 기뻐하고, 축하하고, 위로하는 일상적인 일들이 중단된 코로나 시대.  


올해 2월 남편과 함께 살기 위해 한국에서 하던 일들을 정리하고, 만으로 2살이 되어가는 아이를 아기 띠에 안고 16시간 동안 비행기를 혼자 타고 태평양을 넘어올 때는 앞에 말한 계획들로 가슴이 벅차 있었다. 한국의 생활을 접어야 하는 아쉬움과 낯선 타국에서 앞으로 어떻게 적응해야 할지 갖는 두려움을 이기기 위한 일종의 보상 같은 계획들이 순식간에 무너졌다.


모두가 혼란과 혼돈의 시간을 보냈고 우리 가족도 예외는 아니었다. 아이가 다니던 어린이집 선생님이 코로나에 걸려, 아이도 코로나 검사를 받아야 했다.

남편은 나와 아이를 데리고 고속도로를 타고 여기저기 검사를 해줄 수 있는 병원을 찾아 운전을 했다. 한국이라면 전화 한 통, 인터넷 검색으로 나오는 정보들이 발품을 팔아 묻고 떠돌지 않으면 얻을 수 없었다. 한국은 어느 정도 방역 대책이나 대처령이 정리된 상태였지만 미국은 땅이 넓은 만큼 매뉴얼이 정리되는데 그만큼 더 시간이 필요했다. 검사 시약도 부족하고, 검사받는 곳도 명확하지 않았다. 다행히 텍사스 소아 전문병원 응급실에서 검사를 받을 수 있었다. 음성 판정을 받은 것도 아닌데 아이가 검사를 받을 수 있게 된 것만으로도 너무 감사했다.

코로나로 인해 가게가 문을 닫고, 급격한 실업률로 혹시나 있을 폭동에 대비하며 마트에서 총알과 우유 그리고 쌀이 동나는 그때 미국 텍사스에 키 작은 한인으로 있는 게 너무나 무서웠다. 사실 돌이켜 보면 아이가 코로나 검사를 받은 것 외에 큰일은 없었다. 그런데 그 기간 동안 혹시나 있을 위험에 집 문밖 세상을 두려워했던 것 같다.


그렇게 약 9개월간의 시간이 지나고, 재택근무를 하던 남편이 회사로 출근을 하고, 아이도 다시 오전에만 어린이집을 다니게 됐다. 한국에 있을 때는 “이게 뭐야”라는 문장도 말하고 빠르게 말을 배워가던 아이가 코로나로 집에만 있자 더 이상 말이 늘지 않았다. 오히려 퇴행했다는 말이 맞았다. 의성어만 내뱉으며 온 집안을 부수며 뛰어다니는 2살 난 아들을 고민 끝에 미국 교회 사립 유치원에 보내기로 했다. 한국 어린이 집은 잠정적으로 휴업 상태였고, 나는 이대로 가다간 멀쩡한 아이를 바보로 만들 것 같았다. 그리고 나도 많이 지친 상태였다. 향수병은 극에 달했고, 한국에서 하던 일이 그리워졌다. 하루에 세 시간, 아이를 집 앞에서 5분 거리에 있는 유치원에 보내고 잠도 자고, 집도 치우고, 밥도 먹었다. 그 세 시간이 얼마나 큰 휴식이 되었는지...


그러다 문득 주변 공기가 달라진 게 보였다. 살이 타들어갈 것 같은 휴스턴의 무더운 더위가 가고 오후 6시가 못되어 해가 지더니 상점에 호박이 진열되기 시작했다. 마스크와 장갑을 끼고 소독제로 범벅이 된 카트를 끌고 들어간 마트에서 요정 대모가 호박마차를 만들 때 쓴 거 같은 탐스러운 호박 주변에 허수아비 인형이 세워지더니 마침내 할로윈코스튬이 들어왔다.

유치원에서 집으로 돌아가던 길에 보던 집들의 풍경이 바뀌기 시작했다. 불을 뿜는 커다란 공룡과 죽음의 신이 탄 호박마차 조형물이 세워지고 해골과 무덤 장식이 집집마다 세워지더니 10월 중순이 되자 마을 전체가 핼러윈 테마 마을같이 변해 있었다.

일 년 가까이 집 밖을 나서길 두려워하던 사람들이 집을 꾸미고, 성난 얼굴로 마스크를 끼며 서로를 경계했던 사람들이 핼러윈 분장한 아이들을 위해 집 앞에 테이블을 펴고 캔디를 준비했다.


그렇게 조심스럽게 일상으로 돌아갈 준비를 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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