굿바이 코로나! 그리고 동짓날 같은 핼러윈!
마스크를 낀 사람의 얼굴도 다정한 표정을 지을 수 있다는 걸, 마트에서 호박을 고르는 할머니와 어린 손주를 보고 처음 알았다. 코로나가 시작하고 문밖, 우리가 만나는 사람들의 얼굴은 절반 이상 마스크에 덮인 얼굴이다. 마스크를 끼지 않은 사람을 보면 무섭고 불편하고 금방이라도 몸이 아플 것 같은 불안함이 몰려왔다. 반대로 마스크를 낀 사람을 보면 무표정, 아니 마치 내 눈앞에 있는 모든 세균을 간파해 내겠다는 눈빛이었다. 마스크를 끼던 끼지 않던 문밖에서 만나는 불특정 다수의 타인은 공포다.
그런데 마트에서 호박을 고르는 그들의 모습은 다정했다. 성인 남자의 두 팔을 크게 벌려야 들어갈 것은 커다란 호박부터 이제 걸음마를 시작한 아이의 한 손에 올라갈 정도의 작은 호박까지 다양한 호박을 보고 까르륵 웃으며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이 따뜻해 보였다.
리고 호박 파는 도구와 도안을 사서 마트를 나가는 모습을 보고, 그날 밤 퇴근한 남편과 두 살 난 아이와 함께 마트에 다시 왔다. 그리고 아이에게 호박을 보여주며 직접 고르게 했다. 올해 미국에 와서 처음으로 셋이서 마트에 온 날이기도 했다. 물론 호박만 고르고 냉큼 집으로 돌아가긴 했지만 말이다.
호박을 파서 안에 초를 넣어 등불을 만드는 걸 잭 오 랜턴(jack-o-lanten)이라고 한다. 아일랜드와 스코틀랜드에서는 순무로 등불을 만드는 전통이 있었다는데 미국에 와서 호박으로 바꿨다고 했다. 신데렐라의 요정 대모가 호박으로 마차를 만들어 줄 만큼 이 시기의 미국 호박은 정말 크고 탐스럽다. 잭 오 랜턴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민담이 전해져 내려오지만 나는 어두운 밤길 악마에게 도망치는 사람들을 위해 호박에 불을 넣고 길을 안내했던 잭의 이야기를 제일 좋아한다. 야경꾼으로 사람들에게 길을 안내하던 잭을 기념해야 한다고 남편에게 으름장을 놓으며 아이와 함께 잭 오 랜턴을 만들었다. 주로 아빠가 호박을 파고 조각을 하고, 아이는 옆에서 박수만 치고 나는 카메라만 들고 있었지만 셋이서 함께 식탁에 앉아 만들었으니 셋이 함께 만든 것으로 해야 한다는 말도 안 되는 궤변을 늘어놓으며 오랜만에 웃었다.
핼러원에 호박을 파고 집 앞을 꾸미는 건 나에겐 낯선 이국땅의 행사지만, 나중에 아이가 자라면 내가 어린 시절 동짓날 팥죽을 먹고 밤늦게 쥐불놀이를 했던 일화만큼 생각할수록 가슴이 따뜻해지는 추억으로 남길 바란다.
코로나로 단절된 공포를 기억하지 않고 부모님과 함께 호박을 파고 맛있는 쿠키와 빵을 먹었던 날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