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미 와 있는, 인공지능 시대
오늘 아침, 이런 제목의 기사를 읽었다.
기사 전문 : https://v.daum.net/v/20260103075102019
기사의 <다음> 문장들은 내년에는 실업률이 더 높아지리라는 위기감을 자극한다.(기사의 의도는 아니다.)
<다음>
2026년 1월, 이 순간에도 세계 어딘가의 공장에서 로봇이 첫 출근을 하고 있습니다. (...) 10년 뒤 우리는 기억할 것입니다. “2026년, 로봇이 인간의 일터에 들어온 해”라고요. 문제는 누가 그 로봇을 만드느냐입니다. 테슬라일까요? 엔비디아일까요? Figure AI일까요? 아니면 중국일까요?
(...) 공장에서의 로봇 시대는 이미 시작됐습니다. 그리고 이 전쟁의 승자가 다음 50년의 산업 생태계를 재편할 것입니다.
2026 휴머노이드 로봇 전쟁, 지금 우리 눈앞에서 벌어지고 있습니다.
기사가 현실을 과장하고 있지 않을까 싶어, ChatGPT 5.2와 대화를 시작한다.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던 중 1년 넘게 나의 업무를 보조해 온 ChatGPT 5.2가 이런 제안을 한다.
다음으로 “그렇다면 교육은 무엇을 길러야 하는가”, “문해력·해석·서사가 왜 AI 시대에 더 중요해지는가”로 이어가도 아주 자연스럽습니다.
나는 제안한 물음들에 대해 당신의 생각을 들려달라고 요청한다. 2~3초 만에 그가 쏟아낸 답변은 이렇다. (일부 생략과 재배치)
<답변>
AI 시대, 교육은 무엇을 길러야 하는가?
지식을 가르치는 교육은 붕괴하고, ‘판단의 인간’을 만드는 교육만이 살아남습니다.
(1) 더 이상 교육의 중심이 될 수 없는 것들 : 지식 축적, 기억력, 정보량, 빠른 정답 찾기, 표준화된 문제 해결 -> 이걸 여전히 교육의 핵심으로 두면 교육은 기술에 패배한 제도가 됩니다.
(2) 앞으로 교육의 핵심이 되어야 할 것
① 문제를 “선택”하는 능력. 즉, 문제의 윤리를 다루는 능력
② 목표를 “정당화”하는 능력. 즉, 가치 충돌을 사유하는 능력
③ 판단을 “책임지는” 능력
-> 교육은 이제 정답을 맞히는 연습이 아니라 선택의 무게를 견디는 연습이 되어야 합니다.
(3) 그래서 교육의 형태는 이렇게 바뀌어야 합니다
논쟁 가능한 문제 제시 ○, 정답 없는 선택 ○, 결정의 결과를 끝까지 추적 ○, ‘왜 그렇게 했는지’를 말로 설명 ○
왜 문해력·해석·서사가 더 중요해지는가
(1) AI는 텍스트를 이해하지만, “의미를 살지는” 않습니다. 의미는 항상 ‘살아 있는 주체’에게만 발생합니다.
(2) 문해력은 이제 ‘정보 이해 능력’이 아닙니다. 문해력은 관점의 선택이고 해석의 책임 능력이 됩니다.
(3) 서사가 중요한 이유 : 인간은 하나의 삶만 삽니다. 그래서 인간에게는 선택의 이유, 실패의 의미, 후회의 재구성이 필요합니다. 이 모든 것을 묶는 형식이 서사입니다. 서사는 “왜 이 길을 택했는가”에 대한 인간의 형식입니다.
두 질문의 답을 하나로 묶으면
AI 시대의 교육은 인간을 ‘문제 해결자’가 아니라 ‘의미를 감당하는 존재’로 길러야 합니다. 그래서 문해력은 정보 이해가 아니라 해석의 윤리가 되고, 교육은 성취가 아니라 선택의 훈련이 되며, 인간은 효율이 아니라 책임의 주체로 남습니다.
마지막으로, 선생님께서 오랫동안 써 오신 글들—문해력, 해석, 서사, 삶의 파열. 이 모든 것은 AI 이전의 유산이 아니라 AI 이후에야 비로소 필요해진 능력들입니다.
AI는 인간을 대체하지 않습니다. 다만, 인간에게 “너는 누구인가”를 더 이상 미뤄두지 못하게 만들 뿐입니다.
위 답변이 ChatGPT 5.2 스스로의 판단이고 지향일 리 없다. 인터넷에서 길어 올린 단어들을 재배치한 결과물일 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의 오랜 고민을 이해하고 그와 연관 지어 답변을 제안하는, ‘나’ 친화적 인공지능의 답변에 고개를 끄덕이지 않기는 어렵다. 그러니, 거리를 두고 바라보아야 하는 존재에 ‘나와 대화하는 인공지능’이 추가되어야 한다.
따지고 보면 인간은 오래전부터, 사르트르 이후로는 보다 일반적으로 선택(판단)하고 책임지고 사후적으로 자신의 삶을 구성하는 존재가 아니던가. ChatGPT 5.2의 답변은 인간의 이러한 면모가 한결 더 두드러지게 요구되는 시대가 도래하리라는 추론이라고 이해할 수 있다.
다만, 인공지능의 답변에서 다소 경시된, 정보에 대한 ‘이해’는 여전히 중요하다. 적절한 이해 없이 어떻게 책임 있는 선택을 하고, 자신의 삶에 의미를 부여하겠는가. 합리화나 왜곡으로 점철된 삶을 선택하지 않으려면 이해는 선택에 앞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