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 타인의 도움으로 한 걸음 또 한 걸음

- 한 유기된 자의 분투기

by 세니사

무한궤도가 사라진 작업장

새로 들어간 회사는 작지만, 메트로놈을 제조해 수출하는 본사였다. PCB 작업은 하청을 주고 본사 공장에서는 몇 단계의 검사와 포장 작업만 했다. 쉬운 검사도 있었고, 제법 까다로운 검사도 있었다. 열 명 남짓한 공원들 각자의 특성에 따라 정해진 자리에서 특정 단계의 검사를 맡아 진행했다.

각자의 자리들은 컨베이어 벨트로 연결되어 있지 않았다. 단계별 검사의 복잡성 수준이 다르다 보니 정해진 속도에 맞추어 일을 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붙박이 인간에서 절반쯤 벗어난 셈이었다.

문제는 가끔 결근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점이었다. 여유 인력 없이 운영되다 보니, 결근자가 생기면 생산 과장이 그 자리에서 일해야 했다. 그런데 생산 과장은 그 사람 나름의 역할이 있었다. 그가 제 일을 처리하기 위해 자리를 비우면 공정에 구멍이 생겼다.

과장은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배우는 속도가 조금 빠른 공원들에게 여러 단계의 검사들을 익히게 하곤 했다. 여섯 달쯤 지나자 나는 모든 단계의 검사를 익혀, 어느 자리에서든 일할 수 있게 되었다.

작업장 옆에 있지만 칸막이로 분리되어 있는 사무실에는 대표 이사, 재무 이사, 구매 과장, 구매 보조, 경리, 자제 담당자, QC 담당자가 있었다. 이 가운데 일주일에 3~4일만 출근하는 재무 이사는 실상 작업장에 나올 일이 전혀 없는 사람이었다.

그런데 이분은 출근할 때마다 1~2시간을 작업장에 나와 이 작업 저 작업을 함께 하면서 공원들과 잡담을 했다. 경제력 있는 집안에서 태어나 그동안 직업을 가져본 적이 없는 분이었다. 어쩌면 그분 나름대로 첫 직장의 식구들에 대해 가진 애정이거나 직장 생활을 익숙해지기 위한 방법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이유가 무엇이었든 재무 이사는 공원들과 친근감을 형성했고, 이따금 간식을 들여놓아 주기도 했다.

내가 모든 단계의 검사를 익힌 후부터 재무 이사는 나를 ‘전천후’라고 불렀다. 그리고 작업장에 나와 새로운 검사 단계를 익힐 때마다 ‘전천후’를 찾았다. 내 설명이 좀 더 빠른 이해에 도움이 되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여전히 내성적인 나는 옆에 있는 사람이 먼저 말을 걸어오지 않는 한 입을 여는 법이 없었다. 그런 내게 재무 이사는 자꾸 말을 걸었고 개인사를 묻기도 했다.


작업장과 사무실 사이

그러던 어느 날, 자제 담당자가 퇴사했다. 재무 이사는 나를 그 자리로 보냈다. 포장 작업에 필요한 물품들은 부피가 크거나 조금 무거운 편이기 때문인지 전임 자제 담당자는 남성이었다. 재무 이사가 무슨 생각으로 키와 체격이 모두 작은 나를 그 자리로 보냈는지 그때는 몰랐다.

작업장 한편에서 큼직한 물건들을 나르고 정리하는 일이 힘에 벅찰 때도 있었다. 하지만 생산 라인에서 종일 똑같은 작업을 반복하느니 계속 움직이면서 좀 힘든 편이 지루하지 않아 한결 마음에 들었다.

더욱이 사무실에 드나들며 발견한 물건이 정말 매력적이었다. 전자 타자기! 구매 보조와 경리가 타자기의 키보드를 날쌔게 누르면 예쁜 글자가 한 글자, 두 글자 찍혀 나오는 일이 여간 재미있어 보이는 게 아니었다. 한 행을 바꿀 때마다, ‘땡’하는 맑은 소리를 낸 후 저 혼자 종이를 살짝 들어 올리는 동작도 신기했다.

결국 사근사근한 경리 언니에게 부탁해 점심시간에 전자 타자기 사용법을 익혔다. 회사에서 제공하는 점심을 부리나케 먹고, 남은 점심시간 동안 타자기의 키보드를 눌러댔다. 오래지 않아 나도 구매 보조와 경리처럼 키보드 위에서 손이 날아다녔다. 별거 아닌 일에 혼자 뿌듯했다.


사무실

이듬해, 결혼을 한 달가량 앞둔 경리 언니가 사직서를 냈다. 재무 이사는 새 경리를 채용하는 대신 나를 그 자리로 보냈다. 이로써 난 작업장에서 완전히 나왔다. 재무 이사가 차근차근 계획한 일은 아니었을 것이다. 그분의 배려와 기회가 손발을 맞추어 성사된 일이었으리라.

퇴사를 앞둔 경리 언니는 재무 이사의 지시에 따라 내가 해야 할 일을 차근차근 가르쳐 주었다. 정식 회계 업무는 세무사에 맡겨 처리하고 있어서 경리가 할 일은 의외로 단순했다.

몸이 편하면서도 지루하지 않고, 남 보기에 번듯하고 급여가 좀 더 많으니 당연히 흔쾌했다. 하지만 당장의 유쾌나 현실적 이득보다 한층 의미 있는 사실 하나를 깨우쳤다. 나도 머리 쓰는 일을 할 수 있다는 사실, 그것도 꽤 잘한다는 사실.

함께 일하고 얼마가 지나자 사무실 직원들이 대학 진학을 권유했다. 그러나 오빠가 막 제대했고 동생은 야간 대학에 다니고 있었다. 경제적 책임이 전적으로 내 몫인 상황은 끝났지만, 오빠와 동생에게 의지해 대입 준비를 할 여유는 없었다.

나는 무엇인가에 대한 고민은 여전했지만, 스스로 새날을 모색할 의지나 현실은 아직 오지 않았다. 이제 숨통이 조여오지 않는 공간에서, 그저 오늘 해야 할 일을 성실히 해낼 뿐이었다.

할 수 없는 일과 할 수 있는 일

그러던 중 작업장에서 일할 때부터 가깝게 지내던 동료 언니에게 불행한 일이 일어났다.

언니의 본가는 거리가 꽤 먼 시골이었다. 장성한 언니는 인천에서, 동생은 서울에서 직장 생활을 하고 있었다. 나와 동갑이 그 동생을 나도 한 차례 본 적이 있었다. 그런데 어느 가을밤, 동생이 교통사고를 당해 응급실로 이송되었다. 동생은 그 밤을 넘기지 못한 채 사망했다.

첫 비행기를 타고 시골에서 올라온 언니의 어머니와 아버지는 살아 있는 딸의 얼굴을 보지 못했다. 응급실 앞 복도에 주저앉아, 이미 떠난 딸의 이름을 애타게 부르며 울부짖던 부모님들의 모습을 지금도 기억한다.

자식을 잃은 부모님들을 돌보기 위해 언니는 고향으로 가야 했다. 언니는 내게 한 가지 제안을 했다. 공무원 시험 준비를 해볼 생각이 있다면, 시골에 함께 가자는 것이었다. 합격할 때까지 먹고 자는 일을 책임지겠다고 했다.

누군가의 극심한 불행이 누군가에게 기회를 주기도 한다니... 알 수 없는 세상사에 가슴이 서늘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분명, 기회였다.

하지만 낮에 일하고 밤에 학교 다니는 동생에게 살림을 맡겨야 했다. 더욱이 몇 달 공부한다고 합격한다는 보장도 없었다. 어쩌면 시간이 지나면서 언니가 나를 부담스러워할 수도 있었다. 그런데, 복잡한 생각들 사이로 꼿꼿이 고개 드는 생각 하나.

무엇을 할 수 있고 할 수 없느냐가, ‘나는 무엇인가’에 대한 답일지도 모른다.


훗날의 이해

아마르티아 센은 인간의 삶을 평가하는 기준을 소유나 지위가 아니라 ‘무엇을 할 수 있는가’라는 가능성의 범위에서 찾는다. 그러므로 인간이 어떤 존재인가라는 질문은 결국, 어떤 삶을 선택할 자유를 실제로 가질 수 있는가,라는 질문과 연결된다.

할 수 없는 일과 할 수 있는 일을 구분할 수 있을 때, 삶은 무의미한 무한궤도가 아니라 방향을 가늠하는 이행이 되어갈 것이다. 누군가의 정체성은 그렇게, 능력의 축적이 아니라 가능성의 확장 속에서 천천히 제 모습을 조형해 나가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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