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이후 무너진 세계의 근미래

- 영화 <칠드런 오브 맨>(알폰소 쿠아론 감독, 2006년)

by 세니사

인간 종이 사라져야 지구 환경이 회복되리라는 주장이 있다. 경제가 일정 수준 이상 발전한 나라의 출산율은 낮아지는 한편, 자연 임신이 되지 않아 인공 수정으로 아이를 낳는 부부들은 늘고 있다. 신자유주의 경제 체제는 전 세계적으로 나날이 빈부 격차를 심화시키고 유럽과 미국에서 이민자에 대한 거부감은 점점 커지고 있다.

이와 같은 주장과 현실이 조금 더 혹은 매우 진전된다면 세계는 어떻게 될까?

<칠드런 오브 맨>은 근미래의 영국을 배경으로 이런 질문을 던져 사고실험을 시도한 작품이라고 볼 수 있다.


설정

2027년 11월 16일, 영국.

출근하는 테오의 바로 뒤에서 폭탄이 터진다. 거리 곳곳에는 철망에 갇힌 이민자들이 있고, 군중은 버스를 향해 돌을 던진다. 정부는 국민에게 '평온한 죽음(Quietus)'을 권장하는 약을 배급한다. 이 아수라장 속에서 인류는 18년째 원인 모를 불임 상태에 빠져 있다.

<칠드런 오브 맨>이 설정한 근미래 세계의 모습이다.


테오는 어느 날, 출근길에 이민자들의 권익을 위해 투쟁하는 피쉬파에게 납치된다. 눈가리개가 벗겨지자 20년 전 헤어진, 전 아내 줄리안이 피쉬파의 수장이 되어 서 있다.

테오와 줄리안은 신념에 가득 차 반정부 투쟁을 하던 젊은 시절에 만났다. 두 사람 사이에 태어난 아들 딜런은 2008년, 유행성 독감에 걸려 어린 나이에 죽었다. 이후 두 사람은 헤어졌다.

<칠드런 오브 맨>의 주인공 테오의 개인사다.


2008년에 죽은, 어린 아들 딜런

테오의 지인 재스퍼에 따르면 젊은 줄리안과 테오는 ‘신념’이었으며, 두 신념이 낳은 아이 딜런은 ‘희망(꿈)’이었다. 그런데 딜런(희망, 꿈)이 죽었다. 재스퍼는 “테오의 신념이 운명에게 진 것”이라고 말한다.

작품에서 운명은 ‘현실’이다. 그러니 테오의 신념은 현실에 무너져 희망 만들기를 그만둔 것이다. 그런데, ‘테오’의 신념은 내용이 무엇이었을까?

답은 딜런이 죽은 ‘2008년’에서 찾아야 할 것이다. 2008년의 의미에 대해 영화는 단서를 제공한다.

20년 만에 만난 줄리안의 부탁으로 불법 체류 소녀의 여행 허가증을 구한 테오는 그 소녀 키와 함께 여행을 해야 한다. 알고 보니 키는 임신을 한 상태이다. 피쉬파는 그녀를 미래호TOMORROW(인간 프로젝트 공동체에 데려다줄 의료선)에 데려가려는 것이었다.

하지만 피쉬파 내에서 줄리안과 다른 목표를 가진 이들로 인해 테오와 키는 정부군과 피쉬파 양쪽 모두에게 쫓기는 처지가 된다. 키와 아기 그리고 테오가 잠시 몸을 숨긴, 폐허 속 건물 입구에 “BANK”라는 간판을 카메라는 선명하게 보여준다. 왜 하필, 2008년일까에 대한 한 가지 단서이다.

현실의 2008년은 리먼 브라더스 사태로 전 세계 금융 시장이 붕괴한 해다. 영화 속 테오의 아들 딜런이 죽은 해이자, 인류가 ‘미래를 계획할 경제적/심리적 토대’를 상실한 기점을 상징한다. 자산 격차와 세대 간의 절망은 그렇게 ‘아이를 낳지 못하는(혹은 않기로 한) 세계’의 토대가 되었다.

2008년에 무너진, 테오의 신념이 무엇일지 짐작하게 하는 또 다른 단서가 있다.


안전하고 쾌적한 곳의 기이함

테오의 사촌 나이젤은 미술품 보호청장이다. 나이젤은 전쟁과 테러가 끊이지 않는 세계에서 예술품을 구출해 안전하고 쾌적하게 보호한다.

나이젤을 찾아간 테오는 그를 온통 새하얀 보호청 어딘가에 서 있는 거대한 백색 다비드상 앞에서 만난다. 그런데 다비드상의 왼쪽 다리가 기이하다. 무릎과 발 사이를 강철봉이 잇고 있다. 구출되기 전, 부분적으로 파괴되어 보수했다 해도 왜 하필 강철봉인가. 그 절단과 부조화가 섬뜩하다.

역시 하얀 식당의 한 벽면을 흑백 그림 <게르니카>가 가득 채우고 있다. 그림 앞에 길고 하얀 식탁이 높여 있다. 참혹한 그림 앞 식탁에 앉아 있는 청년 알렉스는 인형처럼 창백하고 멍하다. 그의 오른쪽 다섯 손가락에는 전선이 연결되어 있다. 그는 그 손으로 끊임없이 전자기기를 조작한다. 그러다가 나이젤의 호령으로 알 수 없는 약을 먹는다.

<게르니카>의 맞은편 유리 외벽으로 훤히 보이는 바깥 풍경은 영국 록밴드 핑크 플로이드의 앨범 <Animals>의 커버를 연상시킨다. 하얀 굴뚝과 둥실 떠 있는 돼지 조형물. <Animals>은 몰락하는 영국의 경제 상황과 자본주의를 조지 오웰의 『동물 농장』에 빗대어 풍자한 음악으로 채워진 앨범이다. 다만, 커버의 돼지는 스탈린이 아니다.

무너진 세계로부터 비켜나 있는, 쾌적하고 안전하며 무엇보다 부조리한 이곳에서 테오는 나이젤에게 묻는다.


테오 : 지금부터 백 년 후엔 이걸 볼 사람도 없을 텐데 왜 모아?

나이젤 : 왜 모으냐고? 난 미래를 생각 안 해.


말이 끝날 무렵 우아하게 움직인 나이젤의 오른손은 우연인 듯 의도한 듯 유리 외벽 쪽을 향한다. 저기 돼지 봐, 저게 나야,라는 듯.


나이젤의 공간은 안전하지만 기이하다. 다비드상의 부러진 다리를 이은 차가운 강철봉, 참혹한 전쟁화 <게르니카> 앞에서 약을 먹으며 전자기기에 몰두하는 청년. 이곳은 미래를 위한 보존이 아니라, 죽어가는 자들의 탐닉을 현시하는 장소일 뿐이다.

백 년 후 세계, 그러니까 인류의 후손이 살아갈 내일을 생각하는 테오에게 지금의 세계는 멸망뿐이다. 무너진 그의 신념은 적어도, 몰락해 가는 이 세계와는 달랐을 것이다. 어떻게 달랐을까? 명확한 답은 선택 앞에 다시 선 순간 테오의 행위에 있다.


인류의 희망

테오는 다른 세상을 만들 희망을 버린 듯 살고 있지만, 정말 버린 것은 아니었다. 영화 초반, 숲 속에 은둔해 살고 있는 재스퍼가 숲에서 함께 살기를 권했을 때 테오는 이렇게 답했다.


“그럼 희망을 걸 일이 없잖아요.”


희망을 만들어 갈 신념은 무너졌지만, 희망을 찾고 싶은 마음은 잃지 않았던 것이다. 그래서 그는 마침내 발견한 희망을 지키려 한다. 불임 인류 역사 18년 만에 아이를 잉태한 소녀 키, 그가 발견한 희망이다.

키는 불법 체류 흑인이다. 그녀는 잉태한 아이의 아비가 누군지 모른다. 많은 남성들에게 몸을 내주어야 했었기 때문이다.

인류의 희망이 새로 태어날 아기라는 설정은 진부하다. 하지만 아비를 모르는 아기라는 설정은 새롭다. 어미가 아비를 숨기는 것이 아니라, 아비가 누구인지 모른다는 점에서.

이 아이는 자신이 누구인지 증명하여 마침내 지배층으로 등극할 자가 아니다. 인류의 희망은 어미의 뱃속에서부터 쫓기는 자이며 태어나는 순간부터 누군가에게 이용당할 처지에 놓인 자이다.

그러니 여기서 ‘아이’는 새 세대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서로에 대한 증오, 위태로운 생존, 무너지는 체제…… ‘아기’는 지금 여기와는 다른 세상에 대한 꿈이고, 그 다른 세상에서 온전히 살아야 할 이들에 대한 준거이다.

이쯤 되니, 태어난 아기는 한 명뿐인데 제목이 <Children of men>인 이유를 알겠다. 우리의 내일에서 함께 살 이들은 누구의 후손이 아니어서 누구의 후손도 될 수 있는 자이니, 복수형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SF는 현재 우리 사회에서 상실감을 유발하는 요소들이 가까운 미래에 어떻게 진화할지에 관심을 가진다고 에블린 피에예는 말한다(「우주에서 벌어지는 파괴 작전」, 『Maniere de voir vol.12』 ). <칠드런 오브 맨>이 엿본 ‘진화’의 모습이 이왕이면, 모두의 후손이 안전할 세계이기를…….


☆ <칠드런 오브 맨>은 2006년에 개봉한 작품이다. 그런데 어떻게 리먼 브라더스가 파산하며 전 세계의 경제 구조를 재편하게 된 ‘2008년’을 희망이 죽은 해로 언급했을까. 우연? 예지력? 예측력? 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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