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둠의 왼손』(어슐라 K. 르 귄)
어슐라 K. 르 귄은 자신이 이 소설을 썼던 1968년에 남자와 여자의 상대적 지위에 대한 질문들이 나오기 시작했다고 한다. 여러 질문들을 들으며 르 귄은 그 질문들에 대해 생각했고, 스스로는 이런 질문을 던졌다.
“만약 내가 성이 없거나 또는 양성을 가진 인간들에 대한 이야기를, 사고 실험을 쓴다면 어떨까? 그런 사람들은 어떻게 행동할까? 그런 사람들로 구성된 사회는 어떤 모습일까?” (「40주년 기념판에 부쳐」, 『어둠의 왼손』, 시공사, 2014, 10쪽)
이 질문은 SF란 ‘만약 ~라면What If’의 문학이란 조안나 러스Joanna Russ의 설명(David Seed, 『Science Fiction – A very short introduction』, Oxford, 2011, 2p.)과 어울린다. 출간 40주년 기념 서문에서 르 귄 스스로 제시한 이 질문과 SF에 대한 조안나 러스의 정의에 충실하게 읽자면 『어둠의 왼손』은 게센/겨울 행성에 살고 있는 양성인들에 대한 사고 실험이다.
그러나 이 소설이 그런 질문에서 출발했다 해도, 르 귄이 작품에서 탐구한 근본 문제는 달리 있는 듯하다.
양성인의 게센/겨울 행성
겐리 아이는 문화 교류를 위한 행성들의 연합이라 할 수 있는 에큐멘의 사절이다. 그가 양성인들이 거주하는 게센/겨울 행성에 온 것은 2년 전이다.
게센인은 26일 중에 4~5일 정도만 일시적으로 남성 혹은 여성이 되어 번식 활동을 한다. 이 기간을 케메르라고 한다. 케메르 기간이 아닐 때 그들은 남성이자 여성 혹은 남성도 여성도 아닌, 양성 상태이다.
이 행성의 정치 공동체들은 기계 문명을 발전시키는 속도가 지구에 비해 매우 느리다는 공통점이 있다. 반면, 각 정치 공동체의 인간들이 공동체를 운영하는 방식과 타인을 대하는 태도에는 차이가 있다.
에큐멘 가입을 권하기 위해 온 지구인 겐리 아이가 이 행성에서 방문한 정치 공동체는 두 곳이다. 카르히데와 오르고레인.
카르히데는 지방 공동체들이 느슨하게 결합된 불안정한 구조의 대단위 정치 공동체이다. 한다라 사상에 바탕한 무위·불간섭의 태도가 정치와 삶 전반에 스며 있다. 개인들은 느긋하고 내성적이지만 활기차고, 낯선 이를 손님으로 환대하는 개방성을 보인다. 통합된 권력보다는 각자의 목소리와 관계를 중시하며, 다소 혼란스럽지만 생동감 있는 공동체인 것이다.
오르고레인은 중앙집권적 국가 체계가 확립되어 시민 모두가 위에서 내려온 명령에 따라 협동하고 순종한다. 정부는 평등과 효율을 표방하지만 정보 통제와 감시, 은폐된 권력을 강하게 작동시킨다. 이곳에서 개인은 국가를 위해 봉사하며, 당파와 체제의 도구로 기능한다. 외형상 쾌활하고 사교적이지만, 이 공동체의 근원적 작동 원리는 불신과 거짓이다. 낯선 이에게 무심하거나 친절하지만, 그를 한순간에 경고조차 없이 내치거나 배신한다.
차이와 이해 불가능성
겐리 아이가 탄 우주선이 착륙한 곳은 카르히데의 영토였다. 겐리 아이는 카르히데의 수상 에스트라벤을 통해 왕과 만나려 한다. 그러나 겐리 아이가 볼 때 에스트라벤은 왕과의 알현을 차일피일 미루는, 신의 없는 자이다. 명확히 상황을 설명하거나 조언을 하지 않는 에스트라벤의 모호한 태도가 겐리 아이로 하여금 에스트라벤을 믿지 못하게 한 것이다.
사실 에스트라벤의 이 모호한 태도는 시프그레소(위신, 체면, 지위, 자존심이 얽힌, 말로 옮길 수 없는 카르히데의 사회적 권위와 게센 문명의 가장 중요한 원칙에 관계된 문제, 41쪽)에 기인했을 뿐, 겐리 아이를 속이려는 의도에서 비롯된 것은 아니었다. 겐리 아이는 이를 이해하지 못해 에스트라벤을 오해했고, 오해로 인해 결국 스스로를 위험에 빠뜨리는 선택을 하기도 한다.
그런데 남성 지구인 겐리 아이가 에스트라벤을 신뢰하지 못한 근본적 이유는 “여자이면서 남자, 남자인 여자 에스트라벤에게 신뢰와 우정을 주고 싶지” 않기(338쪽) 때문이었다. 겐리 아이는 양성인이라는 존재 자체에 대한 이해를 거부했던 것이었다.
하지만 에스트라벤 덕분에 오르고레인의 감옥을 벗어나, 함께 81일에 걸쳐 빙원을 건너는 동안 겐리 아이와 에스트라벤의 관계는 서서히 변해 간다. 그렇다고 겐라 아이와 에스트라벤이 서로를 완전히 이해하게 되는 것은 아니다.
이 작품에서 관계의 윤리는 ‘이해’가 아니라 오히려 ‘이해의 한계’를 전제로 작동한다. 에스트라벤의 시프그레소와 겐리 아이의 남성적 자존심은 끝내 통역될 수 없고, 각자의 생활 방식과 판단 기준은 일치하지 않는다. 심지어 ‘마음의 언어’(일종의 텔레파시)라는 직접적 언어를 통한 대화조차 완전한 소통으로 이어지지 않는다. 이들의 친교는 서로에 대한 충분한 이해가 아니라, 명확히 이해하지 못하지만 서로에게 ‘정직한’ 태도를 통해 서서히 구성되어 갈 뿐이다.
결국 이 소설에서 친교란 동질성에 기반하여 시작되거나 완전한 이해에 도달하는 완성형 행위가 아니다. 이질성을 인정하고 이해 불명료성을 봉합하지 않으면서, 서로의 차이와 이해의 불완전성을 감당하는 진행형 행위인 것이다.
경계를 허무는 기쁨
겐리 아이는 목적이 있어 게센/겨울 행성에 왔다. 그러니 자신의 목적을 이루기 위해 그가 위험을 감수하며 온갖 노력을 기울이는 일은 당연하다. 그런데 에스트라벤은 왜 겐리 아이를 돕는가. 심지어 제 목숨을 희생하면서까지.
겐리 아이가 게센/겨울 행성에 도착했을 때, 오르고레인과 카르히데는 국경 분쟁 중이었다. 장구한 역사를 가진 게센인들은 약탈, 살인, 고문, 복수, 암살은 저지를망정 전쟁을 벌이지는 않았다. 그런데 오르고레인의 상대적 호전성과 카르히데의 새 수상 티베의 야망은 게센인을 유례없는 전쟁으로 몰아간다.
에스트라벤은 게센인의 전쟁을 막고 다른 행성들과 연결되기를 바란다. 이를 위해서라면 오르고레인이 먼저 에큐멘과 동맹을 맺어도 무방하다. 경계를 허무는 인류의 연대, 에스트라벤은 그 가능성을 현실로 만들고 싶다.
에스트라벤은 자신이 살아온 카르히데에서의 삶을 소중히 여기지만, 편협한 애국심으로서의 ‘사랑’은 거절하는 자이다. 특정 장소에 대한 맹목적 사랑은 다른 곳에 대한 배제를 낳기 때문이다. 그는 경계를 긋고 바깥을 배제하는 태도는 타자를 향한 적대이며 자기애일 뿐이라고 생각한다.
카르히데의 또 다른 인물들이 보여주는, 다른 별에서 온 존재들에 대한 경이와 호기심은 에스트라벤의 바람이 정치적 지향 이상이라는 점을 보여주기도 한다. 그것은 본질적으로 타자에 대한 개방성과 호기심, 다른 세계와 존재를 이해하려는 의지, 낯선 삶에 대한 모험심, 차이를 위협이 아니라 가능성으로 받아들이는 삶의 태도인 것이다.
결국 이 작품은 국가, 성별, 문화를 이리저리 ‘나누기’보다 차이를 인정하면서 문화적으로 혹은 지적으로 보다 풍요로운 공동체로 나아갈 수 있는 윤리적 상상력에 탐구이다. ‘이해의 불명확성과 점진성’을 견디는 친교가 개인적 관계를 넘어 행성적 차원의 연대로 확장될 수 있지 않겠냐는 상상력.
영리하고 아름다운 구성
스무 장으로 구성된 이 작품은 장별로 서술자가 교체된다. 주로 겐리 아이가, 이따금 에스트라벤이 서술자이다. 일부 장은 서술자를 알 수 없는 목소리로 혹은 누군가의 기록으로 드물게 중첩된 목소리로 옛이야기를 들려준다.
겐리 아이와 에스트라벤이 서술자인 장들에서는 현재형 사건이 위태롭게 진행되며 독자의 호기심을 유지시키는 한편, 옛이야기를 들려주는 장들은 현재와 닿아있는 비극적이고 상징적인 사건들로 소설 전체를 신비스럽고 아름답게 만든다. 무엇보다, 마지막 장을 덮어도 의미를 명확히 알 수 없는 언어들-케메르, 시프그레소, 친교체, 그림자, 어둠 등-이 작품에 드리우는 그림자는 끝내 이 작품 자체를 ‘낯선 세계’로 남게 한다.
아름답고 애통하게 죽어간 에스트라벤이 어쩌면, 그 낯선 세계 어딘가에 살아 있는 것은 아닐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