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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백년의 영화 Aug 08. 2022

위로해주되 구원할 수 없는 시네마의 무기력

<플로리다 프로젝트>, 션 베이커 (2017) 리뷰

플로리다 프로젝트 (2017)


감독: 션 베이커

출연: 브루클린 프린스, 브리아 비나이트, 월렘 데포 외

별점: 4/5


플로리다 디즈니랜드 바로 맞은 편 모텔 '매직 캐슬'에 사는 무니와 친구들의 모험과 삶 이야기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잘 만들어진 시네마는 그 자체로 하나의 세계이되 동시에 우리가 사는 현실에 관한 것이어야 한다. 디즈니랜드 바로 맞은편의 싸구려 모텔촌을 배경으로 션 베이커가 그려내고자 한 세계는 그런 점에서 훌륭한 시네마의 예시라고 할 수 있다. 플로리다의 빈민가를 바라보는 베이커의 시선은 예리하면서도 무기력하다. 필자는 이런 그의 영화 세계를 ‘환상적 비관론’이라고도 정의할 수 있겠다.

 

영화는 싸구려 모텔 ‘매직 캐슬’의 매니저인 보비의 시선에서 환상의 세계 건너편의 시궁창 같은 현실을 응시한다. 그러나 현실이란 으레 그렇듯 직시하기에는 너무도 잔혹하기 마련이기에 영화는 메두사를 바라보는 페르세우스의 방패마냥 관객과 영화 속 세계 사이에 하나의 굴절체를 마련한다. 바로 ‘아이들’이다. 침대 시트에는 빈대가 끼고 엘리베이터에는 악취가 나며 밤마다 싸움이 나는 시궁창 같던 현실은 동심이라는 렌즈를 통해 연보랏빛의 ‘매직 캐슬’로 변모해 우리에게 다가온다.

 

영화의 초반부는 보비가 아이들의 세계를 지켜주기 위해 노력하는 에피소드들로 구성되어 있다. 그는 무니 일행의 다소 짖궂은 장난도 그러려니 하며 넘어가 주고 그들을 주시하는 아동 성범죄자로부터 아이들을 구하기도 한다. 이처럼 초반부의 보비는 분명 사회 고발적 작품 속의 구원자 모티프로 표현되는 부분이 있다. 아이들의 동심을 지켜주는 어른이라는 모티프 말이다.

 

그러나 그런 구원자적 이미지로 기능하기에 보비는 너무나도 무기력하고 늙은 사내이다. 그의 모티프는 오히려 영화를 보고 있는 관객에 가깝다. 실제로 플로리다의 빈집과 그것을 불태우는 아이들을 보여주며 영화가 동화의 색을 바래기 시작하면서부터 그의 역할은 지속적으로 한계에 부닥친다. 그는 무니와 핼리를 걱정하지만 그들을 근본적으로 도울 수 없고, 그저 임기응변을 마련하거나 자신의 권한 밖의 일을 우겨가면서 핼리의 상황을 개선해주려 노력하지만 그 역시도 근본적 대책이 아닌 시혜적 참견이 될 뿐이다. 이는 그저 자리에 앉아 만들어진 영화를 보고 있는 우리가 느끼게 되는 무기력함과 매우 닮아있다.

 

이처럼 영화는 후반으로 갈수록 아이들의 동심보다는 어른들의 무력함에 대해 다루기 시작한다. 말하자면 초반부의 이야기가 애써 포장된 아이들의 동화라면 후반부의 이야기는 모든 동심의 덧칠이 벗겨지고 실제의 세계가 드러나는 과정인 것이다. 아무리 보비가 애를 써가며 모텔의 페인트를 다시 칠해도 그 내부의 곰팡이 핀 벽면을 가릴 수는 없는 것처럼 그 누구도 짠하고 나타나 이들의 세계를 구원할 수는 없다. 그런 구원을 요청하는 게 이 영화의 목적도 아니고 말이다.

 

오히려 영화는 결말에 이르러 전혀 예상치 못한 방식으로 우리를 끌고 간다. 모든 현실이 드러나고 동심이 모조리 파괴된 상황에서 젠시와 무니가 지금껏 단 한 차례도 직접적으로 묘사된 적 없었던 바로 그곳, 디즈니랜드로 직접 뛰어드는 것이다.

 

이 결말 부분의 연출은 아이러니하게도 영화 내에서 가장 동화적이며 환상적인 묘사를 드러낸다. 모든 덧칠이 벗겨지고 이제 남은 것은 현실을 받아들이는 것밖에 없을 때 베이커는 아이들에게 마지막으로 ‘환상의 나라’를 선물한다. 그러나 모두가 예상하듯이, 이 동화가 오래가지는 못할 것이다. 이는 그저 보비처럼 무기력한 어른인 베이커가 아이들에게 이렇게 읊조리는 것과 같을 따름이다. “미안하지만 내가 줄 수 있는 건 이게 전부란다.”

 

예술은 세계의 변화에 기여해야 한다. 그러나 예술은 그 자체로 세계를 변화시킬 수는 없다. 베이커가 그려낸 울 수도 웃을 수도 없는 모순 가득한 세계 역시 그렇다. 그는 변화 많은 오늘날과 같은 시대에 시네마가 지녀야 할 책임감을 환상과 현실이라는 대비를 통해 역설한다. 그리고 아이들을 디즈니랜드로 떠나보내는 결말을 통해 그것의 무기력함과 한계 역시 성찰한다.


너무나도 일찍 철이 들어버린 무니의 시선은 영리하다. 그는 이미 부러져 썩어감에도 계속 자라는 어린 나무가 지금 자신의 처지와 같다는 것을 무의식적으로 알고 있다. 어른들이 눈물을 보이는 이유를 벌써부터 이해하게 된 그는 절친 젠시의 손에 이끌려 비로소 길 건너편의 디즈니랜드로 도망친다. 다시 찾아 떠난 환상의 나라에서 자신을 발견해줄 술래를 기다리기라도 하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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