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대 미혼 장녀입니다만… #8

#장녀의책임감

by 세레나



그 시절의 나


저번에 이야기했듯, 대한민국 자영업자의 밥시간은 거의 다 저녁 4시로 통일인 것 같다. 얼마 전에 갔던 식당에서도 비슷한 걸 목격해서 동질감이 느껴져서 슬며시 웃었다.


얼마 전에 갔던 해산물 식당이 있다. 사장님처럼 보이는 부부와 교복을 입은 중학생 정도 되는 남자아이가 함께 밥을 먹고 있었다. 식사 중인 모습을 보고 무거운 마음을 가지고 주문을 하니까 사장님 부부는 ‘다 먹었어요~’라면서 일어나셨고, 중학생 남자아이는 혼자 밥을 먹고 있었다.

왜인지 눈길이 자꾸 갔다.


우리가 주문한 음식을 기다리는 사이 손님들이 꽤 많이 들어왔고 사장님 부부가 혼자 하기에 벅차 보였다. 중학생 남자아이는 다 먹은 밥을 말끔하게 치우고, 익숙하게 손님들에게 나갈 물, 물수건, 기본 반찬 등을 세팅하고 있었다.


내가 시선이 갔던 이유를 알았다. 10년, 15년 전의 내 모습이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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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는 동생도 있고 비슷한 또래의 사촌 동생도 있다. 자주 엄마 가게에서 밥을 먹고 나면 항상 상을 치우는 것은 내 몫이었다.

치우는 게 싫은 건 아닌데, 언젠가부터 '밥 먹는 사람은 따로 있고 치우는 사람 따로 있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말로 꺼내봤자 안 하는 놈은 끝까지 안 하고 하는 놈만 끝까지 하는 거니까 그냥 내버려두었다.


그리고 안 하는 놈들을 지켜봤더니, 일부러 귀찮아서 안 하는 건가 싶었는데 그런 애도 있었고, 정말로 그냥 안 보여서 못하는 부분도 있더라.

어차피 내가 먹은 밥을 내가 치우지 않으면 누군가는 나를 대신해서 해야 하니까, 내가 하는데, 이건 내가 다 가게에서 오래 일해서 버릇이 된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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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복을 입고 열심히 서빙하는 남자아이를 본 함께 갔던 친구는 ‘대견하다’고 표현했고 나는 표현할 말을 찾지 못했다. 물론, 대견하다. 대견하고 또 대견하다.

그렇지만 말 한마디로는 나의 지난 15년을 표현할 수가 없었다. 그 아이에게 내 모습을 투영해보면서, 남들이 나를 이런 시선으로 봤겠구나 하는 생각은 했다. 그런데 남이 아닌 나의 생각은 말로 만들어지지 않고 그저 마음속에서 무거운 형태로만 남아있었다. 물론 그 아이가 슬프다거나, 짠하다거나 하는 생각은 아니다. 그저 어떤 기분일까-를 짐작하다 보니까 어떤 말도 할 수 없어졌을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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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녀의책임감


어떻게 아냐면,


나는 가게에서 밥 먹다가 손님 오면 일어나는 게 당연하다고 여기면서 자랐다. 당연하다. 그거에 대해서 불만을 표할 마음은 없다.

하지만 반대로 내가 손님 입장이 되어서 어느 식당에 갔는데 마침 일하는 분들이 식사 중일 때가 종종 있다. 그럴 때, 나는 배가 고프지 않으면 좀 있다가 가거나 설령 가더라도 주문을 신속 정확하게 해서 조금이나마 덜 귀찮게 해드리고 싶다는 마음을 강하게 가지고 있다.


왜냐면, 식사 중일 때 손님이 와서 주문을 받고, 주문한 음식을 내주고 끝이 아니다. 그분들은 항상 손님이 뭐 더 필요한 건 없을지, 혹여 내가 식사하는 모습 때문에 불편함을 느낄지 계속 지켜보기 때문이다.


어떻게 아냐고?

내가 그러니까. 우리가 그랬으니까.



오늘도 건투를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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