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야만찾아오는자유
회사 다니면서 번역에 뜻을 품고 틈틈이 번역 일을 해왔다.
그리고 전업 프리랜서 번역가로 전직을 하고 나서 바쁠 때는 엄청 바쁘고, 안 바쁠 때는 소위 반백수의 삶이었다.
그런데 밖에서 보기에는 일 있을 때만 일하고 일 없을 때는 반백수처럼 탱자탱자 노는 거 같아 보였어도, 사실 마음은 엄청 힘들었다. 그래서 일이 있으면 있어서 고달프고, 없으면 없어서 ‘갑갑했다.’
아주 긍정적인 쉬는 날은 이렇다.
일할 때는 바빠서 못했던 (업무에 도움이 되는)책을 읽고 향후 들어올 일을 준비하고, 나의 실력을 키운다.
정말 긍정적이고 나무랄 데 없는 계획이지만, 이게 뜻대로 될 리가.
우선 쉬는 날이 되면, 그동안 업무에 참고하느라고 숱하게 봤던 책이 정말 보기 싫어진다.
그 무엇도 하지 않을 자유를 누리고 싶어진달까.
그런데 원체 소심한 탓에 막상 아무 것도 안 하고 쉬고 있으면 죄짓는 기분이 든다.
멀쩡한 신체에, 멀쩡한 정신을 가지고 있는데 가만히 있으면 죄책감이 든다.
이건 다 365일 일하는 엄마 때문인 것 같다.
엄마가 비가 오나 눈이 오나 40도에 육박하는 더위에도 숯불을 피우면서 꿋꿋하게 일하니까.
그런 엄마를 보고 자라서, 아무 것도 하지 않고 보내는 하루는 내가 인간으로서 아주 엄청난 태만을 저지르고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아파야만찾아오는자유
그런데 이런 나도 온전히, 마음 놓고 쉴 수 있는 날이 있다. 바로 내가 아픈 날!
거진 대부분의 장녀가 그렇듯, 나도 아파도 별로 티를 잘 안 내려고 한다.
바쁜 엄마한테 신경쓰이게 하기도 싫고.
무엇보다 아픈 건 나고, 약 먹어야 하는 것도 나니까.
누가 대신 약을 먹어줄 수 있는 것도 아니니까 그냥 내가 나를 추스리는 수밖에 없다.
그리고 나는 참는 게 버릇이 되어서 그런지 좀 미련한 구석도 있어서 왠만큼 아프지 않으면 잘 아프다고 생각도 안 한다.
이런 내가 아프다고 말하면 다리가 후들후들 거려서 정말로 밖에도 못 나가는 상황이다. 온 몸에 오한이 들어서 한여름에 전기 장판 틀고 솜이불 덮고 있거나 아니면 탈진하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식은 땀을 내도록 흘리는 경우다.
이럴 때면 숟가락 하나 들 힘도 없고, 그 좋아하는 아아메도 마실 수 없기 때문에, 당연히 ‘일을 해야한다’거나 ‘공부를 해야 한다’는 생각을 할 수 없게 된다.
이런 순간이 되어야만, 나는 비로소 마음 놓고 쉴 수 있는 사람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