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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세오 Apr 08. 2023

기억을 먹어나갈까 하고요

시작하는 이야기

삶의 매 순간에 경험이 있다. 모든 것들을 기억한다면 인간은 미쳐버릴지도 모르기에 망각이란 선물이 주어졌다고도 했다. 소멸을 비껴간 기억은 그래서 더욱 소중하다고도. 사실 기억은 사라지지 않고 뇌의 어딘가에 저장되며, 망각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처럼 자연히 일어나는 수동적 프로세스가 아니라 "뇌의 적극적인 편집 기제"라는 연구결과들*이 있다. 감각기관을 통해 끊임없이 쏟아져 들어오는 정보를 일일이 갈무리한다면 정작 필요한 정보를 찾을 때 소모될 기하급수적인 에너지를 아끼고자 기억을 잠시 꺼놓는다는 이야기다. 까맣게 잊고 있다가 불현듯 현현하는 기억들을 생각하면 그럴 법도 하다. 삶의 불특정 한 지점에 각인된 시간의 덩어리. 기억이 시냅스에 새겨지는 정확한 메커니즘은 규명되지 않았다. 그래도 다양한 요인들이 결부되어 있는 건 느낄 수 있다. 사고나 강렬한 경험, 장소, 이미지, 혹자는 향기 나 소리로 특정 사건이나 개체를 기억한다고 한다. 나의 경우는 음식이다.


 




스스로에게 음식을 매개로 기억을 형성하는 경향이 있다는 사실을 알아챈 건 몇 해 전의 일이다. 문득 기억들 사이에 존재하던 패턴을 감지한 것이 계기가 됐다. 물론 먹은 음식 전부를 기억할 리 없다. 기억에 음식이 링크되어 있는 것에 가깝다. 추억을 떠올리면 소환되는 당시의 이미지가 있고, 많은 경우 그 속에 음식이 있다. 예컨대 못 본 지 십 년이 넘은 소영누나를 떠올리면 런던 버러 Borough의 집에서 함께 먹었던 제육볶음이 그려진다거나, 미나미를 처음 만났을 때를 더듬어보면 에인절 Angel의 집에서 고등어구이와 된장찌개를 먹고 글렌피딕 12년 한 병을 다 비우는 광경이 눈에 선한 식이다. 성실 씨와 런던에서 만났을 땐 펍에서 피시앤칩스를 먹고 이동해 옆 가게에서 판콘토마테를 먹었다. 앤드류와 크게 싸운 레이캬비크 Reykjavik의 레스토랑에선 로스트 한 토마토와 두툼한 포크벨리가 앞에 있었다. 혼자 올라간 카프리 Capri의 솔라로 Solaro산 정상에선 리몬첼로를, 카파도키아 Cappadocia의 바위 꼭대기에선 사위어가는 석양을 바라보며 에페스 Efes를 마시고 있었다. 심지어 내가 가진 가장 오래된 기억은 말을 떼기도 전에 먹었던 이유식의 맛이다. 적당히 매트한 식감과 고소했던 그 맛을 재현해 보고자 초등학교 때 동생과 분유를 사다가 만들어 먹어보고 눈살을 찌푸린 기억도 있다. 반대의 경우도 빈번하다. 어떤 음식을 접하거나 떠올릴 때면 각종 추억들이 굴비두릅처럼 줄줄이 딸려 나온다. 쌈장 하면 프란체스카와 쌈장 닭고기 소테를 해 먹던 모습이, 하동관 곰탕을 마주하고 있으면 가족들이나 성찬이의 얼굴이 떠오른다. 왜일까?






궁금한 마음에 자료를 찾아봤다. 먹는 동안 시각, 미각, 후각, 청각, 촉각이 동시에 쓰이기 때문에 기억이 훨씬 선명하게 형성되며, 특히 미각에 대한 기억은 더 강렬하다는 주장이 눈에 들어왔다. 독이 있거나 질병을 야기할 수 있는 식재료에 대한 정보를 남기기 위한 생존 전술의 일환이라는 설명이다. 특정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음식 기억의 작동 원리라던가, 영양소에 대한 생물학적 필요가 기억을 담당하는 뇌의 해마에서 다른 기억보다 특별하게 취급된다는 진화심리학적 주장, 맛있는 음식을 먹을 때 생성되는 도파민이 기억과 연관되어 있다는 주장**까지, 해외에서는 음식 기억에 대한 연구가 상당히 구체적으로 진행된 듯 보였다. 산소, 물과 더불어 생존에 필수불가결한 몇 안 되는 요소 중 하나니 음식 기억이 가진 강력함의 근원에 여러모로 수긍이 갔다. 동시에 한편으로는 의문이 싹텄다. 내가 느끼는 기억과 음식의 링크는 생물학적 육체가 착실히 구현하는 진화의 산물인 걸까?






기억력이 그리 좋지 않은 편인 데다 관심 있는 것도 기억을 못 할 때가 많다. 그나마 형태를 유지하고 있는 기억의 데이터베이스를 유영하거나 특정 기억을 추출했을 때 상당한 비율로 음식과 조우한다. 그것들은 대부분 따스하며 낭만적인 빛을 띠고 있다. 많은 경우 사람들과 함께다. 무엇을 입고 있었는지, 날씨가 어땠는지, 무슨 음악이 나오고 있었는지, 어떤 향이 났는지, 만졌을 때 어떤 느낌이었는지, 모두 기억에 없거나 뿌옇지만 그곳에 존재했던 음식만  떠오르는 현상. 생의 첫 번째 기억이 음식의 맛이라는 점. 기억을 만드는 다른 많은 요인들 중에 유독 음식이 차지하는 비중이 높다는 점은 한동안 미스터리였는데, 누군가 그랬다. 너 음식 좋아하잖아. 






어린 시절의 나는 새로 생긴 맛집이나 소위 '핫플레이스'를 직접 가서 먹어봐야 성이 풀렸다. 자신이 음식에 대해 뭘 좀 아는 것처럼 굴었다. 착각이었다. 그때를 회상하면 낯이 뜨거울 정도로 음식의 상대성을 마음 깊숙이 이해하게 됐다. 나에겐 절대미각도, 대장금의 손도, 음식을 아름답게 꾸미는 감각도 없다. 하지만 음식에 대한 호기심과 관심은 음식의 광대한 스펙트럼에서 내가 아는 부분이 극미하다는 걸 가르쳐 줄 만큼 다양한 경험을 안겨줬다. 세계는 넓고 문화는 다양하며 먹을 것은 헤아릴 수 없이 많더라. 보이지 않는 손이 밀어주듯 내 일상은 음식을 중심으로 재편되어 왔다. 스스로를 위해, 누군가를 위해 시간과 마음을 담아 음식을 만드는 것이 즐겁다. 경험하지 못한 음식을 접하는 것이 반갑다. 식재료가 인간의 삶에 걸어 들어온 계기와 그 여정을 더듬어보면 숙연해진다. 서로의 차이를 음식이란 렌즈에 비추어 탐구해 보는 것이 흥미롭다. 식사를 하면서 다음 끼니에 뭐 먹지 생각하는 것이 익숙하다. 음식 자체만큼 사람과 사람을 연결하는 초월적인 힘에 매력을 느낀다. 무언가에 깊이 빠진다는 건 관심사가 많은 만큼 쉽게 흥미를 잃는 나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어느새 음식은 탐닉의 대상을 넘어 나를 치유하고, 나와 타인을 이어주며, 안갯속을 표류하는 기분이 들 때 등대 같은 존재가 되어 있는 것이다.






글로 이런저런 것들을 불러내며 즐거워하던 때가 있었다. 진로를 바꿔가며 한동안 글을 쓴다는 행위와 멀어졌었는데, 무언가를 취재하고 그 경험을 옮긴 글로 소소하게 벌어먹고 사는 생활이 몇 년간 이어졌다. 의뢰를 받은 글을 쓰다 보니 예전처럼 내기는 대로 글을 써 보고 싶다는 생각이 저변에 있었다. 하지만 버튼을 눌러도 시동이 걸리지 않는 엔진처럼 힘없는 소리만 내다 그쳤다. 모든 것은 타이밍이 있다. 어떤 아이디어를 구현하기 위해선 운도 노력도 중요하지만 첫 발을 내딛게 하는 동기부여와 걸음을 계속하게 만드는 모멘텀이 필요하다. 이 산 저 산 돌아다니며 도토리를 주워 담던 배낭이 불룩해져 잠시 안을 들여다보던 중, 별안간 허기가 진다. 손에 쥔 건 모양도 제각각인 알록달록한 도토리들. 발길이 멈춘 곳은 한동안 찾지 않았던 시간의 호숫가다. 도토리를 던져 감응하는 기억들을 소중히 건져 올려 요리를 만들 생각이다. 배고픔이 멈출 때까지. 






*이보윤, "망각은 어떻게 그리고 왜 일어나는가", KISTI의 과학향기 제3211호, 한국과학기술정보연구원,   2018.9.10 

http://shorturl.at/gjoyZ

**Joy Intriago, "Food and Memory – How are they linked?", Seasons, 2021.4.30

https://www.seasons.com/food-and-memory-how-are-they-linked/24919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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