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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세오 Apr 17. 2023

정복자의 식탁을 정복한 식재료

천연 MSG의 보고인 토마토

어떤 식재료든 품질에 따라 맛의 격이 다르다. 토마토는 그 차이가 유독 선명하다. 영국에선 토마토의 선택지가 넓은 편이다. 저렴한 것, 맛있는 것, 덩굴에 붙어있는 것, 특정 유명 품종 등 여러 가지다. 방울토마토도 플럼(plum)과 체리(cherry)로 나뉜다. 전문 청과물 가게에 가면 에어룸 (heirloon), 산마르자노(San Marzano), 불스하트(bull's heart) 등 열 종류가 넘는다. 


토마토 하면 흔히 이탈리아나 스페인을 떠올리지만 그 기원은 중남미다. 작은 녹색 열매를 맺던 야생 식물을 아즈텍인들이 조금씩 개량해 재배했다. 16세기 초반 아즈텍 문명을 파괴한 스페인 침략자들은 토마토를 유럽으로 가져갔지만 먹는 방법을 몰랐다. 잎과 줄기, 설익은 열매에 있는 독성으로 고초를 치른 유럽인들은 토마토를 악마의 식물이라 매도했다. 먹으면 나병이나 정신병, 심지어 성병까지 걸린다고 믿었다. 관상용으로 재배되다 스페인(아라곤 왕국)의 지배를 겪은 이탈리아 남부에서 빛을 보기까지 수백 년이 걸렸다. 배수가 잘 되는 토양과 높은 일조량을 좋아하는 토마토는 이곳에서 잘 자랐고 현지인들은 완숙 토마토를 이용해 소스를 만들기 시작했다. 그 뒤는 언급하지 않아도 될 거다. 내가 토마토를 '정복자의 식탁을 정복한 식재료'라 부르는 이유다. 




에어룸 토마토, 산마르자노 토마토, 불스하트 토마토




토마토에는 감칠맛을 내는 글루탐산이 많다. 숙성이 될수록 올라가 끝무렵에는 다른 모든 식품들을 압도한다. 취향의 차이지만, 질 좋은 완숙 토마토를 생으로 먹을 때 이것저것 곁들면 오히려 방해가 되는 것 같다. 발사믹 식초나 각종 허브도 필요 없다. 좋은 엑스트라 버진 올리브 오일과 소금 한 꼬집을 솔솔 뿌리면 충분하다.  생 토마토의 맛을 풍성하게 느낄 수 있는 음식은 단연 판콘토마테(pan con tomate)다. 이탈리아의 브루스케타(bruschetta)와 비슷한데 훨씬 간단하다. 두툼하게 썬 빵에 올리브오일을 뿌려 토스트 하고, 까끌까끌한 빵 표면에 마늘을 가볍게 문질러 향을 입힌다. 세게 쥐면 터질 듯한 완숙 토마토의 과육을 강판에 갈아 빵 위에 올리고 소금간 하면 끝이다. 생각만 해도 침이 고인다.


같이 살던 터키인 친구들은 토마토를 넣은 스크램블 에그를 만들어 주곤 했다. 메네멘(menemen)이라는 터키의 국민 아침식사다. 나도 계란찜에 토마토를 넣어봤더니 독특하니 좋았다. 그 뒤로 여기저기 넣게 됐다.  김치찌개나 순두부찌개에선 김치나 마늘과 함께 볶는다. 라면을 끓일 땐 면 보다 조금 먼저 넣는다. 토마토와 마늘의 돈독한 궁합이 한국요리에도 잘 어울리는 비결 같다. 


생식용 토마토와 요리에 좋은 가열용 토마토는 차이가 있다. 새빨간 가열용 쪽이 감칠맛과 영양소가 풍부하며 과육이 단단해 조리에 적합하다. 국내에는 수요가 낮아 유통이 제한적이다. 토마토 사용 목적의 97.3 퍼센트가 생식용과 주스용이기 때문이다*. 요리에 쓸 거라면 온라인에서 쉽게 구매할 수 있는 지중해산 캔 토마토가 좋다.




런던 호세 José의 판콘토마테 (출처 : Flickr Ewan Munro 님), 터키 아침식사 속 메네멘




*신재호, "[진단] 소비 트렌드에 민감한 토마토, 알고 재배하자", 농축유통신문, 2017년 8월 1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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